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도나 상대한 아르헨티나전, 지금 같으면 퇴장 다수”
최근 안산 그리너스 지휘봉을 새롭게 잡은 조민국 감독은 월드컵 본선 무대를 2회 밟아 본 인물이다. 월드컵 대표팀에 선발 되더라도 경기에 뛰지 못하는 선수도 부지기수지만 당대 최고 스위퍼로 평가 받았던 조 감독은 1986 멕시코 월드컵과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 모두 출전 경험이 있는 인물이다. 그가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과거 월드컵과 관련한 추억을 털어놨다.
1986 멕시코 월드컵, 대한민국이 32년만에 본선 무대를 밟은 대회다. 1954 스위스 월드컵에 첫 출전한 대표팀은 이후 7대회 연속 참가하지 않거나 지역 예선에서 탈락했다.
이에 오랜기간 국내에선 월드컵이라는 대회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 조 감독 또한 당시를 회상하며 "월드컵이라는 대회가 그렇게 큰 대회인줄 몰랐던 것 같다. 당시만 해도 선배들이 자주 뛰던 박스컵이나 해외에서 열리는 킹스컵(태국), 메르데카컵(말레이시아) 등에 시선이 쏠려 있었다. 멕시코 월드컵 예선 마지막 경기를 마치고 본선 티켓을 따낸 기념으로 선수들과 태극기를 들고 운동장을 돌았는데 '드디어 끝났다', '빨리 쉬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며 웃었다.
32년만에 진출한 월드컵 본선은 세계 무대의 벽을 실감하는 무대였다. 조 감독은 "사실상 처음 가본 대회나 마찬가지 아니었겠나. 상대팀도 모두 강팀이었다"고 말했다. 당시 대한민국은 A조에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불가리아와 함께 편성됐다.
1986년 아르헨티나 대표팀에는 축구 역사상 최고 선수 중 한 명인 디에고 마라도나가 뛰고 있었다. 해외팀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던 시절이지만 마라도나의 존재만큼은 대한민국도 인지하고 있었다.
"경기 전 마라도나가 몸을 푼다고 내 앞을 지나가는데 깜짝 놀랐다. 몸통이나 종아리가 나와 비교하면 두 배더라. 저런 몸으로 그렇게 날아다니니까 당연히 축구를 잘 할 수밖에 없다. 키는 작지만 몸이 워낙 다부져서 마치 곰이 뛰어다니는 것 같더라."
대한민국은 32년만의 월드컵 본선 진출이었지만 강팀을 상대로 주눅들지 않는 패기를 보였다. 일부에서는 아르헨티라를 상대로 한 한국의 강한 태클에 '태권도 축구'라는 별칭을 붙이기도 했다. 조 감독은 이와 관련해 "지금 같으면 다 퇴장이다"라며 웃었다. "나는 스위퍼였기에 뒤에서 경기를 전부 지켜볼 수 있었다. 존경하는 형님들이지만 허정무, 김평석, 박경훈 등 선배님들이 너무 거칠게 하기는 했다. 그렇게 한다고 이길 수 있는 전력도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아르헨티나전 이후 팀 미팅 일화도 밝혔다. 당시 사령탑 김정남 감독은 선수들에게 일일이 아르헨티나전 패배 이유를 물었다고 한다. 선수들은 각기 나름의 대답을 내놓았지만 조민국 감독은 "마라도나한테 골 안먹히면 잘한 것 아닌가요"라며 물었다. 실제 당시 대표팀은 마라도나에게만큼은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다. 당시 마라도나는 한 대회에서만 5골을 넣으며 조국의 우승을 이끄는 신적인 활약을 펼쳤다.
조별리그 2차전 상대는 불가리아였다. 스코어는 1-1 김종부 현 허베이 FC(중국) 감독의 골로 무승부를 거뒀다. 대한민국 역대 최초 월드컵 본선 승점 획득이었다.
조민국 감독은 "이제 와서 할 수 있는 이야기"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자신은 김 감독의 당시 골이 상대 자책골 같다는 것이었다. "불가리아 골키퍼의 당황스러운 표정이 느껴졌. 밤에 숙소에서 김종부에게 사실대로 말하라고 하니까 대답을 안하더라. 이제는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았나"라며 웃었다.
그는 4년 뒤 열린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도 참가했다. 32년만의 첫 출전이었던 전 대회와 달리 이탈리아 대회에서는 축구팬들의 성적에 대한 기대감도 높았다. 예선에서도 좋은 성적으로 본선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대표팀은 본선에서 이렇다 할 힘을 쓰지 못하고 돌아왔다.
"전적으로 그 때의 축구협회가 잘못한 결과라고 본다. 협회는 팀이 잘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줘야 하는 곳이다.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준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훈련 기간도 짧았고 너무 대회에 임박해서 이탈리아에 넘어갔다. 지금과 같은 강팀과의 평가전이 없었다. 본선 상대국에 대한 정보도 없었다. 나 개인적으로도 부상 여파로 컨디션이 좋지 못했다."
아쉬움이 남는 선수시절 월드컵이지만 조 감독은 현재 대표팀에 대해서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일단 환경적으로 과거보다 훨씬 체계적이다"라며 "최근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는 것 같은데 본선에서도 후배들이 박수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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