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다우존스 폭락은 외국인들의 국내 주식 투매를 부추기며 국내 증시 폭락을 초래했다. EPA/연합.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국제금융시장 ‘검은 손’의 특징은 어둠을 활용하는 능력이다. 정치·경제적 위기를 활용하거나, 위기상황을 만들어 최고의 투자 기회로 바꾸는 데 능하다. 21세기의 대표적인 방법이 헤지펀드다. 최첨단 운용전략은 물론 펀드에 돈을 맡긴 투자자들과 움직임에 대해 철저한 보안이 지켜지기 때문이다.
글로벌 헤지펀드 자산 규모는 약 2조 달러로, 2007년의 사상 최고치를 거의 회복했다. 2008년 반토막이 났다가 최근 3년 사이 두 배 가까이 규모가 늘었다. 특히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각국 정부가 푼 막대한 유동성은 양극화라는 시대흐름에 따라 부자와 대형기관의 주머니로 대부분 들어갔는데, 검은 손의 유력 후보자들이자 헤지펀드의 주요 고객이다.
시중의 음모론에 따르면 이번 8월 쇼크의 전조는 5월에 일찌감치 시작된다. 5월부터 헤지펀드 전략별 운용성과를 보면 시장 방향성에 투자하는 전략, 즉 증시나 각종 자산의 가격상승시 수익을 내는 펀드보다 위험을 관리하거나, 시장불안시 수익을 내는 펀드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6월, 월말이면 미국의 ‘양적완화2’(경기부양책)가 끝나는 데 그 효과가 시원치 않았다. 유럽은 고질적인 남유럽 재정문제가 계속 골칫거리였다. 경기부양을 위해 돈을 더 풀자니 인플레이션이 걱정되고, 그렇다고 대 더더욱 어려웠다. 이 같은 진퇴양난의 상황은 5월 들어 시작된 뉴욕 증시 하락세가 6월 내내 이어지도록 했다. 다우존스지수의 6주 연속 하락세는 최근 20년 만에 처음이다.
7월 들어 미국 증시는 반짝 회복세를 보인다. 그런데 이번엔 유럽이 다시 문제였다. 이탈리아의 재정위기와 이에 따른 긴축정책 통과 여부다. 이즈음 글로벌 매크로 전략의 헤지펀드가 이탈리아 국채를 공매도하며 정체를 드러낸다. 공매도란 증권을 빌려 내다파는 헤지펀드 특유의 전략으로, 증권 가격이 하락할수록 수익이 늘어나는 게 특징이다.
글로벌 매크로 헤지펀드는 1992년 영국 파운드화 위기,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의 주역. 조지 소로스가 이 전략의 대가다. 헤지펀드들이 공매도한 이탈리아 국채수익률은 급등(가격 급락)했다. 실제 공매도 이후 국채수익률은 더 올랐다. 헤지펀드들이 이 같은 공매도를 그다지 숨기지도 않았다.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자극해 추가적인 가격하락 효과를 노렸기 때문이다.
7월 중순 이후 유럽 상황이 조금 진정되자 이번엔 무대가 다시 미국으로 옮겨진다. 당시 미국은 8월 2일 연방정부 부채한도 상환만기를 놓고 민주당과 공화당 간 협상이 진행 중이었다. 세계 신용평가 기관들은 미국의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을 언급하기 시작했고, 7월 말 뉴욕 증시는 큰 폭으로 떨어진다. 하지만 8월 1일 민주·공화당은 부채상한 협상을 타결하면서 글로벌 증시는 반짝 반등한다. 유럽도 미국도 한 고비 넘겼다는 안도감이 컸다. 그런데 검은 손들은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시장이 안도할 때가 가장 공격하기 좋은 때다.
8월 2일부터 글로벌 증시는 일제히 급락한다. 헤지펀드들이 공매도를 통해 주가를 떨어뜨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헤지펀드가 공매도를 하자, 이를 경계한 다른 투자자들도 서둘러 시장에서 발을 뺀다. 시장은 더 떨어진다. 그리고 5일 국제적 신용평가사 스탠더드 앤 푸어스(S&P)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하면서 결정타를 날린다. 8일 시장 개장과 함께 헤지펀드들은 매도세를 더욱 강화한다. 시장은 패닉에 빠진다. 10일 미국이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겠다며 혼란을 진정시키려 하자, 11일에는 프랑스 신용등급 하락 루머를 퍼뜨려 다시 한 번 글로벌 증시를 폭락시킨다.
최근 뉴욕 증시에서 가장 많이 하락한 종목들은 헤지펀드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주식들이다. 헤지펀드는 주가가 빠지면 빠질수록 이익이 늘어난다. 헤지펀드가 주가를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뜨리면 기관들은 손절매(Loss Cut)에 나서고 이는 주가를 더 떨어뜨린다. 헤지펀드의 이익은 계속 늘어난다.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이런 점에서 ‘매도세력=헤지펀드’의 혐의는 짙다.
이 같은 현상은 국내 증시에도 나타난다. 헤지펀드들은 그동안 주가가 가장 많이 오른 대형주, 즉 자문형랩 보유 종목을 집중 공격했다. 주가가 많이 오른 종목일수록 위기시 떨어질 여지도 크다. 게다가 자문형랩 보유종목은 시장에 공공연한 비밀이라 ‘조준사격’이 가능했다. 일정 수준 이하로 주가가 떨어지자 자문형랩이 손절매에 나섰고, 이는 다시 주가하락으로 이어져 헤지펀드들의 수익률을 높여줬다. 헤지펀드에 투자한 검은 손은 8월 들어 주식에서만 주가가 하락한 폭만큼의 수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틀림없이 그랬을 것으로 보이지만 주가하락을 예상하고 베팅한 파생상품을 통해서는 천문학적인 수익을 거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 이들이 왜 이 같은 공격을 단행했을까. 보통 글로벌 검은 손은 미국 월 스트리트를 지배하는 유대계 자금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이들은 정치적으로도 전세계에 막강한 네트워크를 자랑한다. 미국에서는 전통적으로 공화당 지지성향이다. 이들은 금융시장뿐 아니라 전세계 자원시장도 지배하는데,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내전은 이들의 입지를 강화시켜줬다는 게 정설이다. 현재 미국 여당인 민주당은 해외 파병에 소극적이며, 다인종 다민족 포용적 정책기조를 갖고 있다. 공화당은 미국의 영향력 확대에 적극적이며 백인 중심의 정책성향이 강하다.
정부와 척을 질 각오까지 하면서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한 S&P는 공화당과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는 후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취임한 오바마 대통령은 ‘검은 손들의 소굴’인 월 스트리트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이들이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오바마의 재선을 보고 싶을 리 없다. 원래 위기일수록 남들 눈에 띄지 않고 더 큰 수익기회를 가질 수 있는데다, 지금은 2012년 미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 각국이 선거를 치르는 데 따른 정치자금을 미리 마련해야 할 시기다.
돈도 벌고, 정치적 입지도 넓히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글로벌 질서를 만들어 내는 데까지 성공한다면, 이들 검은 손을 ‘진정한 세계의 운영자’라고 할 만하지 않을까.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