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6일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서 이건희 회장이 기자들 앞에서 김우중 전 회장에 대한 선처를 언급하고 있다. | ||
아무도 입밖에 내지 않았던 ‘대우에 대한 근심’은 이로써 공론화되고 금융기관들이 다투어 여신 회수에 나섰다. 보고서가 나온 지 며칠 만에 대우 계열사 주가가 폭락하고 각종 음모론이 난무하는 등 파장이 컸다.
그중 하나가 삼성 음모론. 삼성의 금융계열사들이 앞장서서 대우에 대한 여신을 회수해 대우에 ‘설상가상’의 어려움을 안겼다는 것이었다.
삼성과 대우는 DJ정부의 이른바 ‘빅딜’로 삼성의 자동차와 대우의 가전을 맞바꾸는 방안이 검토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삼성의 완강한 거부로 불발이 됐다. 삼성쪽에선 당시 ‘회계 분야가 명확치 않아 리스크가 크다’는 요지의 주장을 했다.
그런데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입에서 김우중 전 회장에 대한 선처를 바란다는 얘기가 나오자 재계가 깜짝 놀라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 16일 신라호텔에서 열린 월례 회장단 회의에서 “(김 전 회장이) 젊은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것은 사실”이라며 “이를 선처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자신과 관련된 사안이 아닌 다른 재벌의 일에 대해 재계 인사가 발언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이와 관련, 재계 일각에선 김 전 회장과 각을 세웠던 인물은 정주영 현대 회장이지 삼성쪽은 아니었다는 시각도 있다. 김 전 회장이 현대의 주력 사업 분야인 중공업과 건설, 자동차 분야에 김 전 회장이 기업인수 합병을 통해 뛰어들자 정 회장이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절대 김우중을 전경련에 넣지 않겠다”고 할 정도로 반감을 표시했다는 것. ‘맨주먹 창업가형’인 정 회장은 기업인수합병을 통해 덩치를 불리는 스타일인 김 전 회장에 대해 ‘공무원을 끼고 산다’며 불만을 표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김 전 회장에 대해 “능력있는 청년 실업가”라고 비교적 호평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과 김 전 회장은 90년대 내내 긴장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다 이번에 파격적인 ‘우호 제스처’가 나온 셈이다. 게다가 삼성전자 소유의 땅과 건물도 김선협씨에게 넘겨 김우중가가 모여살 수 있게끔 간접적으로 도와준 셈이다. 이건희 회장의 호의인지, 우연히 그렇게 된 것인지 명확치는 않지만 이런 ‘우호적인 제스처’가 삼성과 대우 간의 ‘구원’을 허물어뜨릴지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