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mRNA 백신 동시 추진, 성공 땐 장남 후계구도 유리하지만 임상 돌입도 못해…CMO 사업도 아쉬운 평가
#광속 태스크포스 발족
한미약품그룹의 지주사 한미사이언스는 2020년 6월 바이오앱과 상호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나선다고 밝혔다. 한미사이언스는 같은 해 12월 식물바이러스 나노 테크놀로지를 접목한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의 전자현미경 VLP(바이러스유사입자·Virus Like Particle)를 공개한 데 이어 2021년 1월에는 코로나19 관련 사업을 담당할 ‘광속 태스크포스(TF)’를 발족했다.
한미사이언스의 코로나19 백신 개발은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대표이사 사장이 주도한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임 사장은 한미사이언스와 바이오앱이 MOU를 체결할 당시 “그린바이오 생성 공정을 도입하면 이 분야의 게임 체인저로 등극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며 “이번 MOU를 통해 6대 비전 중 하나인 그린바이오 분야에서의 혁신을 이끌어 내겠다”고 전했다.
임종윤 사장은 차기 한미약품그룹 회장 후보군에 있는 인물이다. 한미약품그룹은 고 임성기 한미약품그룹 회장이 2020년 8월 별세한 후 그의 부인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이 이끌고 있다. 하지만 머지않아 송 회장의 자녀가 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송 회장은 그간 한미사진미술관 관장과 가현문화재단 이사장 등을 맡았을 뿐 그룹 경영에 직접적으로 참여한 적이 없었고, 나이도 만 73세로 적지 않다.
송영숙 회장은 자녀로 장남 임종윤 사장과 장녀 임주현 한미약품 사장, 차남 임종훈 한미약품 사장을 두고 있다. 임종윤 사장은 한미사이언스 경영을 총괄하는 동시에 한미약품 사업개발(BD) 업무도 담당하고 있다. 임주현 사장은 글로벌전략과 인적자원개발(HRD) 업무를, 임종훈 사장은 경영기획 및 최고정보책임자(CIO)를 맡고 있다. 삼남매 모두 사장 직급이고 보유한 한미사이언스 지분도 엇비슷해 아직까지는 누구 하나 후계구도에서 밀려났다고 보기 어렵다.
한미사이언스가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성공하면 임종윤 사장의 위상도 높아져 차기 회장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다만 한미사이언스가 추진하는 식물 기반 코로나19 백신인 ‘그린 백신’은 모험적인 성격이 강하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제한적으로 일부 식물 기반 의약품의 사용을 허가한 적은 있지만 공식적으로 FDA 승인을 받은 그린 백신은 현재까지 전무하다. 그나마 그린 백신 전문 기업인 캐나다 메디카고가 코로나19 그린 백신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고, 바이오앱은 2021년 12월 ‘돼지열병 그린 백신’을 출시했지만 이는 인체용 백신이 아니다. 바이오앱 관계자는 “코로나19 백신 관련 연구는 계속 진행하고 있다”면서도 “아직 구체적인 임상 일정은 알려진 바가 없다”고 전했다.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한미약품그룹의 의지는 강하다는 평가다. 한미약품은 그린 백신 외에도 한미약품연구센터를 통해 코로나19 변이에 대응할 수 있는 후보물질 ‘HM72524’를 개발했다고 지난 1월 11일 밝히기도 했다. HM72524는 mRNA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한미약품 측은 빠른 시일 내 HM72524를 이용한 코로나19 백신 임상을 신청할 계획이다. 한미약품그룹 내부적으로는 그린 백신보다 mRNA 백신에 집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그린 백신은 바이오앱이 개발을 주도하고, 한미약품은 진행 상황을 지속해서 리뷰하고 있다”고 전했다.
백신을 비롯해 연구개발(R&D) 능력을 입증하는 것은 한미약품의 당면과제로 꼽힌다. 이와 관련, 허혜민 키움증권 연구원은 한미약품에 대해 “실적 개선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하락했는데 R&D 신뢰도 이슈가 컸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2015년부터 기술 이전한 품목들이 (제품으로) 출시되지 않고 있어 추락한 R&D 신뢰도가 회복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은 이 같은 우려를 어느 정도 상쇄시킬 반전카드가 될 수 있다.
#또 다른 먹거리 '위탁생산'
한미약품은 코로나19 백신 위탁생산(CMO) 사업도 진행 중이다. 한미약품은 2021년 5월 제넥신의 코로나19 DNA 백신 ‘GX-19N’의 CMO 계약을 체결했고, 최근에는 인도 자이더스카딜라(자이더스)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자이코브-디’ CMO 계약도 체결했다. 자이코브-디의 경우 엔지켐생명과학이 자이더스와 기술이전 계약을 맺고, 한미약품이 다시 엔지켐생명과학과 CMO 계약을 맺은 것이다. 한미약품은 평택 바이오플랜트에서 백신 대량 생산을 위한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자이코브-디 백신은 2021년 8월 인도의약품관리국(DCGI)으로부터 긴급사용 승인을 받았다. 자이코브-디 백신을 승인한 국가는 많지 않지만 인도 인구가 10억 명이 넘는 만큼 시장성은 클 것으로 보인다. 한미약품과 엔지켐생명과학이 계획하는 최대 목표 생산량은 연간 약 8000만 도즈다.
한미약품의 CMO 사업도 기대에 비하면 아쉽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미약품은 모더나와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 CMO 파트너로 거론됐지만 결과적으로는 이들과 계약을 맺지 못했다. 또 자이코브-디는 다른 백신에 비해 부작용 우려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엔지켐생명과학도 자이코브-디 계약을 체결하면서 “규제기관에 의한 연구개발의 중단, 품목허가 실패 등이 발생하면 계약이 해지될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한미약품 측은 장기적 관점에서 CMO 사업에 적지 않은 기대를 하고 있다. 코로나19 백신이 아니더라도 다른 의약품 생산 수요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미약품 측은 “평택 바이오플랜트를 기존 랩스커버리 제품뿐 아니라 mRNA 및 DNA 기반 바이오 의약품 대량 생산이 가능한 시설로 다각화해가고 있다”며 “이렇게 축적한 mRNA 노하우가 코로나19 이후에도 다양한 치료제 개발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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