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는 거래금액이 수조 원에 달하는 ‘빅딜’(Big Deal)만 있는 것이 아니다. 큰 화젯거리가 되지는 못하지만 ‘스몰딜’(Small Deal)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재계와 시장의 관심이 워낙 빅딜에 쏠려 있어 스몰딜이 주목받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비록 거래금액은 작지만 M&A 시장에서 스몰딜은 거의 끊이지 않고 이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지만 간단치 않은 스몰딜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 봤다.
현대건설 대한통운 하이닉스…. 최근 M&A 시장에 나온 이들 기업은 누가 인수하느냐에 따라 재계 판도가 뒤집어질 만큼 덩치가 크다. 인수대금만 수조 원에 달한다. 이들이 매물로 나오면 당연히 커다란 이슈가 된다. 이들과 관련 있는 기업과 단체들은 서로 이해득실을 따지느라 분주히 움직인다.
이 같은 현상은 빅딜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스몰딜도 이에 못지않다. 다만 거래금액이 빅딜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어 관심을 끌지는 못하지만 스몰딜의 내역만 살펴봐도 재계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올해 성사된 스몰딜은 80여 건에 이른다는 것이 업계 관측이다. 이 가운데 7월에만 알려진 것이 10여 건이다.
스몰딜에 가장 적극적인 대기업은 삼성그룹과 동부그룹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월과 12월 각각 산업용 엑스레이 장비업체 레이와 의료기기업체 메디슨을 인수했다. 특히 레이는 직원이 50명 정도에 불과할 만큼 작은 회사다. 삼성전자가 레이를 인수하기까지 총 비용은 100억 원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동부그룹은 올해 3월 화우테크, 7월 알티반도체를 인수했다. 두 회사 모두 LED 관련 기업이다. 동부는 또 최대주주 횡령 등의 혐의로 상장폐지됐던 코스닥기업 네오세미테크와 세실을 인수했다.
다른 대기업도 중소기업을 인수하는 데 여념이 없다. 삼성중공업은 산업용 보일러 설비 전문업체 신텍을 인수했고, 현대중공업은 평산의 자회사인 독일 야케를 인수했다. 포스코도 플랜트업체인 성진지오텍을 인수했다. 대우조선해양은 대경기계를 인수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스몰딜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중소기업 간에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IT업체들 간 스몰딜은 성사 건수를 정확히 파악하기조차 힘들 만큼 잦다. 이들 스몰딜의 거래금액은 많게는 수백억 원에서 적게는 수십억 원까지 다양하다. 흔히 스몰딜은 대기업들이 ‘승자의 저주’를 피하면서 신사업에 진출할 수 있는 토대를 쉽게 마련하는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인수대금이 많지 않아 인수 후 설사 일이 잘못되더라도 큰 피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신사업에 진출하는 길은 두 가지”라며 “새로운 회사를 차리든지 아니면 기존의 중소기업을 인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가운데 기업들이 최근 인수 쪽을 더 많이 활용한다는 것. 이 관계자는 “엄밀히 말해 기업을 인수한다기보다 그 기업의 네트워크와 기술력을 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회사를 설립하고 인재를 스카우트하고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들이는 시간과 비용을 감안하면 인수하는 편이 여러 모로 유리하다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스몰딜은 때로 동반성장에 위배되고 대기업의 문어발식 사업 확장의 표본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결국 중소기업을 먹어치운다는 것이다. 최근 대기업 스몰딜의 표적이 된 중소기업은 모두 ‘알짜, 강소기업’이라고 평가받는 회사다. 세실이나 네오세미테크처럼 일부 말썽을 빚은 기업도 있지만 대개 기술력 좋고 발전 가능성도 큰 기업이다. 사실 네오세미테크와 세실도 최대주주 횡령 문제만 제외하고는 꽤 인정받는 회사였다.
여기에다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더 있다. 이들 기업이 누구든 쉽사리 넘볼 수 없는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고 있는 기업은 아니라는 점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독보적인 기술력을 보유한 중소기업을 인수하기는 매우 힘들다”며 “그런 기업은 최고경영자(CEO) 스스로 회사를 넘기려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비록 탄탄한 회사지만 자금력에 자신이 없는 중소기업은 회사의 가치가 높을 때 차라리 팔아버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CEO도 있다”며 “그런 기업을 대기업이 인수한다는 것은 문어발식 확장이 아니라 ‘윈-윈’이라고 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소기업 CEO 중에는 회사와 종업원을 끝까지 책임지려는 마음보다 회사 가치를 조금이라도 더 높이 인정받을 때 정리하고자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이 M&A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특히 IT업계에서 이 같은 현상이 더 자주 나타난다고 한다. IT업계 관계자는 “CEO 중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고 사업을 계속 영위하기보다 비쌀 때 팔아치우려 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며 “기업가 정신이 부족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스몰딜이 진행되는 과정에 직원들이 함께 참여하는 기업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M&A 후 여러 가지 잡음과 균열이 발생한다. 인수하려는 기업 입장에서는 회사의 이름보다 직원들의 기술력과 고유의 네트워크에 관심이 더 많은데 정작 직원들 중에는 M&A를 반기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M&A 후 우수·핵심 인력이 불만을 품고 퇴사하는 경우가 빈번하고 직원들 간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일도 발생한다.
얼마 전 다른 회사로 인수된 기업의 한 직원은 “스몰딜 과정에서 직원들이 참여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벌써 이탈한 직원도 있고 직원 간 분위기도 어수선하다”고 전했다. 우수·핵심 인력의 이탈은 인수한 기업에도 큰 손해다. 따지고 보면 우수·핵심 인력에 큰 비중을 두고 인수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그 인력이 이탈한다는 것은 상당한 타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더는 ‘윈-윈’이라고 할 수 없다.
이따금 실사 과정에서 어긋나는 경우가 벌어지기도 한다. 비근한 예로 올 초 현대중공업이 코스닥 상장업체 티모테크놀로지(티모)를 실사했지만 결국 인수나 지분 투자는 이뤄지지 않았다. 티모는 지식경제부의 지원 아래 염료감응형 태양전지 사업을 하는 기업이다. 티모는 최근 태양광 등 녹색산업에 중점을 두고 있는 현대중공업이 인수하기에 알맞은 기업인 셈이다. 현대중공업 측은 “티모 측에서 제휴를 문의해 와 현장조사에 나선 것일 뿐”이라고 의미를 축소한 바 있다.
실사 후 인수·투자 포기는 반대로 피인수가 예정됐던 기업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실사 후 소식이 없다는 것은 무엇인가 잘못됐거나 실사 대상 기업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의 의미 축소 후 티모의 주가는 하락만 거듭하고 있다. 물밑에서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스몰딜에는 이처럼 복잡한 사연들이 얽혀 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