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종합배관제조회사 에이제이에스(AJS) 김수일 회장(53)이 말하는 자사의 ‘업’이다. ‘국내 유일 적대적 M&A(인수·합병) 성공신화’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김 회장이 AJS의 경영권을 확보한 건 2005년. 6년여 동안 AJS의 매출액은 275억 원에서 568억 원으로 성장했다.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김 회장의 인생역정을 소개한다.
지난 1986년 대학 졸업 전에 외국계 전자회사에 입사한 청년 김수일은 이듬해 증권사에 새로운 둥지를 튼다. 친한 친구가 ‘금융이 미래산업’이라며 증권사에 가기에 멋도 모르고 따라갔다고 한다. 처음엔 후회막급이었다.
“고생고생했죠. 주식으로 터지고 집도 날려보고 형제하고도 멀어지고…. 갈등 속에 실력을 쌓아야겠다, 한번 붙어보자 결심하고 죽어라 공부했어요. 그 다음부터 굉장히 실적이 올랐어요. 전국 랭킹 1위도 하고 고객으로부터 최고급 승용차 선물까지 받기도 했죠.”
그렇게 잘나가던 운명의 1998년 1월. 지인들과의 술자리를 파하고 귀가하던 중 그는 음주 뺑소니 사고를 당한다.
“횡단보도에서 치었는데 즉사할 뻔했죠. 뇌수술 등 3개월간 대소변을 받아내야 했어요. 1년간 병원에 있었는데, 재활치료 중에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왜 죽지 않았을까, 이건 뭔가 보람된 일을 하라고 하늘이 준 기회라는 마음으로 변하더군요. 막연히 사람냄새, 땀냄새가 나는 제조업을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병원을 퇴원한 그는 일단 증권사로 복귀해 3년여 동안 종잣돈을 모으며 제2의 인생을 펼칠 제조업체를 물색했다.
“비상장사부터 상장사까지 두루 살피면서 M&A를 공부했습니다. 사실 AJS의 전신인 아세아조인트도 그 리스트에 있었는데 7년 연속 적자에 자본잠식상태로 정말 안 좋은 회사였어요. ‘에이 금방 부도나겠네’라면서 옆으로 치워버렸는데 이후에 아무리 뒤져도 마땅한 회사가 없는 거예요.”
좋은 회사는 그의 자금으론 턱도 없었고 그의 자금에 닿을 만한 회사는 곧 망할 것 같았다. 그러다 다시 운명처럼 아세아조인트를 집어 들게 됐다.
“조인트에 대해 알아보니 이게 없어서는 안 될 제품인 거예요. 적어도 시장성을 갖춘 셈이죠. 게다가 제가 원칙으로 세웠던 두 가지, 대기업이 탐낼 만큼 큰 사업이 아니고 개인이 들어올 수 있는 만만한 사업이 아니어야 한다는 데 꼭 맞았습니다. 이거 기가 막히다. 못해도 1000억 매출은 갈 수 있다고 판단하고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2002년부터 주식을 사 모아 지분율 30%가량을 확보한 김 회장은 2003년 3월 정기주주총회장에 나갔다. 어차피 한 번에 끝낼 생각은 없었다. 기존 경영진이 최대한 끌어 모을 수 있는 우호지분이 정확하게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확인한 상대방 지분은 35%. 쉽게 끝날 듯했지만 오산이었다.
“2004년 정기주총에 55% 지분을 싸들고 갔어요. 이젠 이겼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주총장에서 기존 경영진이 날치기를 하고 내뺀 거예요. 어이없이 당했죠. 또 다시 1년이 지나고 이제 2005년 3월 정기주총에선 정말 끝낼 수 있겠다 싶었는데 주총 3일 전에 주식 매입과 관련해 검찰에 긴급체포됐습니다. 다행이 구속적부심에서 풀려나 대표이사에 선임됐지만 법정관리인을 거쳐 전 경영진의 지분을 받아준 후에야 경영권을 장악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M&A 과정은 책 한권을 써도 모자란다. 그렇게 2002년부터 2005년까지, 그는 M&A에 매달리는 한편 조인트를 파고들었다. 경영권을 맡자마자 그 ‘내공’이 빛을 발한다.
“제일 먼저 노동조합을 만나 저와 회사를 오픈했습니다. 이후 구조조정을 통해 흑자로 돌려 제2금융권에서 자금을 끌어오고, 투자를 시작했습니다. 제품 측면에선 상수도용 대구경 조인트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어요. 친환경적이고 용접 인건비도 아낄 수 있죠. 지금 신도시에 시공 중입니다.”
김 회장은 여주 본사 터에 대구경 이음새와 조인트를 만들 수 있는 공장 두 동(1공장)을 지었고, 2공장을 세워 소형정밀 압착식 조인트를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반도체 제약 등에 쓰이는 초청정 파이프 업체를 법원경매를 통해 인수(3공장)했다. 여기에 중국 옌타이(煙臺)에 관 연결 부품인 플랜지를 생산하는 4공장을 세우는 등 400억 원을 투자해 명실상부한 글로벌 종합배관제조회사의 터를 닦았다.
“지금이 제 인생의 르네상스입니다. 다만 원자재 매입 자금이 모자라 매출을 끌어올리지 못하는 점은 안타깝습니다. 자금지원이 최고의 상생인데 말이죠. 올해는 외형보다는 내실을 다져 상반기 사상 최대 순이익을 올렸습니다.”
김수일 회장에게서 제조업의 땀냄새가 풍겼다. 그 땀이 대한민국의 강소기업과 세계 시장을 이어주는 ‘조인트’가 아닐까.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
용접용 이음새·조인트 생산
AJS는 1965년 현대공업사라는 이름으로 설립, 용접용 이음새와 조인트를 생산했다. 이후 아세아공업사, 아세아밴드, 아세아조인트로 이름을 바꿔왔다. 1989년 코스닥에 등록했고 1992년 오백만불 수출탑, 1999년 국무총리 표창, 2003년 조달청 우수제품 인정을 받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연속 적자로 자본잠식 상태에 빠지는 등 부실화했다.
김수일 회장은 1958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고 초등학교를 나온 뒤 상경, 서울고와 원광대 영어교육과를 수석졸업하고 1987년 대신증권에 입사했다. 1999년 대신증권 청담지점장, 2001년 하나증권 압구정지점장을 지내고 2005년 적대적 M&A를 통해 아세아조인트 대표이사에 올랐고 사명을 AJS(주)로 바꿨다. 지난해 AJS의 실적은 매출액 568억 원, 당기순이익 23억 원. 2011년 상반기 AJS는 매출액 280억 원, 순이익 34억 원을 기록 중이다. [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