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한 게시글이 온 국민의 분노를 일으켰다. 피해자의 어머니라고 소개한 글쓴이 윤희영 씨(가명)는 자신의 17살 된 딸이 모텔에 감금돼 집단폭행을 당했다며 가해자들에 대한 엄벌을 촉구했다.
어머니 희영 씨가 카메라 앞에서 꺼낸 그날의 일은 충격적이었다. 가해자는 지적장애 3급을 앓고 있던 딸과 SNS를 통해 아는 사이가 되었다는 나리 양(가명,18)과 유성 군(가명,18)을 비롯한 또래들. 어머니는 딸 소영 양(가명)에게 살가운 새 친구들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피해자 어머니는 "자꾸 옆에서 손이 되고 발이 돼주고 하니까 저는 솔직히 나리를 의지할 수밖에 없었어요. 어느 순간 돌변해서 친구들하고 같이 쥐잡듯이 잡더라고요, 아이를"이라고 말했다.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딸에게 일이 생겼음을 알아챈 어머니. 소영 양이 괴롭힘을 당한 사실도 알게 되자 아이들을 서로 만나지 못하게 막기도 했으나 쉽지 않았다고 한다. 아이들은 딸 소영 양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다며 어머니 희영 씨에게 직접 전화를 하는가 하면 돌연 태도를 바꿔 오히려 자신들을 화나게 한 소양 양의 사과를 받아야 한다며 집까지 찾아오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던 지난해 6월의 어느 날 연락이 끊긴 딸 소영 양을 찾기 위해 밤거리를 헤매던 어머니는 번화가의 한 모텔에서 딸을 찾을 수 있었다. 옷이 벗겨진 채 공포에 질려 있던 딸 소영 양. 그날 아이들과 소영 양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소영 양이 자신들을 험담했다는 이유로 주먹을 휘둘렀다는 가해자들. 10대임에도 그들이 저지른 일은 너무나 참혹하고 계획적인 범죄였다. 가해자들은 소영 양을 홀로 불러낸 뒤 모텔로 유인해 두 시간에 걸쳐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고문했다. 소영 양이 신고하지 못하도록 핸드폰을 빼앗았고 소영 양의 괴로움을 즐기듯 자신들의 폭행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까지 했다.
이 참혹한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자 사람들은 공분하며 가해자들에 대한 엄벌을 촉구했다. 그런데 제작진은 사건을 취재하던 중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해자 중 나리 양과 유성 군은 또 다른 사건의 가해자로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 그 사건은 구속된 나리 양이 피해자 소영 양에게 보낸 편지에도 드러나 있다.
나리 양이 주도한 사이버불링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피해자 장혜린(가명, 16)양. 모텔 감금, 폭행 사건이 있기 일 년 전 나리 양은 친구였던 혜린 양을 SNS 등을 통해 지속해서 괴롭혔다. 혜린 양에 대한 막말과 폭언이 가득했던 SNS 단체 채팅방의 메시지들. 단체방에선 혜린 양에 대한 언어폭력 수위가 점점 높아졌고 과거 혜린 양의 성폭행 피해 사실까지 퍼져나가게 되었다.
결국 친구들과의 갈등과 성폭력 사건의 2차 피해로 고통 받던 혜린 양은 나리 양과 친구들을 만나고 온 날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혜린 양 부모의 신고로 나리 양을 비롯한 가해자들에 대한 수사가 이뤄졌고 가해 아이들은 혜린 양을 괴롭힌 피의자가 되어 재판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 일으킨 모텔 납치 감금 사건. 어린 무법자들은 반성은커녕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또다시 다른 친구를 먹잇감으로 삼아 참혹한 범죄를 저질렀던 것이다. 가해 아이들에게 사법절차나 법은 왜 아무런 경고가 되지 못한 것일까.
두 개의 사건으로 두 번의 심판을 받게 된 어린 무법자들. 딸 소영 씨 사건으로 재판을 참관했던 어머니 희영 씨는 가해 아이들을 보며 분노를 삼켜야 했다고 토로한다. 판사 안에선 눈물을 흘리던 아이들이 재판정 밖 대기실에선 아무런 반성의 기색도 없이 웃음을 터트리며 떠드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입장 확인을 위해 우리가 연락해 본 가해 아이들은 담담했다.
가해자들은 다 끝났다고 하지만 혜린 양의 가족들은 딸을 잃은 그 날의 아픔에서 여전히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고 소영 양은 감금, 폭행당했던 공포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런 고통을 마주하며 우리 사법제도가 가해자에게도 그에 합당한 책임을 묻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피해자들. 그리고 연일 보도되는 어린 무법자들의 참혹한 범죄를 접하며 사람들은 목소리 높여 미성년자의 범죄 행각도 엄벌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이에 답하듯 20대 대통령 선거에 나선 주요 후보들도 저마다 '촉법소년' 제도와 관련해 처벌을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과연, 어린 무법자들에게 합당한 처벌이란 무엇일까.
1953년 소년법 제정 이후 69년의 세월이 흘렀다. 시간이 흐르면서 일부 어린 무법자들은 어떤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어린 나이가 큰 감경요소가 된다는 점을 악용할 만큼 영악하게 변한 듯 보인다. 멈추지 않는 그들의 일탈을 막을 방법은 결국 강력한 처벌일까. 일각에서는 무조건적인 강력 처벌은 미성년자를 보호해야 하는 국가마저 아이들의 교화 가능성을 박탈하는 일이 될 수 있고 나아가 청소년들을 더 큰 범죄자로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해가 거듭될수록 더욱 심화하는 소년법 논란. 과연 우리는 대한민국의 아이들을 위해 어떤 답을 택해야 할까. 잔혹해져 가는 미성년자 범죄에 대해 알아보는 한편 심리법률 전문가들과 함께 소년범의 범죄행각에 대해 분석하고 어린 무법자들의 일탈을 막을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본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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