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임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이 지난달 이명박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은 후 함께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이명박 정부의 초대 경제수장은 강만수 현 산은금융지주 회장이다. 강 회장의 좌우명은 소박하게 들리는 ‘만사에 감사하자’다. 강 회장의 삶은 만사에 감사할 만한 인생으로 평가된다. 그는 행정고시 8회로 공직에 입문한 뒤 재정경제원(현 재정부) 차관까지 승승장구했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자 주범으로 몰려 공직생활에서 물러난 그는 10년 만에 이명박 정부 일등공신, ‘MB노믹스’의 창시자라는 이름과 함께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러나 금융위기 발발 이후 고환율 정책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면서 장관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리고 다시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및 대통령 경제특보로 컴백했다. 이후 야당의 반발에도 산은금융지주 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만사에 감사할 일만 있었지만 경제수장으로서는 평이 극과 극으로 엇갈린다. 고환율 정책으로 금융위기가 터졌던 2008년 환율은 1500원을 넘어섰고 물가 불안은 악화됐다. 고환율 덕택에 대기업들의 이익은 막대해졌지만 수입물가 상승으로 서민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졌다. 이명박 정부가 최근 들어 야당의 복지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강 회장이 짜놓은 MB노믹스의 그림자인 셈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금융감독원장까지 지내고도 이명박 정부에서 2년 4개월이라는 역대 두 번째로 긴 재임기간을 기록한 윤증현 전 장관의 좌우명은 ‘화이부동’이다. <논어>에서 나오는 문구로, ‘다른 사람과 생각을 달리하지만 이들과 조화를 이루면 군자’라는 뜻이다. 이 문구는 윤 전 장관이 금감원장 시절부터 즐겨 인용하는 문구다.
윤 전 장관은 좌우명처럼 특유의 카리스마를 가지고 다른 사람과 조화를 이뤄내는 힘이 강하다는 평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지분이 전혀 없음에도 화이부동의 자세로 정권 내 다른 인사들과 특별한 마찰 없이 경제정책을 이끌어왔다. 특히 각 경제부처와의 경제정책 조정능력은 발군이었다. 여당은 물론 야당에서조차 윤 전 장관에게 특별히 경제정책을 문제 삼는 이가 없을 정도로 정치권과도 사이좋게 지냈다.
이러한 모습은 주요20개국(G20) 회의 당시 여실히 드러났다. 서울 G20정상회의를 앞두고 각국 재무장관들과 사전 협의를 위해 세계를 한 바퀴 돌 때 윤 전 장관은 다른 나라 사람들과 어울리는 힘을 보여줬다.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는 러시아의 국민시인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암송해 러시아 측 참가자들로부터 갈채를 받았다. 또 베를린에서는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과 회담을 마친 뒤 기자회견장을 들어설 때 테러로 하반신 마비가 된 볼프강 쇼이블레 장관의 휠체어를 직접 밀고 나오기도 했다.
서울 G20 회의 당시 신흥국 IMF 지분 문제가 유럽 선진국들의 반대에 막혀 진척이 없자 프랑스 재무장관(현 IMF 사무총장)에게 전권을 위임하고 도움을 요청, 라가드르 장관의 힘으로 유럽의 반대를 잠재울 수 있었다. 이러한 좋은 평가 속에서도 경제 현실과 이명박 정부의 고성장 정책 사이에 조화를 이루려는 의도였는지 올해 경제 목표를 성장률 5%, 물가 3%로 잡았다가 고물가에 발목이 잡혔던 것은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이명박 정부 세 번째 경제수장이 된 박재완 장관의 좌우명은 ‘마행처 우역거’다. ‘말이 간 곳이라면 소도 갈 수 있다’는 뜻으로 박 장관이 지닌 성실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말이다. 박 장관은 관료 때는 물론 대학교수, 국회의원 시절에도 성실하기로 이름이 높았다. 의원 시절 국정감사 시기가 되면 의원실에 야전침대를 갖다 놓고 보좌관들을 진두지휘했다. 청와대에 들어간 뒤에도 1주일을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일했고, 고용노동부 장관 시절 역시 일요일에 본인이 직접 차를 몰고 나와 근무를 할 정도였다.
박 장관의 좌우명에는 뛰어난 위기대처능력과 리더십으로 경제위기를 돌파해낸 윤 전 장관의 뒤를 이은 어려움도 드러나 있다. 짧은 재정부 관료 경험을 가지고 정통 관료들을 지휘해야 하는 곤란함도 녹아 있다. 박 장관은 ‘마행처 우역거’라는 말마따나 취임 직후부터 빡빡한 일정을 끊임없이 소화해내고 있다. 수행에 나선 직원들이 피로를 호소할 정도다.
하지만 경제정책이 박 장관의 좌우명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로 얽혀 있어 주변의 우려를 사고 있다. 박 장관은 감세 정책 추진, 무상복지 및 반값 등록금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한 뒤 밀어붙이고 있지만 야당은 물론 여당으로부터도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있다. 정부부처 관계자는 “경제정책이라는 것은 상황에 따른 위기관리 능력과 함께 타 부처와 정책조정, 정치권 및 경제계에 대한 설득 등이 수반되어야 한다”면서 “박 장관도 단순히 묵묵히 성실하게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서찬 언론인
“1사 만루 상황 마무리 등판”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의 열성팬으로 유명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정책을 설명할 때 야구 용어를 많이 사용한다. 박 장관이 말한 야구 용어에 주목하면 집권 말에 들어간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을 엿볼 수 있다.
박 장관이 취임 후 가진 첫 번째 경제정책조정회의와 기자간담회에서 “내야 수비도 지휘하고 투수도 리드하고, 그런 가운데 패스트볼 같은 결정적 실책이 없도록 몸을 던져 경기에 열중하는 포수가 되겠다”면서 ‘포수론’을 내놓아 화제가 됐다. 각 부처의 정책을 조율하고 경제실패가 없도록 몸을 던지는 야전사령관이 되겠다고 의지를 보여준 셈이다.
지난 6월 29일 예산과 관련한 회의를 하면서 “투수들 사이에선 ‘구속을 1㎞ 높이는 것보다는 제구력을 1㎝ 개선하는 게 낫다’라는 이야기가 있다”면서 “이를 예산 측면에 대입해보면 재정투입을 무작정 확대하기보다는 적재·적소·적기에 투입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치환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치권의 무상복지와 반값 등록금 주장에 굴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
자신의 임무에 대해서는 “박빙의 리드 상황에서 1사 만루를 맞아 마무리를 전제로 등판했다”라고 정의 내리면서 “동점 내지 역전 당하지 않고 세이브를 하거나 최소한 홀드라도 기록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는 경제회복세를 이어가면서 물가 불안과 재정악화가 확대되지 않도록 해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겠다는 뜻이다. [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