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아무개 여인은 어린 시절부터 지긋지긋한 가난을 겪으면서 살아왔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1등으로 중학교에 입학했지만 받을 수 있는 장학금의 액수는 학비 걱정 없이 공부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아껴주는 선생님들 덕택에 학교의 모든 장학금을 싹쓸이 하다시피 해서 받는 방법으로 간신히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교 시절 역시 장학금 수혜와 함께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간신히 졸업했다. 대학 진학 역시 자신의 성적보다 한참 낮춰서 등록금이 아주 저렴한 국립대학을 선택했다.
졸업 후 작은 중소기업에 취직해서는 받는 월급을 몽땅 저축하였다. 김 여인이 중소기업을 다니던 그때만 하더라도 국내에는 부자에 관련된 책이라고는 단 한 권도 없던 시절이었다. 매일같이 퇴근길에 부자의 길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자신의 길을 찾겠다며 이를 악물었다. 대학 때 배운 경제원론과 경영학원론의 책을 수십 번 다시 읽으면서 ‘돈을 모으는 데에는 저축과 동시에 새로운 투자가 절대적’이라는 점을 외우고 또 외웠다.
월급을 몽땅 저축하고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쌀과 반찬은 시골의 부모님이 보내주는 것으로 해결했다. 한 달에 자신의 돈으로 사는 것은 ‘소주 한 병과 라면 2개뿐’이었다. 가끔씩 혼자서 라면 안주에 소주를 한잔씩 마시는 것이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 화장품은 무료로 나눠주는 샘플을 죄다 주워 모았고, 옷은 월급 받는 다음날 몇 천원짜리 한두 벌 사는 것이 전부였다.
어느 날 그녀는 우연히 만난 아주 비슷한 처지의 남자를 유심히 관찰하였다고 한다. 점잖고 말은 없으나 척 보면 가난의 때를 전혀 씻지 못한 남성이었다. 김 여인은 ‘바로 저 남자다’라는 생각이 들자 곧바로 결혼 결심을 했다.
결혼은 쉽게 성사되었으나, 김 여인은 아주 독한 마음을 품었다. 남편에게 가장 돈을 쉽게 벌 수 있는 길이 사우디에 가는 것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결국 망설이던 남편을 기어이 사우디 건설현장에 파견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 직후 그녀는 곧바로 모든 짐을 정리해서 시집으로 들어갔다. 남편이 사우디에서 보내는 돈은 몽땅 통장에, 자신이 버는 월급도 몽땅 통장에 집어넣고, 생활비는 시집에서 해결하겠다는 것이 김 여인의 원대한 계획이었다. 시집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독한 마음을 먹었고, 남이 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이 부자 되는 길이라는 것을 내심으로 강조하였다.
80년대 들어서니 그동안 모은 돈이 꽤 되었다. 당시 국내에서 ‘새로운 투자’의 방법으로는 부동산밖에 없다는 점을 주변을 통해 절실히 깨달았다. 아파트는 물론 상가, 원룸과 오피스텔 까지 손댔다. 결국 오늘날 김 여인은 아파트 10여 채에, 30여 개의 원룸이 있는 빌딩도 소유했고, 상당한 돈이 예금되어 있는 통장도 여럿 갖게 됐다.
그녀가 ‘알짜 부자’라는 소문이 나면서 주변에서 유혹은 끝없이 들어왔다. 한창 주식이 붐을 이룰 때 “주식에 한번 투자해 보시라”는 여러 번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끝내 주식은 돌아보지도 않았다. ‘위험’이 나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남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이 김 여인이 주식을 회피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김 여인은 대학 때 배운 경제원론과 경영학원론의 기본적인 원칙에 아주 충실했던 셈이다. 위험이 있어야 수익이 커진다. 그러나 위험을 내가 통제할 수 없을 때에는 통째로 날아갈 수도 있다는 원칙이었다. 김 여인이 경험으로 나름대로 터득한 ‘부자학 개론’은 이렇다.
“부동산은 일단 매입한 이후에 내가 처리를 하지 않는 한에는 위험이 상당히 낮다. 물론 부동산 거품이 일시 꺼질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절대 한없이 지속적으로 떨어지지는 않는다. 한국은 땅이 유한한 국가다. 인구가 늘어나면 땅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늘어나게 되어 있다. 따라서 부동산값은 인구가 느는 한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김 여인은 왜 주식 투자는 철저히 외면했을까. 주식의 가격은 회사 내부의 가치와 경쟁상황, 그리고 다른 외적인(정치적·세계적)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경제원론과 경영학원론에서 가르쳐주는 기본 시사점은 주식가격의 결정요인은 너무나 많고 복잡하다는 것이었다. 김 여인은 복잡한 것은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데 별로 도움이 안된다는 확신을 가졌다.
인생은 ‘단순하면서도 강한 방법들’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그래야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김 여인의 전략이었다. 김 여인이 택한 단순하면서도 강한 방법들은 ‘장학금을 계속 타는 것, 들어온 돈은 무조건 아껴서 모으는 것, 벌 수 있는 대로 계속 벌어들이려면 남편을 사우디에라도 보내는 것, 인구가 증가하는 대로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 부동산을 계속 매입해 두는 것’이었다. 그녀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기 힘든 그녀만의 독특한 블루오션 전략을 개발하고 이를 충실히 실행한 끝에 부자의 반열에 올라섰다.
일반인들은 인생에서는 실패가 허용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부자들은 자신의 인생에서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다고 믿는다. 부자들은 조금이라도 나태해지면 곧바로 자신이 부자의 반열에서 밀린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다. ‘나는 항상 새로워져야 한다. 매일같이 블루오션 전략을 찾고 그리고 매일같이 실행하여야 한다’라고 철저하게 믿고 있다.
대한민국은 현재 국민소득 1만달러의 문턱에 걸려 있다. 물론 1만달러는 넘었으나 당분간 2만달러에 자력으로 도달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필자는 대한민국은 지금 ‘일반인병’에 빠져 있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이 부자국가(wealthy nation)가 되려면 우리는 1960~70년대의 산업화시대보다 훨씬 더 강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아무 것도 없어서 고속도로를 내고(아무 것도 없어서 사우디에 인력을 파견하고), 아무 것도 없어서 전국민이 절약하는 새마을운동을 하는 블루오션 전략으로 성장했다.
2000년대에는 그때보다는 규모가 수백 배 더 커졌으나 이제는 더 강하고 새로운 블루오션 전략들(고난도의 기술개발 지속화, 대체에너지의 끊임없는 탐구, 해양자원의 무조건적 개발, 개인들의 부자정신화 교육 전파, 전국가적인 절약운동 등)이 박정희 정권 시대보다 더 강렬하게 전개되어야 부자국가가 된다. 해이해진 심리적 인플레를 과감히 버리고, 김 여인처럼 매일같이 새로운 길들을 찾아야 부자가 될 수 있다. 개인도 그리고 국가도 역시 마찬가지다.
서울여대 경역학과 교수 <부자도 모르는 부자학개론>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