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체퍼즐 ‘뜯어만드는세상’ 제조ㆍ판매 사업으로 대박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김선철 스콜라스 대표이사.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1980년대 후반, 청년은 정치참여를 통한 사회변혁을 꿈꿨다. 20여 년이 흘러 장년이 된 그는 정치가 아닌 기업 경영을 통해 사회 진보를 이루어가고 있다. ‘뜯어만드는세상’이라는 입체 퍼즐 제조·판매를 주력으로 하는 스콜라스 김선철 대표이사(45)의 이야기다.
김선철 스콜라스 대표는 최근 KBS <1박2일>의 무대가 된 전라남도 다도해 끝자락의 관매도 출신이다. 어머니의 교육열에 초등학교 6학년 때 뭍으로 유학 온 그는 성균관대(한국철학)와 서강대 대학원(석사)을 졸업했다. 대학 재학시절엔 통일·평화운동에 관심이 많았다. 전공도 정치학으로 바꿨다. 하지만 대학원 졸업 때쯤 생각이 바뀐다.
“가난한 상태에서 정치활동을 하면 피폐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무항산자무항심’(無恒産者無恒心, 일정한 생업이나 재산이 없는 사람은 마음의 안정도 누리기 어렵다)이라는 말이 와 닿았어요.”
그는 매형의 의료기기 사업에서 착안, 1996년 의료기기 오퍼상을 시작했다. 무역과 관련한 공부를 한다고 했지만 경험부족과 아이템 부족으로 고전해야 했다. 그러다 1999년 10월, 개인적으로 홍콩에 갔다가 두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된다.
“홍콩 컨벤션센터에서 선물용품박람회가 열렸는데 7000개가 넘는 업체 부스와 수많은 바이어들을 보고 ‘아 이런 시장이 있구나’ 했어요. 당시 국내엔 벤처 붐이 일던 시절이었는데 귀국하자마자 창업 준비에 들어갔죠. 과자 등에 판촉용으로 들어가는 퍼즐로 아이템을 잡고 2000년 3월 마케팅과 제작 기술자 두 명을 섭외해 법인을 설립했습니다.”
자금이 없어 공장은 강원도 원주 매형의 공장 한 동을 빌리고, 서울 사무소도 매형 사무실 한켠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국내서는 생소한 자신의 제품을 ‘입체퍼즐’이라고 정의하고 브랜드를 ‘뜯어만드는세상’이라고 지었다. 디자이너가 없어 미대생들을 모아 그림을 그리게 해 만든 샘플을 들고 그가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은 항공사였다.
“사실 국내보다는 해외 시장을 더 크게 봤어요. 해외 거래선은 없고 해서 떠오른 게 항공사였죠. 오가던 외국인이 우리 제품을 보면 해외 루트를 개척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말이죠.”
신생 회사의 항공사 납품은 지금 생각해보면 ‘무모한 도전’이었다. 한데 아시아나항공에서 그의 샘플에 호감을 보였다. 6개월여 여러 차례의 디자인 품질 검토 과정을 거쳐 어린이 고객 선물용으로 납품이 결정됐다.
“납품 기한 당일 오후 5시까지 아시아나 김포 창고에 입고하라는데, 원주 공장에서 포장이 끝난 게 3시였어요. 그날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데 첫 제품 1만 5000개를 승합차에 싣고 쉬지 않고 달려 5시 5분 전에 도착했어요. 그게 약 700만 원어치였는데 만감이 교차했죠. 아시아나항공에는 지금까지 납품하고 있답니다.”
해외 시장 개척을 위해 처음 뚫었던 항공사 납품이었지만 엉뚱하게(?) 국내 기업과 소비자들의 문의가 쏟아졌다. 항공사 ‘후광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그는 일반 소비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 나섰다. 제일 먼저 떠오른 곳이 그가 자주 가던 교보문고였다.
“교보문고에 코너 개설을 문의했더니 흔쾌히 받아주더군요. 그렇게 오픈했는데 당시 1000원짜리 제품이 중심이었는데 월 매출이 1000만 원씩 나오더라고요. 그 힘을 받아 전국 서점으로 확대해 나아갔죠. 제품도 서점 측 요청대로 고급화하고요.”
혼자서 영업·주문·배달을 한꺼번에 하다가 힘에 부칠 때 서적 관련 유통망을 알게 돼 전국 300개 서점으로 거래선이 확대된다. 기업체에서도 주문이 밀려오기 시작할 즈음 입체퍼즐을 확실하게 띄운 결정적 계기는 패스트푸드였다.
“2002년 <반지의 제왕> 2편이 나왔을 땐데, 롯데리아에 낸 어린이세트 선물 제안이 받아들여졌어요. 전 직원 13명이 한 달 내내 밤샘하며 120만 개 납기를 맞췄어요. 직원은 대부분이 강원도 오지 아줌마들이었는데 다들 생전 처음 여권 만들어 홍콩 갔죠. 정말로 ‘홍콩 갔어요’. 회사는 처음으로 국제 전시회에 나가고요. 보너스도 100%씩 지급했습니다.”
한 번의 납품이었지만 이는 김 대표에게 큰 힘과 학습이 됐다. 그때 기업에 대한 그의 철학이 가닥을 잡는다.
“기업은 ‘업을 기획하는 곳’, 컴퍼니(Company), 즉 빵을 나누는 곳이죠. 우리가 학생운동을 하고 정치참여를 하는 것도 사람 중심의 사회를 만들어 함께 평등하고 자유롭게 사는 사회 만들자는 건데, 이게 기업이라는 공동체 안에서도 가능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잘해서 성장하고 나누고 사회에 기여하자는 거죠.”
창업 첫 해 매출 5000만 원, 이듬해 6억, 다음해 16억…. 처음엔 매출 100억, 200억 원까지 쉽게 가겠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2004년 초 매출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 자금압박도 심해졌다. 대형 오더가 없으면 성장이 어려운 구조였기 때문. 그 때 새로운 돌파구로 마련한 것이 입체퍼즐과 위인전을 결합한 교육제품 <생생 위인전>이었다. 출시 완료를 한 그는 배낭을 메고 광화문에서 원주 공장까지 홀로 도보 행군을 감행했다.
“4일간 걸으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죠. 그때 구상한 것이 뜯어만드는세상 대회였어요. 충성고객 확보와 그들에게 감사하는 축제의 장을 마련하겠다는 게 제 목표였죠. 그렇게 2004년 시작한 게 올 7월 23일 8회 대회를 진행했습니다. 매년 대회 수익금 전액을 성공회푸드뱅크 등 단체에 기부하고 있어요.”
이후 아이템을 더 다양화했다. 특히 교과 친화적 상품이 잘나간다는 통계결과를 바탕으로 ‘교과서에 나온’ 시리즈 등을 출시했다. 이제 포트폴리오는 교육 사업 쪽으로 크게 확대된다.
“곧 보고 듣고 만들고 토론하는 역사수업 교재 <손맛한국사> 52종이 완간되고, 교육네트워크가 갖춰지면 방과후학교와 홈스쿨링 사업이 본격화합니다. 지난해 매출 40억 원 올렸는데요, 올해 60억, 내년 100억, 후년쯤 250억 원을 달성하고 상장할 계획입니다.”
‘성장하고 나누고 사회에 기여한다’는 김 대표의 ‘회사공동체 실험’이 과연 어떤 결실을 맺을지 기대된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