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째 짝사랑 ‘소진’ 역으로 펼쳐낸 따뜻한 사랑 이야기…“빛이 있는 곳으로 저를 꺼내준 감사한 작품”
“동화 속 이야기처럼 작품에 빌런이 없다는 점에 끌렸던 것 같아요. 서로가 마주할 수 없는 너무나 삭막한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커다란 행복을 바라기보단 원래 있었던 일상 속의 따뜻함을 되찾고 싶은 마음이거든요. 조금은 동화 같은 이야기가 때로는 마음을 순수하게 만들어줄 때가 있잖아요? 그래서 ‘해피 뉴 이어’를 선택하게 된 것 같아요.”
영화 ‘해피 뉴 이어’에서 한지민은 15년째 남사친 승효(김영광 분)에게 고백을 망설이고 있는 호텔리어 소진 역을 맡았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끙끙 앓던 동안 승효는 예비 신부인 영주(고성희 분)와의 깜짝 결혼 소식을 발표하게 된다. 큰 충격을 받고 둘 사이를 질투하면서도 결국 이뤄지는 인연과 그렇지 못한 인연을 수긍하며 배우 스스로도 만족할 만한 결말을 맞기도 한다.
한지민은 15년 동안 속앓이를 해 온 소진의 모습이 자신과 똑같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혼자 시작했다가 혼자 끝내는 짝사랑으로 설렜다가 주눅 들기를 반복하던 자신이 겹쳐 보인다는 이야기였다.
“아무래도 드라마 속 멜로 주인공이나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여주인공 같은 사랑 감정은 현실에서 만나기가 쉽지 않죠(웃음). 현실에선 좀 더 소진이 같은 느낌을 많이 경험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제 주변에도 남사친을 많이 좋아하게 되거나, 친구와 사귀었다가 헤어지고 안 보게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저도 현실에선 짝사랑 경험이 많았어요. 관계가 깨질까봐 두렵기도 했지만 거절당하면 상처를 받을 것 같다는 걱정도 많았거든요. 그래서 혼자 좋아하는 게 나쁘지 않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웃음).”
앞선 다른 인터뷰에서 이 이야기가 언급되면서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대체 한지민을 거절하는 미친 X이 누구냐”는 격앙된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이 말에 크게 웃음을 터뜨린 한지민은 “그냥 제가 제풀에 먼저 겁을 먹는 것”이라며 설명을 덧붙였다.
“제가 사실 성향이 좀 그래요. 제가 불편해도 남이 안 불편하면 제 마음은 편하더라고요(웃음). 관계에 있어서는 특히 더 조심하는 편이거든요. 제 MBTI(성격유형선호지표)가 INFP(내향적인 측면이 강한 성격)인데요, 얼마 전에 소속사 대표님이 INFP 특성을 정리한 영상을 하나 보내주셨어요. 거기 보면 벤치에 앉아 있다가 일어나려는데 누가 제 옆에 앉아요. 그러자 ‘내가 일어나면 저 사람이 민망해 하겠지?’ 하는데 그게 완전 제 모습인 거예요(웃음). 상대가 제 행동을 어떻게 생각할까를 많이 고민하는 타입이거든요. 고백을 하더라도 대답이 안 와서 제가 상처 받을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제가 그런 얘기를 했다는 것으로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 것 같아서 짝사랑이 편했던 것 같아요(웃음).”
그럼에도 한지민은 여전히 사랑에 대한 동경이 있다고도 강조했다. 소진과 승효의 이야기 외에도 ‘해피 뉴 이어’에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등장한다. 이 가운데 중장년층의 다시 시작하는 사랑을 그린 캐서린(이혜영 분)과 상규(정진영 분)의 사랑에 한지민은 특별한 감정을 느꼈다고 말했다.
“저는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큰 감정이 바로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친구 간의 사랑처럼 내 인생에 활기를 불어 넣어주고,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건 사랑인 것 같아요. 어릴 때도 그렇지만 나이가 들었어도 사랑 이야기를 보면 그게 내 나이대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가슴이 떨려요. 이번에 이혜영 선배님의 캐릭터가 너무 멋있더라고요. 젊었을 때 못 다한 사랑을 지금은 왜 못 해? 와이 낫? 이렇게 거침없이 상규에게 고백하는 캐서린의 모습이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멜로는 어떤 나이에 국한돼서 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두 분의 로맨스를 보며 앞으로도 할 수 있겠구나 싶었죠(웃음).”
그만큼 한지민은 이번 작품에 대한 애정이 커 보였다. 어둠 속으로 한없이 가라앉고 있던 자신을 빛이 있는 곳으로 이끌어 줬다는 ‘해피 뉴 이어’는 한지민에게도 특별한 작품이 될 수밖에 없었다.
“사실 2020년 한 해 동안 참 많이 힘들었어요. ‘조제’가 코로나19로 힘들 때에 개봉했고, 끝나지 않는 코로나19 시기 동안 준비한 작품도 중단하게 됐어요. 또 제게 소중했던 가족 분들도 몇 분 떠나보내고 나니까 이제까지 제가 경험해 보지 못한, 내가 왜 눈물이 나는지도 모를 정도로 힘든 시간을 겪게 되더라고요. 바로 그 때 ‘해피 뉴 이어’를 만난 거예요. 그때, 내가 또 무겁게 뭘 짊어지고 가지 않아도 현장에서 밝은 기운을 얻어나갈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돌이켜 보면 저를 좀 더 빛이 있는 곳으로 꺼내준 작품이라 참 감사하게 느껴져요.”
한지민은 힘든 시기 끝까지 곁을 지켜 준 친구들과 팬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거듭 반복했다. 이제는 다 떨쳐낸 것 같은 환한 미소로 기자들을 안심시키기도 했다.
“제가 힘들었을 때 추자현 언니나 한효주 씨가 제 자신을 돌볼 수 있게끔 해주고, 지금 제가 느끼는 감정이 심각한 게 아니라 그저 지나가는 것일 뿐이라고 말해 줬어요. 그 덕에 ‘내가 지금은 어느 한 부분이 고장이 났을 뿐이구나’ 이렇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해피 뉴 이어’를 선택할 때 이런 마음 상태로 해도 될까 걱정도 많이 했는데, 효주 씨가 자기는 영화 ‘해적’ 촬영하면서 많은 에너지를 얻었다고 말해주더라고요. 날씨 좋을 때 소풍 가듯이 즐거운 마음으로 부담 없이 촬영하는 것도 소중한 시간이 될 거라고요. 그래서 선택했는데, 현장에 나와서 캐릭터를 만나니까 힘든 시간들을 벗어나게 됐어요. 작품을 하다 보니 힘들 틈이 없더라고요(웃음).”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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