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기연 코레일관광개발 대표는 테마열차 히트상품들을 출시하며 열차 여행의 붐을 일으켰다.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
“제가 이 자리에 힘들게 왔어요. 공모에 지원했는데 코레일에서 30년 근무한 본부장(이사) 출신이랑 붙었죠. 당연히 서류심사에서도 밀렸습니다. 철저하게 준비하고 면접에 들어갔어요. 그 때 제가 그랬습니다. 내가 보기엔 당신들 안 된다. 지금 KTX가 슬리핑카다. 서울에서 대전 가는데 카트에서 두 사람 사먹더라. 이렇게 해서 무슨 매출이 오르겠느냐고 말이죠.”
길기연 대표는 열차 조도를 높이고 다양한 관광상품을 만들고 간이역을 카페로 바꾸는 등 대안을 제시해 면접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어진 허준영 코레일 사장 면접에서는 “코레일이 1년에 5000억 원씩 적자가 나는 이유가 있다”면서 더 세게 나가 역전에 성공, 지난 2009년 9월 당시 코레일투어서비스 대표에 취임했다. 그리고 개혁이 시작됐다.
“두세 달 만에 확 바꿨습니다. 관광파트가 골방에 처박혀 있더라고요. 1층 기계실을 리노베이션해서 전진배치하고 사명도 바꿨습니다. 코레일투어서비스가 고객들을 헷갈리게 만드는 데다 먼저 등록한 사람이 있어 분쟁까지 벌였더군요. 문패가 제대로 돼야 우편물이 들어올 거 아닙니까. 사명을 바꾸고 광고 내보내니까 전화 문의가 쇄도했습니다. 직원들도 자신감이 붙었고요.”
길 대표는 지난 2년간 열차를 단순한 운송 수단에서 문화관광 상품으로, 열차 여행의 붐을 일으켰다는 데 자부심이 대단했다. 고급 숙박형 관광열차 ‘해랑’부터 테마열차 ‘통통뮤직카페트레인’, ‘한류관광열차’ 연말 ‘송년회열차’ 등이 그의 손을 거치면서 히트상품이 됐다.
“제가 취임하기 전에 레일바이크 같은 거 빼고 순수 기차여행 관광만 따져 매년 5억 원씩 적자였어요. 5년간 누적적자가 28억 원에 달했습니다. 매출 10억도 못했는데, 곧바로 흑자전환을 한 데다 현재 연 매출이 40억 원대니까 400% 이상 성장한 셈이죠. 이게 우리 회사가 받는 대행수수료만 그런 거니 코레일 전체 매출로 따지면 400억 원대가 됩니다.”
관광부문뿐만 아니다. 길 대표는 유통부문도 뜯어고쳤다. 대표적인 것이 도시락이다.
“이전엔 도시락 15개를 갖고 들어가면 2개 정도가 반품이에요. 팔아도 안 남죠. 그래서 허 사장한테 열차 표 끊을 때 도시락 예약제를 하자고 했어요. 흔쾌히 동의하셨죠. 그런데 창구 직원들이 일이 추가돼 못한다고 해요. 그래서 인터넷 예매 비율이 40%니까 인터넷으로 시작했어요. 메뉴도 고급화·다양화했더니 지금 어마어마하게 팔려요.”
현재 도시락 판매량은 월평균 8만~9만 개에 이른다. 도시락 다음에 그가 손을 댄 것은 커피였다.
“요즘 커피가 수십 가지 아닙니까. 근데 KTX에선 3000원짜리 달랑 한 가지였어요. 그러니 다들 밖에서 사갖고 들어오죠. 돈을 버리고 있는 겁니다. 연구 끝에 일반 카트와 커피를 분리해 외주를 줘 다양화하고 인원을 더 배치했어요. 카트가 1호차에서 18호까지 가려면 1시간 이상 걸립니다. 이제 두 명이 도니 판매도 원활해 직원들도 좋고 손님도 너무 좋아하더군요. 10잔 팔리던 커피가 50잔 팔립니다. 서비스업은 인원을 더 써서 매출을 늘리는 적극적인 사고가 필요합니다. ‘상생고용’이라 할 수 있죠.”
이처럼 샘솟는 아이디어는 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다. 길 대표는 1987년 아주관광에 입사하면서 여행과 인연을 맺었다. “현실이 답답해 외국에 가고 싶었”단다. 거기서 그는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패키지팀장, 신혼여행팀장을 맡는 등 승승장구하다 외국계 리조트회사를 거쳐 여행업계 입문 5년 만인 1992년 허니문여행사를 차린다.
“해외 리조트에 있어 보니 신혼여행객이 늘었어요. 이제 해외 허니문이 급증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이 1970년대 호황을 맞으며 하와이로 몰려간 것처럼요. 더 늦기 전에 창업해야겠다는 생각에 퇴직금 수천만 원 가지고 신혼여행 전문 여행사를 차렸죠. ‘사랑의 별빛축제’라고 연예인 부르고 이벤트도 하고…. 시작하자마자 대박, 허니문 고객을 쓸었습니다.”
당시 김포공항에서 허니문여행사가 신혼여행객 30~40쌍을 내보낼 때 대형 관광회사는 고작 서너 쌍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렇게 잘나가던 여행사는 그러나 1997년 위기를 맞는다. 사실 외환위기는 견딜 만했다. 환율이 급등하자 ‘신토불이’라는 국내 신혼여행 상품을 만들어 수요를 돌린 것. 그러나 그해 대한항공 괌 추락사고 등 악재가 이어졌다.
“최대 신혼여행지였던 괌이 메리트가 없어졌어요. 한동안 비행기도 안 뜨고. 게다가 우리 여행사를 흉내 낸 회사들이 늘어나면서 경쟁도 치열해지고, 항공권 확보도 하늘의 별따기로 어려워지고…. 마침 대학원에서 만난 선배들이 권해 정치에 입문하면서 여행사는 손을 털었습니다.”
1998년 서울시의회 의원, 2006년 한나라당 부대변인, 광진을 당원협의회 위원장 등 이후 길 대표는 10년여를 정치인으로 살았다. 그리고 2009년 공모를 통해 코레일관광개발 대표로 ‘업계’에 컴백한 셈이다. 이제 길 대표가 말하는 코레일관광 개발의 ‘길’이다.
“곧 매출 1000억 원을 돌파할 겁니다. 도시락이 현재 60억 원인데 고급 도시락이 나오는 등 100억을 넘길 거고요. 커피도 현재 30억 원인데 100억 원은 갈 겁니다. 화천 레일바이크도 추진 중이고. 앞으로 관광 분야가 엄청난 사업이 됩니다. 그 정점에 있는 게 코레일관광개발입니다. 종합관광레저 회사, 공기업의 신뢰성으로 톡톡히 해낼 겁니다.” 이쯤 되면, ‘작지만 강한 공기업’이라고 할수 있지 않을까.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