▲ 레오모터스 이정용 대표는 지지부진하던 양산 전기차 사업을 대대적으로 구조조정하고 전기 스포츠카 분야에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전기차 업계의 유망주로 평가받아온 레오모터스 이정용 대표(46)가 말하는 최대한 짧은 회사의 정의다. 지난 2009년 4월 말 기아차 ‘모닝’을 모터만으로 최고시속 160㎞까지 달릴 수 있는 고속 전기차로 개조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레오모터스가 ‘변신’ 중에 있는 것이다. 레오모터스는 양산 전기차 사업이 지지부진하자 올 봄 버스·트럭(스쿠터)부문을 분사하는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다시 큰 전환점을 맞고 있는 이 대표를 만났다.
“그동안 너무 다방면으로 사업을 벌이기만 했지 마무리를 못했습니다. 단 하나라도 제대로 해보자고 생각하고 지난 3월부터 사업 방향을 정리했습니다. 일단 그동안 쌓아온 기술력으로 바로 매출을 올릴 수 있는 포터블 배터리 파워팩으로 안정적 수익을 창출하고 미래 먹거리로 전기 스포츠카 등을 개발해나갈 겁니다.”
양산 전기차 사업을 접고 제일 먼저 집중한 것은 충전을 통해 어디서나 전기를 편하게 쓸 수 있도록 한 포터블 배터리 파워팩이었다. 결정 한 달 만에 3㎾급을 완성할 즈음 미국 국방성 관계사에서 연락이 왔다. 50㎾급을 만들어줄 수 있느냐는 것. 고속 전기차용 파워트레인이 최고 60㎾급이니 레오모터스에겐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레오모터스는 곧 미국 측의 요구조건에 맞게 보내줬는데 일본 제품보다 훨씬 좋다며 계약이 진행됐다. 현재 30억 원에 달하는 현장 테스트용 샘플 주문서를 기다리는 중이다. 매년 수천 개가 필요하다니 정식으로 공급되기 시작하면 상당한 매출이 발생한다. 최근 지진으로 인해 전기가 모자라는 일본에서도 수백억 원대에 달하는 3㎾ 모델 공급 계약이 진행 중이다. 이렇게 배터리 파워팩으로 안정적 매출이 발생하면 전기 스포츠카에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사실 저희 같은 벤처기업의 양산형 전기차 생산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였습니다. 그래서 특화된 분야를 주목했죠. 전기 스포츠카는 수제작이 가능하고 마진이 높습니다. 대기업은 할 수 없죠. 제로백(0→100㎞/h 도달 시간)이 2.9초, 최고시속 260㎞를 목표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바디는 호주에서, 나머지는 모두 우리가 만들고 있는데 올 하반기 프로토타입(시제품)을 공개하고 내년 초 인증 절차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전 세계 스포츠카 수집가를 대상으로 300대 한정으로 제작하려고 합니다.”
이처럼 전기차 사업의 큰 전환기를 맞고 있는 이 대표는 사실 기타리스트가 꿈이었다. 1965년 대구에서 태어나 경북공고 화공과를 졸업한 그는 진로를 선회, 1985년 동국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한다. 곧바로 그룹사운드에 들어간 그는 기타와 보컬을 맡았다. 지금도 그의 사무실엔 일렉트릭 기타와 앰프가 제일 먼저 눈에 띈다.
“1학년 때 대학가요제 본선에 올랐어요. 한데 공연 전날 교통사고를 당해 코뼈가 부러진 거예요. 무대에 오르긴 했는데 퉁퉁 부은 얼굴로 노래가 될 리 없죠. 그렇게 미끄러지고 동아리 방에서 기타를 치고 있는데 한 외국인이 들어오더니 기타를 가르쳐 달래요. 그러면 당신은 나한테 뭘 해줄 거냐고 했더니 자기 전공이라면서 컴퓨터를 가르쳐주겠대요. 그게 인연이 돼 컴퓨터 음악과 컴퓨터 그래픽을 배우게 됐습니다.”
컴퓨터 전문가가 된 이 대표는 졸업 뒤 군복무를 마치자마자 컴퓨터 그래픽 회사에 스카우트돼 3D(3차원) 디자인을 했다. 당시 3D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손에 꼽힐 정도로 핵심 인재에 속했다. 그러다 한번은 자동차 3D 모델링을 담당하게 되면서 자동차에 푹 빠져버렸다. 그는 유학을 결심, 호주로 간다. 자동차공학으로 유명한 RMIT에서 자동차 엔지니어링과 스타일링으로 석사를 마치고 뉴사우스웨일즈대에서 박사과정을 밟는다. 여기서 그는 운명처럼 차세대 에너지 자동차와 인연을 맺게 된다.
“1997년에 자동차 관련 각 분야 박사과정 학생들 12명이 모여 태양전지 자동차를 만들어 국제대회에 나가 우승을 해버렸죠. 원래 박사과정에 들어가면서부터 미래 자동차를 주제로 삼은 데다 대회 준비 과정에서 대체 에너지 중 앞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전기차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리고 본격적으로 연구를 했습니다.”
지난 2000년 귀국한 그는 벤처회사를 거쳐 대북 경협 사업인 평화자동차에 몸담는다. 북한 출장도 여러 차례 다녀오고 ‘휘파람’ 등 평화자동차 모델이 양산되는 것까지 본 그는 그러나 대북 자동차사업에서 전기차 개발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4년 만에 사표를 던졌다.
평화자동차를 나온 그는 홀로 사무실을 차려 전기차 사업을 시작한다. 2005년 초 때마침 한 사업가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동시에 100일 만에 전기차를 완성하는 ‘전기차 100일 프로젝트’가 다큐멘터리로 방송을 타며 화제를 모았다. 전기차 모델 하나가 불타는 악조건 속에서 발표회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러나 빛은 잠시였다. 그에게 투자한 사업가가 망했고 그의 회사도 문을 닫았다.
이 대표는 동료 네 명과 함께 다시 사무실을 냈다. 이름은 사자들이 모이는 공간, ‘레오존’이라 지었다. ‘배고픈 사자’이던 시절, 차비가 없어 투자자 유치를 위해 왕복 4시간을 걸어가는 등 고난의 행군이 지속됐다. 그래도 그 고생 덕분에 투자를 받았고 또 한 번 사무실을 옮긴 끝에 현재 사옥이 있는 경기도 하남시에 창고를 빌려 사업을 이어갔다. 드디어 2008년 6월 필리핀의 한 지방자치단체와 전기 차량 공급계약을 맺으며 대박이 터지는 듯했다.
“세계 자연보호구역인 시에서 관광객이 사용하는 택시 4000여 대와 버스 1000여 대를 공급하기로 했죠. 세계적인 전기차 회사들과 경쟁해 당당히 최종 계약을 따냈습니다. 한데 해당 주지사가 필리핀 중앙정부에서 나온 돈을 전용하고 시에 주지를 않는 거예요. 몇 차례 컴플레인을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죠. 지금도 정말 아쉬워요.”
그럼에도 전기차에 대한 기술개발은 계속됐고, 2009년 4월 말 용역을 받아 고속 전기차로 개조한 모닝이 언론의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이 역시 시장에서의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이제 사업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고 관련 특허 56개에 이르는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재도약의 시동을 건 이정용 대표. 그의 레오모터스가 성공을 향해 질주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하남=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