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효율성 위해 소액 결정권 시·도지사에 넘겨…중증 이상반응은 여전히 질병청에
질병관리청이 12월 10일 예방접종피해보상 업무의 일부를 시‧도지사에게 위임하는 내용의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시행령이 개정되면 예방접종피해보상전문위원회의 의견수렴을 통해 인과성을 인정할 수 있는 이상반응에 대해서는 시‧도 차원에서 직접 보상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된다.
신설되는 시행령은 예방접종피해보상업무 위임규정으로 “질병관리청장은 법 제76조 제2항에 따라 법 제71조 제2·3항에 따른 권한의 일부를 시‧도지사에게 위임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32조 제4항으로 신설되며 현행 제4항은 제5항으로 바뀐다.
지금까지 예방접종 후 이상반응에 대한 피해보상 최종 결정 권한은 질병청에 있었다. 보건소와 지자체에서 기초피해조사를 실시해 질병청으로 넘기면, 질병청은 예방접종피해보상전문위원회를 열어 접종자가 보상을 청구한 날로부터 120일 이내에 최종 보상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
그러나 실제로 보상을 받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피해보상 청구 신청에 앞서 접종자와 해당 의료기관의 이상반응 신고가 선행돼야 하는데, 현재 질병청이 매주 수천 건의 이상반응 신고로 업무 포화 상태에 이른 탓이다. 질병청에 따르면 12월 5일(40주차)까지 코로나19 백신 접종 후 이상 반응 의심사례 신고 건수는 직전 주인 39주차보다 4517건 늘어난 39만 292건이었다. 한 주 사이에 4500여 건의 신고가 들어온 셈이다.
서울 마포구에서 자영업을 하는 A 씨는 “1차 접종 후 흉통과 심장 두근거림으로 동네 병원을 갔다가 혈소판 감소 진단을 받아 가게 문을 닫고 대학병원을 다녔다. 피해 보상 청구를 하려고 했는데 넉 달보다 더 걸릴 수 있다고 하더라. 부작용이 걱정돼 아직 2차 접종도 하지 못 했다”고 말했다.
관련 불만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자 질병청도 대책을 내놓았다. 보상지급금 30만 원 미만의 사례에 대해서는 시‧도지사도 최종 보상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질병청 관계자는 “소액 보상 건에 대해서는 예방접종피해보상전문위원회의 의견수렴을 통해 사전에 마련된 인과성 확인지침표를 통해 지자체에서 보상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보상 청구를 한 뒤 기다리는 국민들이 120일 이내에 신속히 결과를 받아볼 수 있도록 업무 효율을 높이고자 마련된 개정령안”이라고 말했다.
아쉬운 점은 이번 개정령이 30만 원 미만의 소액 사건에만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질병청 관계자는 개정령의 내용을 설명하면서도 ‘30만 원 미만의 소액’이라는 구체적인 금액을 재차 강조했다. 그 이상의 보상금이 지급되는 사례에 대해서는 별도의 언급을 하지 않았다.
문제는 고액의 치료비가 들어가는 중증 이상반응의 경우 조사 과정과 피해보상 심의 절차가 더욱 길고 복잡해진다는 점이다. 일단 중증 이상반응 신고가 들어오면 보건소는 인적사항, 백신 종류, 접종일 등 기초조사를 수행해 지자체에 올린다. 지자체 역학조사관은 해당 사례와 백신접종 간 인과성 평가를 위한 역학조사를 실시해 조사서로 만든다. 이후 지자체 민관 합동 신속대응팀은 작성된 조사서를 바탕으로 1차 인과성 평가를 한다. 지자체 심사를 마친 사례가 질병청 예방접종 피해조사반 회의에서 최종 평가까지 받고 나면, 예방접종피해보상 전문위원회에서 최종 보상 여부를 결정하는 식이다. 촘촘하지만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특히 취약계층의 경우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의료비가 감당할 수 없이 불어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제기됐다. 정부는 긴급복지지원제도와 재난적 의료비 등 현행 제도를 연계해 활용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 역시 지원 자격 제한이 있고 심사 기간이 소요돼 완벽한 해결책은 되지 못 한다.
질병청의 행보는 최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백신 국가책임 강화’의 일환으로 보인다. 백신 접종 피해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비판과 함께 부스터샷 접종을 기피하는 움직임이 일자 예방접종 후 생기는 이상반응에 대해서는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다.
앞서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은 10일 오후 백브리핑에서 “내년부터 코로나19 백신 접종 후 숨졌다고 보고된 이들 가운데 인과성 평가 근거가 불충분한 사망자에게 1인당 5000만 원의 위로금을 지급하기로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야당의 잇단 비판을 의식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실제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선거대책위원회는 ‘코로나 피해 손실보상 50조 원’과 ‘피해 입증 전 선 보상제도’ 등 연일 코로나19 피해 관련 대책을 내놓고 있다. 원희룡 선대위 정책총괄본부장은 9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코로나 피해손실보상에 50조 원 이상을 투입하고 입증 자료 확인 전이라도 국세청과 지자체가 보유한 행정자료를 근거로 피해액의 절반을 먼저 지원하겠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한편 개정령 시행은 이르면 내년부터 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행령 일부개정은 입법예고, 법제처 심사, 차관회의와 국무회의 등을 거쳐 공포되는데 효력은 공포 즉시 발생한다. 정부는 입법예고 기간 동안 개정령안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을 들을 예정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법제처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입법예고 기간은 12월 10일부터 23일까지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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