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삼구 회장(오른쪽)과 박찬구 회장이 2007년 9월 7일 서울 강서구 오쇠동 아시아나항공 본사에서 500년 아름다운 기업을 기원하는 팽나무를 식수하고 있다. |
지난 7월 28일 오전 4시쯤 아시아나항공 소속 B747 화물기가 제주 서쪽 해상에 추락했다. 아시아나항공이 설립되고 나서 두 번째 항공기 추락사고로, 1993년 7월 26일 여객기 추락 이후 18년 만이다. 공교롭게도 27일 금호석유화학이 계열분리를 위해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서울고등법원에 행정소송을 낸 바로 다음날 발생한 사고였다.
비행기는 양쪽 날개가 온전해야 할 뿐 아니라 균형이 맞아야 잘 날 수 있다. 어느 한 쪽에 조금이라도 이상 징후가 보이면 운행을 중단하고 점검해야 한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전통적으로 양쪽 날개처럼 순항하던 ‘형제경영’이 삐걱거리면서 한순간에 위태로운 지경까지 내몰린 바 있다.
다행히 추락 직전 가까스로 최악의 상황은 모면했다. 대신 오랫동안 혹독한 재정비 과정을 약속해야 했다. 위기의 주범으로 인식된 두 회사, 대우건설을 계열분리했고 각 계열사에 퍼져 있던 지분도 정리했다. 대한통운은 흥행에 성공하며 곧 매각될 예정이다. 금호생명, 금호렌터카, 금호산업 등을 처리하는 문제도 아직까지는 별 탈 없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곳곳에서 잇따라 문제가 터지면서 또 다시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문제의 출발점은 박삼구-찬구 회장의 경영 복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먼저 복귀한 사람은 동생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박찬구 회장은 지난해 2월 사재 출연과 경영 복귀를 선언한 후 3월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 회장으로 복귀했다. 이어 박삼구 회장은 지난해 11월 1일 별다른 취임식도 없이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으로 복귀했다. 지배회사의 지분은 거의 없지만 신속한 구조조정 작업과 경영 정상화를 위해서 채권단과의 합의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기옥 금호산업 건설부문 사장을 비롯해 박삼구 회장의 측근들은 박 회장의 복귀를 환영했지만 금호 계열사 노동조합과 시민단체 등은 박 회장의 복귀에 일제히 반발하며 ‘퇴진운동’도 불사하겠다고 맞섰다. “그룹을 위기로 몰아넣은 장본인이 아무런 고통 분담 없이 그룹 정상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 금호 계열사 노조들의 평가였다.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은 박삼구 회장을 가리켜 “공정사회 최대의 적”이라고 비난했다. 당시 그룹 측은 “그동안엔 회사의 공식 직함이 없어 대놓고 활동하지 못했다”며 “회장으로 공식 복귀한 만큼 그룹 정상화를 위해 바삐 움직일 예정”이라고 해명했다.
박삼구 회장은 경영 복귀 후 큰 말썽 없이 구조조정을 진행해오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금호산업, 금호타이어, 아시아나항공 등 부실 덩어리였던 계열사들의 실적도 개선됐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는 “이 같은 성과는 채권단 덕이지 박삼구 회장의 공이 아니다”라고 단정한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최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원래 복귀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잘라 말하며 박삼구 회장의 구조조정 작업에 대해서 “그 정도도 못하면 더 큰 문제 아니냐”고 밝혔다.
지난 4월부터 불거진 박찬구 회장 비자금 의혹 사건도 박삼구 회장에게로 튀었다. 박찬구 회장이 직접 “이번 비자금 조성 의혹이 금호아시아나와 관련이 있고 나중에 조사를 하다 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해 박삼구 회장도 비자금 조성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암시했다. 그동안 잠잠했던 박삼구-찬구 형제 갈등은 이 대목에서 폭발했다. 거의 정설처럼 퍼져 있는, 박찬구 회장 비자금 의혹 제보자가 계열 분리를 반대하는 박삼구 회장 측 사람이라는 이야기도 영향을 준 듯하다. 이를 계기로 박찬구 회장은 계열분리 작업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박찬구 회장은 금호석유화학이 보유하고 있던 금호의 다른 계열사 지분을 모두 정리하면서 계열분리에 대한 구체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박찬구 회장 쪽에서 어쩌지 못하는, 박삼구 회장 쪽에서 정리해야 할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에 대한 관계는 두 차례에 걸쳐 공정위에 ‘계열회사에서 제외시켜달라’고 신청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7월 17일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 등을 계속해서 금호아시아나 집단 소속 계열회사로 판단한다”고 결정해 계열 분리가 일단 실패로 돌아갔다.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공정위를 상대로 금호석유화학은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아울러 박찬구 회장은 지난 7월 18일과 8월 2일 이틀에 걸쳐 금호석유화학 주식 2277주를 추가로 매입했다. 올 들어 16번째로 현재 지분율은 7.72%. 박 회장은 지난 3일 비자금 의혹사건 검찰 수사로 인해 걸려 있던 출국금지가 풀리자마자 중국으로 날아갔다. 아직 검찰의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숨죽이던 그간의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공식·비공식적 계열분리 행보도 더 빠르고 강해질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동생의 분리 공세에다 항공기 사고 수습, 사그라지지 않는 경영복귀 비난 여론…. 박삼구 회장의 고민이 깊어갈 듯하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