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5일부터 음료수ㆍ파이과자 등 일부 품목의 가격인하를 단행한 롯데그룹 계열 편의점 세븐일레븐.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이와 관련해 소진세 세븐일레븐·바이더웨이 대표는 “고물가 시대에 편의점의 진짜 무기는 가격 경쟁력”이라며 “대형마트와 맞붙어도 밀리지 않도록 해 편의점으로 오는 소비자를 늘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또 “편의점이라고 해서 가격이 비쌀 이유는 없다”며 “좋은 제품을 싸게 파는 게 유통업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사회적 책임”이라고도 말했다. 소 대표의 말은 누가 봐도 타당하다. 그러나 이전에도 타당했을 이 논리를 이제 와 새삼스레 지키겠다고 강조하는 것이어서 듣기에 따라서는 의아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유야 어떻든 결과적으로 소비자 입장에서는 반가운 소식이다. 라면이나 음료 등 생필품을 거리가 좀 떨어져 있는 대형마트나 창고형 할인매장에 가서 다량 구매하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다. 집 앞 편의점에 가서 낱개로 사도 대형마트보다 싸다는 것은 소비자로서는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현재 가격 인하 정책을 쓰고 있는 업체는 업계 순위 3위인 세븐일레븐·바이더웨이뿐이다. 지난해 말 업계 3위 세븐일레븐이 4위 바이더웨이를 인수하면서 지각변동을 예고했으나 아직까지는 업계 순위에 큰 변화는 없다. 업계 1, 2위를 달리고 있는 훼미리마트와 GS25는 가격 인하 정책에 대해 현재로서는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븐일레븐의 일부 품목 가격 인하 결정은 최근 유통업체의 변화와 직결된다. 지난해 세븐일레븐이 1차로 가격인하를 결정했을 때 업계 반응은 꽤 복잡·미묘했다. ‘편의점도 본격적으로 가격인하 경쟁에 돌입했다’는 예측과 ‘추이를 지켜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신중함이 얽혀 있었다.
그동안 편의점은 물건 값이 꽤 비싸기로 유명했다. 오죽하면 ‘편의점에서 슈퍼마켓과 같은 가격에 판매하는 것은 담배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비싼 가격이 비판의 도마에 오를 때마다 편의점업체들은 ‘24시간 운영하는 만큼 유지비·관리비·인건비 등이 훨씬 많이 들어가 부득이한 부분이다’, ‘편의점은 말 그대로 편의를 위해 다양한 품목을 적게 파는 곳이지 가격을 싸게 파는 곳이 아니다’라는 논리로 해명해왔다.
세븐일레븐이 가격을 인하함으로써 이 같은 업체들의 논리를 스스로 깬 것이다. ‘대형 마트와 맞붙어도 밀리지 않을 무기가 가격 경쟁력’이라는 소진세 대표의 말에서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다. 상대적으로 상품가격을 비싸게 받던 편의점이 가격을 내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역시 소 대표의 말에서 절실히 느낄 수 있다. 소 대표는 “편의점 점포수가 2만 개를 넘어서는 시대에 다른 업체들과 같은 가격을 받아서는 승산이 없다”고 말했다.
편의점업체의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1989년 국내에서 7개로 시작한 24시간 편의점은 이제 점포수로 거의 3000배를 바라볼 만큼 성장했다. 편의점 시장은 올해 매출 10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될 만큼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20여 년의 시간에 이룬 성과라고 하기에는 놀라울 정도다.
이 같은 추세는 꾸준히 이어져오고 있다. 지난해 편의점은 소매업 매출 증가율에서 대형마트와 슈퍼마켓을 따돌리고 1위를 기록했다. 대부분 전문가들이 올해에도 급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어 앞으로 성장 잠재력이 대단하다.
지난해 11월 30일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가 유통전문가 81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2011년 소매시장 전망 문항에서 ‘편의점이 11.9% 성장할 것’이라고 답해 백화점(8.7%)과 대형 마트(6.9%)를 따돌렸다. 비록 TV홈쇼핑(18.1%), 인터넷몰(17.5%)에는 뒤졌지만 오프라인 소매업에서는 백화점과 대형 마트를 모두 제친 것이다. 대형마트는 꼴찌를 기록해 포화 상태임을 증명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성장에는 필연적으로 치열한 경쟁이 수반된다”며 “특히 3사가 시장점유율과 점포수에서 팽팽히 맞서고 있는 편의점 업계에서는 앞으로 더욱 치열할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유통업·소매업에서 가장 큰 경쟁력은 가격”이라고 단언했다. 이 관계자는 또 “편의점이 포화 상태에 있는 유통업계의 새로운 채널로 부각하면서 업체마다 편의점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보탰다.
편의점의 변화는 곳곳에서 감지할 수 있다. 특히 먹을거리에서 특화하면서 직장인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의 발길을 끌어들이고 있다. 최근 편의점에서는 예전의 ‘삼각김밥’의 이미지만 떠올려서는 곤란하다. 죽이나 비빔밥은 물론이려니와 피자 반찬 심지어 채소와 생선회까지 판매하고 있다. 이들 먹을거리의 가격도 저렴하다. 대개 3000원 안팎에 한 끼쯤 간단히 해결할 수 있을 정도다. 저렴한 먹을거리로 고객을 유인함으로써 다른 부분의 매출도 올리고 있다.
최근에는 편의점이 PB(자체브랜드)상품을 팔기도 한다. 또 일부 의약품에 대해 편의점 판매가 허용됨으로써 더 많은 고객을 유인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편의점이 포화 상태에 다다른 지 오래인 대형 마트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업체마다 점포수를 늘리고 아이디어를 짜내느라 분주하다.
편의점 업체들이 점포수를 경쟁적으로 늘리는 것을 두고 달리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이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업체들이 새로운 사업으로 삼았던 기업형 슈퍼마켓(SSM, Super Supermarket) 사업이 잦은 마찰과 규제로 불발하자 편의점을 SSM의 대체 사업으로 보고 최근 새삼스레 경쟁적으로 뛰어든다는 것이다.
지역 중소상인들의 반발과 정치권의 비판, 각종 규제와 맞부딪쳐가면서 SSM 사업을 펼치기보다 비교적 반발이 덜한 편의점 사업에 투자한다는 것이다. 기존 점포와 네트워크에다 새로이 점포를 추가 오픈해 SSM처럼 운영할 것이라는 게 SSM과 편의점을 연결시키고 있는 이들의 생각이다. 편의점은 SSM과 달리 이미지 면에서도 지역 중소상인들에게 그리 나쁘지도 않을뿐더러 점포 개점이 자유롭다는 장점도 있다.
최근 나돌고 있는 ‘홈플러스의 편의점 사업 진출 움직임’도 이와 관련이 있는 얘기다. 홈플러스가 최근 새로운 사업에 목말라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에 일반적인 견해다. 대형마트는 이미 포화상태고 새로운 사업으로 SSM을 가장 적극적으로 추진했지만 거의 무산되자 신성장동력 발굴에 어려움을 겪던 홈플러스가 생각해낸 것이 편의점 사업 진출이라는 것.
홈플러스의 편의점 사업 진출과 관련해 한두 달 내 서울 성수동에 편의점 ‘CVS플러스’ 1호 점포를 개점할 계획이라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업계는 또 한 번 떠들썩했다. 홈플러스 측의 계획은 이미 끝났고 성수동점의 인테리어가 부분적으로 진행됐다는 꽤 구체적인 얘기까지 오갔다. 이와 함께 홈플러스는 또 창고형 할인매장 오픈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홈플러스 측은 편의점 사업이나 창고형 할인매장에 대해 “전혀 사실무근이다”는 답변을 되풀이하고 있다.
편의점이 갑작스레 대형 유통업체들의 ‘신성장동력’으로 떠오르면서 다양한 업태가 출현하자 공연히 협력·납품업체들이 또 한 번 타격을 받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편의점에서 할인행사를 하거나 제휴행사를 할 경우 그 비용을 대부분 협력·납품업체에 떠넘긴다는 공정거래위원회 발표가 종종 있어왔다. 사안에 따라서는 불공정행위로 인정돼 과징금 처분을 받기도 한다. 지난해 말 바이더웨이가 2009년의 일이 문제가 돼 공정위 발표에 따라 67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것이 대표적이다.
편의점에 음료를 납품하는 한 업체 관계자는 “업체마다 다르긴 하지만 우리로서는 또 다시 울며 겨자 먹기가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할 뿐”이라고 조심스레 말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