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건만남을 미끼로 남성들에게 돈을 뜯어내는 성매매 피싱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조건만남 홈페이지에 올라온 피싱 게시글(큰 사진)과 메신저 화면 캡처 사진들. |
<일요신문>은 피싱 일당들에게 당한 피해자들과 직접 접촉해 그들의 억울한 사연을 들어봤다. 그들은 하나같이 뭔가에 홀렸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신림동에서 만난 박 아무개 씨(28). 박 씨는 지난 7월 22일 밤 11시 경 우연히 한 채팅사이트에 접속했다. 유료결제 후 그는 채팅창 메신저를 통해 한 여성으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조건만남이었다.
박 씨는 조건만남을 제안한 ‘휘진’이라는 여성에게 급속도로 빠져들었다. 그는 “사실 처음에는 조건만남을 목적으로 채팅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여자가 10만 원이면 모텔비까지 부담하겠다고 적극적으로 달려들더라. 남자 입장에서 그런 제안을 거절하기란 쉽지 않다. 지금 돌이켜보면 부끄러운 짓이었다. 당하고 나니 억울하고 답답하다”고 하소연했다.
박 씨를 피싱했던 일당들의 수법은 교묘하고도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우선 조건을 제시한 여성은 계좌입금을 통한 선 결제를 요구했다. 자주 이용하는 단골들은 믿음이 있기 때문에 후불이 가능하지만 처음 만난 손님들은 선불이 필수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여성은 070 인터넷전화번호를 불러주며 예약과 계좌번호를 안내받으라고 제시했다. 박 씨는 곧바로 전화를 걸었고 조선족 말투를 쓰는 한 남성이 전화를 건네받았다. 남성은 박 씨에게 만날 장소와 시간을 묻더니 자연스럽게 계좌번호를 안내했다. 박 씨는 별 의심 없이 10만 원을 해당 계좌에 입금했다.
여성이 오기로 한 밤 12시가 넘었지만 깜깜 무소식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예약을 접수받은 남성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초이스한 여성이 갑작스레 다른 손님을 받게 돼서 비용이 더 들어갈 것 같다는 전화였다. 이미 이성을 잃은 박 씨는 일당의 요구에 순순히 응하며 20만 원을 추가로 송금했다.
결국 추가 입금 후에도 여성은 오지 않았다. 뒤늦게 사기임을 눈치 챈 박 씨는 남성에게 환불을 요구했지만 그 남성은 “우리는 법인계좌기 때문에 70만원 단위로밖에 출금이 안 된다. 환불을 받고 싶으면 40만 원을 추가로 보내라. 그렇지 않으면 별수 없다. 그렇다고 우리를 신고하면 당신을 ‘성매매 미수’ 혐의로 신고하겠다”며 추가 입금을 요구하는 황당한 변명과 함께 되레 박 씨를 협박하며 전화를 끊었다.
며칠 후 기자가 직접 일당들과 통화를 시도했지만 해당 인터넷전화는 이미 끊어져 있었다. 일당들은 작업을 치고 곧바로 빠진 상태였던 것이다. 박 씨는 “며칠 전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졌는데 내 친한 친구도 똑같은 수법에 당했다고 하더라. 사건을 겪고 인터넷을 뒤져보니 나와 같은 피해자들이 수두룩했다”고 말했다.
실제 인터넷 게시판 곳곳에는 비슷한 수법으로 당한 피해자들의 사례가 수두룩했다. 기자와 온라인상으로 접촉한 한 피해자는 “메신저로 한 여성이 조건만남을 제안했다. 선불금 10만 원을 요구해 송금했는데 여성이 오지 않아 환불을 요구했다. 그런데 그 쪽에서 ‘법인계좌라 500만 원 단위로밖에 송금이 안 된다’고 하더라. 의심 없이 490만 원을 더 입금했다. 그리고는 전화가 끊어졌다”고 설명했다. 피해금액이 수백만 원에 달하는 경우였다.
기자는 직접 피싱 일당과 접촉해보기로 했다. 메신저 피싱 일당들은 남성들에게 직접 접근하는 경우도 있지만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 ‘메신저 아이디’와 함께 여성들의 사진을 올려놓고 자극적인 광고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더 나아가 조건만남 홈페이지를 운영해 적극적으로 피싱을 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기자는 조건만남을 원하는 남성으로 가장해 한 여성의 메신저 아이디를 등록, 직접 접촉해봤다. 해당 여성은 기자에게 화보집에나 나올법한 미인 사진을 들이밀며 조건만남을 꼬드겼다. 피싱을 유도하는 여성의 언변 곳곳에는 남심을 자극하는 묘한 성적유희가 적절히 섞여 있었다. 그는 “숏타임은 모텔비 포함해 15만 원이다. 먼저 10만 원을 입금하면 그 곳으로 가겠다. 070-****-****으로 예약하라”고 피싱을 유도했다. 직접 통화해보니 조선족 말투의 여성이 친절하게 안내까지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 일당을 검거해 피해를 보상받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기자와 통화한 모 경찰청 소속의 사이버범죄수사관은 “상황이 심각하다. 일선 경찰서 해당 부서에는 현재 비슷한 피해를 본 사람들의 사건이 꼭 한 건씩은 접수돼 있다. 심한 경우 수백만 원을 뜯긴 사람도 있다. 하지만 용의자 검거는 매우 어렵다. 이들 대부분 중국 등 해외에 서버를 두고 인터넷 전화로 장난을 친다. 선불금을 받는 통장 역시 대포통장이다”고 말했다.
이 수사관은 이어 “온라인 조건만남은 시도조차 말아야 한다. 무조건 피하는 게 상책이다. 선불금을 요구하는 것은 이들의 전형적 수법으로 모두 사기라고 보면 된다. 혹시나 유혹에 넘어가 피해를 봤다면 무조건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피해자들 상당수가 성매매를 시도했다는 점 때문에 겁을 먹고 신고를 피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어리석은 짓이다. 성매매 미수 혐의가 있지만 법적으로 처벌받지는 않는다. 피해를 봤다면 조속히 신고해 경찰로부터 피해 확인증을 발급받고 해당 은행에 접수하면 운 좋게 돈을 되찾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신고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399명 남성 홀려 1억 이상 꿀꺽
운 좋게 피싱 일당을 검거하는 사례도 있다. 지난 7월 20일 부산 사하경찰서는 메신저로 조건만남 미끼를 내걸고 피싱에 나선 김 아무개 씨(30) 등 일당 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김 씨 일당은 지난 4월부터 불특정 다수에게 접근해 조건만남을 미끼로 남성들을 홀렸다. 이들은 중국 현지 조선족 일당들과 연결돼 있었으며 대포통장으로 돈을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에게 당한 피해자는 드러난 것만 399명이고, 피해금액은 1억 4500만 원에 달했다.
담당 경찰관은 대포 통장에서 현금을 인출하는 김 씨의 모습을 CCTV에서 포착, 검거에 성공했다. 현재 경찰은 조선족 일당을 추적하고 있다.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