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들은 직장에서 가장 듣기 싫은 말로 외모에 대한 지적, 차 심부름, 남자와 여자를 비교하는 말 등을 꼽았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젊은 여성 직장인들에게 회사에 다니면서 가장 듣기 싫은 말을 꼽으라면 외모 지적이 가장 먼저, 가장 많이 튀어나온다. 그만큼 빈번하다는 얘기다. 자동차 관련 업체에 근무하는 K 씨(여·27)는 아침마다 같은 부서의 과장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사무실에 들어올 때가 많다. 얼굴만 보면 ‘한소리’를 하기 때문이다.
“회사에 다니면서 언제나 풀 메이크업을 할 수 없잖아요. 시간상 살짝만 하고 올 때도 많죠. 그러면 꼭 과장님은 노메이크업이냐, 누군지 몰라봐서 잡상인인 줄 알았다고 하면서 놀립니다. 처음에는 그냥 농담 삼아 넘어갔는데 거의 매일 검사 받듯 지적을 당하니까 너무 듣기 싫어요. 관심의 표현인 건 알지만 여자가 피부가 왜 그러냐면서 지적을 할 때는 모욕감까지 느껴요.”
K 씨와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N 씨(여·28)는 동감한다며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고 열을 올렸다. 화장을 제대로 하고 예쁘게 꾸미고 가도 한소리 듣기는 마찬가지란다.
“특별한 약속이나 일이 없어도 맘에 드는 옷을 구입하거나 날씨가 좋으면 평소와 다르게 더 꾸미고 싶은 마음이 들거든요. 그러면 그냥 그런가보다 하면 되는데 꼭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그렇게 꾸미고 왔느냐’, 또 ‘남자친구 만나러 가느냐’면서 계속 듣기 싫은 말을 합니다. 일하러 온 회사에서 계속 외모 지적을 받으니까 짜증이 나죠.”
패션업체에서 일하는 C 씨(여·27)는 화장이나 옷차림에 대한 지적은 그나마 참을 만하다고 털어놓았다. 몸매에 관한 말은 듣기 싫은 정도를 넘어 화가 난단다.
“키가 170㎝ 정도로 여자치고 큰 편이다 보니 덩치가 있어 보여요. 게다가 사무실에 작고 마른 분들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비교가 되긴 하겠죠. 그래도 그렇지 부장님이 장난을 넘어서 가끔 도가 지나칠 때가 있습니다. 간식을 사와서 다 같이 먹으려고 하면 꼭 저한테 또 먹느냐고 하면서 살찌니까 그만 먹으라고 해요. 부장님 본인은 더 뚱뚱하면서 저만 보면 ‘덩치 있다’, ‘요새 더 살찐 거 같다’면서 계속 몸매 얘기만 해대니 듣기 싫어 죽겠습니다.”
외모를 넘어 은근히 ‘여성스러운’ 행동을 강요하는 말들도 여성 직장인들이 듣기 싫은 말들 중 하나다. 무역회사에 다니는 O 씨(여·28)는 ‘여자답게 행동하라’는 말이 늘 거슬린다.
“성격이 활달하고 할 말은 하고 사는 편이에요. 그렇다고 거칠거나 절대 매너 없이 행동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회사에서는 조금만 목소리를 높여도 여자가 너무 나댄다, 드세다는 말을 해요. 일을 할 때도 불합리한 부분을 이야기하면 드세서 연애 못한다고 만날 그러는데 그럴 때마다 상사한테 ‘저 인기 많거든요’라고 소리치고 싶다니까요.”
아무래도 회사다 보니 일할 때 순간적으로 듣기 싫은 말들이 많이 오고간다. 음향기기회사에 근무하는 M 씨(여·27)는 다른 무엇보다 제일 듣기 싫은 말이 있다.
“손님만 오면 ‘○○ 씨, 차 좀’ 하면서 부르는데 사실 제 업무도 아니고 제 손님도 아닌데 그렇게 당연한 듯 말할 때마다 부아가 나요. 심지어 본인이 커피를 마시고 싶을 때도 한창 일하고 있는 저한테 ‘커피 좀’ 이러면 귀를 막아버리고 싶죠. 또래 친구들한테 물어봐도 제일 듣기 싫은 소리가 ‘차 심부름하라’는 소리예요. 아마 모든 회사의 모든 여직원들이 마찬가지일걸요?”
외식업체에 다니는 S 씨(여·32)는 회식 등 단체로 움직이는 자리는 어지간하면 빠지지 않으려고 한다. 빠지면 꼭 나오는 듣기 싫은 소리가 있어서다.
“회식이나 워크숍 등 회사에서 종종 다 같이 움직이는 행사가 있잖아요. 그런 건 괜찮은 날짜에 대한 의견을 받아서 정하면 좋겠는데 꼭 일방적으로 정해놓고 무조건 참석하라는 식이에요. 합당한 이유를 대고 불참한다고 해도 돌아오는 소리는 항상 ‘여자들은 이래서 안 돼, 꼭 말이 많아’ 이런다니까요. 그래서 여직원들끼리 의견을 모아 요구했습니다. 낮에 점심 겸 회식을 하거나 저녁에 하게 되면 빠지지 않을 테니 몇 시까지 하겠다는 약속을 해달라고요. 이렇게 절충안을 내도 볼멘소리 나오긴 마찬가지예요.”
금융권에서 일하는 J 씨(여·31)도 억울하게 듣는 소리가 있다고 토로했다. 일에 조금만 실수가 있어도 꼭 듣는 얘기다.
“사람이 늘 완벽할 수는 없잖아요. 항상 모든 사람과 둥글게 지낼 수도 없고요. 그런데도 부서장은 꼭 일만 생기면 ‘여자들은 군대를 안 갔다 와서 그런가…’ 그래요. 대답을 바라고 하는 소리는 아니겠지만 그런 말 들을 때마다 화가 납니다. 그런 건 개인차에 따른 문제지, 군대랑은 상관없잖아요. 부서장의 말 때문에 어딜 가든 군대 이야기만 나오면 민감해지곤 해요.”
교육업체에서 일하는 L 씨(여·29)는 듣기 싫은 소리를 배려 없이 던져 놓고 늘 따라오는 말이 있다며 그 말이 오히려 더 듣기 싫다고 이야기했다.
“외모 지적이나 업무에 관한 말 등 듣기 싫은 소리야 넘치죠. 그런 소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듣는데 그중에서도 저는 제일 듣기 싫은 게 ‘삐쳤어?’라는 말입니다. 삐친 것이 아니라 불합리해서 화가 난 건데 마치 투정을 부리는 것인 양 달래듯 하니 정말 듣기 싫더라고요. 여자들한테는 직급이 높아도 ‘△△ 과장 삐쳤다’고 하는데 남자들한테 삐쳤다는 표현은 잘 안 쓰잖아요. 남자친구나 부모님 앞도 아니고 일하는 회사에서 삐치겠습니까. 남자 직원들은 그런 걸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출근하면 직장인들은 업무를 떠나 동료, 상사, 부하 직원에게 수없이 많은 말을 한다. 이 말들이 항상 좋은 결과로 돌아오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제일 좋은 방법은 상대방이 듣기 싫은 말은 일단 안 하는 것이다. 아무리 의도가 순수해도 듣는 사람의 귀에 거슬린다면 하지 않느니만 못하니까.
이다영 객원기자 dylee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