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업 때 주전 양의지 지켜보는 것만으로 엄청난 공부…린드블럼과 20승 파트너 자부심”
2021년 4월 16일 LG 트윈스전에서 상대 투수의 공에 안와골절 부상을 당하는 위기를 겪었지만 54일 만에 1군 무대에 복귀할 정도로 뜨거운 책임감을 보여줬던 박세혁. 2021년 KT 위즈와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황당한 주루 플레이를 펼치는 바람에 팬들의 원성을 한몸에 받기도 했다.
2021년 12월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 후 가정을 꾸린 그는 2022시즌을 마치면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는다. 야구를 더 잘해야 하는 충분한 이유들이 존재하는 터라 비시즌으로 보내는 올겨울을 개인훈련으로 뜨겁게 불태우고 있는 박세혁을 만났다.
―2022시즌 이후 FA 자격을 얻는 걸로 알고 있다. 2021시즌 FA 선수들의 대형 계약을 지켜본 심경이 궁금하다.
“포수가 좋은 대우를 받게 돼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특히 친구인 한화 이글스 최재훈이 1호 FA 계약을 맺어 정말 기쁘더라. 재훈이가 트레이드를 통해 한화로 가기 전까지 두산에서 동고동락했던 터라 더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FA는 미래에 대한 가치를 평가받는 거지만 그동안 고생한 데 대한 보상 의미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매우 흥미롭게 이번 FA 시장을 지켜봤다.”
―야구 하면서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선수가 있다면?
“(김)재환이 형이다. 내가 신인이었을 때부터 재환이 형이 잘 이끌어줬다. 수년 동안 재환이 형 라커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룸메이트도 했는데 평소 훈련 많이 하는 형의 루틴을 따르다보니 나도 그 루틴이 몸에 배었다. 쉬는 날인 월요일에도 야구장 나가 훈련하는 건 재환이 형한테 배운 루틴이다.”
―두산 입단 후 양의지 선수가 NC로 이적하기까지 박세혁 선수 앞에는 항상 양의지라는 산이 있었다. 두산에서 같이 선수 생활할 때 그 산을 넘기가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진 않았나.
“어렵다는 생각보다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포수와 함께 지내며 많은 걸 배울 수 있어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의지 형이 있는 한 나는 백업일 수밖에 없는데 그걸 탓하기보다 백업 포수로 최고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의지 형 옆에서 야구를 배운 게 포수 박세혁을 성장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양의지 선수가 부상을 당하거나 휴식을 취할 때 박세혁 선수가 마스크를 쓰고 출전했다. 그럴 때마다 선배와 비교된다는 부담도 컸을 텐데.
“어느 팀이랑 하든 의지 형의 볼 배합과 나의 볼 배합이 다를 경우 타자들 입장에선 헷갈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봤다. 비교당한다는 생각을 하는 대신 의지 형의 백업으로 내가 어떤 장점을 발휘할 수 있을지 집중했다. 내가 성장하는 데 의지 형이 큰 도움이 됐다. 나로선 한국시리즈에서 의지 형이 풀어가는 경기를 지켜봤던 것만으로도 엄청난 공부가 됐다.”
―양의지 하면 더스틴 니퍼트가, 박세혁 하면 조쉬 린드블럼이 떠오른다.
“감사할 따름이다. 포수 하면서 20승 투수와 배터리를 이룬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가. 의지 형이 NC로 이적 후 니퍼트 선수와 배터리를 이루기도 했다. 그 호흡을 잊을 수 없다. 린드블럼과는 내가 주전 포수가 된 후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다. 린드블럼 덕분에 20승 투수의 포수라는 자부심이 생겼다. 그 선수가 20승을 거두는 동안 내가 다 그의 공을 받았다. 의지 형한테 니퍼트가 마음 속 영원한 에이스라면 나한테 그런 존재가 린드블럼이다. 이후 알칸타라, 미란다 등 실력 있는 선수들과 호흡을 맞췄지만 린드블럼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2019년 4월 5일 잠실 NC전에서 처음으로 양의지 선수를 상대팀 선수로 만났다. 당시 어떤 기분이 들었나.
“정말 소름이 끼쳤다. 의지 형이 좋은 타자라는 건 알았지만 그 형을 타석에 세워 둔 채 포수 마스크를 쓴 적이 없었던 터라 긴장이 많이 됐다. 의지 형의 집중력이 대단했다. 당시 안타를 많이 맞았던 것 같다. 그 경기 후 내 자신과 많은 대화를 나눴고 반성도 많이 했다. 다음에 다시 만나면 이번보다 조금 더 발전된 모습을 보이자고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야구인 2세로 주목을 받았다. 현재 두산 2군을 맡고 있는 박철우 감독의 아들이란 타이틀이 야구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나.
“어렸을 땐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이 많았다. 아버지의 아들이기 때문에 야구를 잘하는 건 당연했고, 야구를 못하면 남들보다 더 많은 욕을 먹었다. 그때 목표가 있었다. 박철우 코치의 아들 박세혁이 아니라 박세혁의 아버지 박철우라는 인사를 듣게 하겠다고 말이다. 키움의 (이)정후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 야구인 2세라면 거의 비슷한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아버지 명성에 먹칠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누구의 아들이란 사실도 부담스럽지만 아버지랑 같은 팀에서 선수 생활한다는 게 더 어려웠을 것 같다.
“처음에는 눈치를 많이 봤다. 아버지가 1군 코치로 계실 때는 피해 다니기 바빴다. 나중에 선배들이 신경 쓰지 말라고 조언해준 다음부터 조금씩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었다.”
―2021년 4월 16일을 잊지 못할 것 같다. LG전에서 불의의 부상을 당했고 안와골절로 수술을 받았다. 정말 힘든 시간이었을 텐데.
“공에 맞은 순간엔 통증조차 못 느꼈다. 공이 헬멧 쪽을 향했다고 생각하고 장갑 낀 손으로 얼굴을 만졌는데 손에 피가 묻어나는 게 아닌가. 한쪽 눈을 뜨려고 하니 눈이 안 떠졌다. 트레이닝 코치님이 뛰어 왔을 때 나도 모르게 '저 야구 못하는 거 아니죠?'라고 물어봤던 것 같다. 앰뷸런스에 실려 가는데 두려움이 엄습했다. 실명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더 걱정이 됐다. 다행히 수술 결과가 좋았고, 하체 운동은 계속 할 수 있었기에 수술 후 바로 재활 훈련에 돌입했다.”
―6월 9일 사직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54일 만의 부상 복귀전을 치렀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바람에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내 야구 인생은 불확실성의 연속이었다. 그런 어려운 과정을 거친 후 비로소 주전 포수로 자리매김했는데 안와골절 부상을 당한 거다. 1군에 복귀해도 정상적인 경기를 치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중계방송사와 인터뷰하는 순간 그 모든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고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더라.”
―KT와 한국시리즈 1차전서 9회 황당한 주루 플레이를 선보여 비난을 한몸에 받았다. 당시 상황을 설명해 달라.
“프로 선수로서 해선 안 될 플레이를 했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행동이었다. 그동안 내가 경기하는 모습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내가 그렇게 대충 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걸 잘 알 것이다. 그땐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모습을 보였는지 이해가 안 된다. 말도 안 되는 플레이로 팬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겼다. 지금도 반성하고 있다.”
―만약 다시 태어나 야구를 한다면 어떤 포지션을 맡고 싶나.
“그때도 포수를 하고 싶을 것 같다. 포수는 다른 포지션과 달리 경기 내내, 경기 후 느끼는 감정들이 크다. 그건 포수만 갖는 느낌표다. 그걸 놓치고 싶지 않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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