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마이너스 프리미엄 단지가 속출하면서 계약 후 미입주 규모가 늘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많은 건설사들이 겉으로는 계약률이 90%라고 떠들지만 속으로는 곪고 있다. 미입주 문제가 준공 후 미분양 이상으로 심각하다.”
건설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실제로 한 중견건설사가 전국에서 입주를 진행하는 아파트는 9000여 가구인데 미분양인 곳은 640여 가구 정도다. 계약률은 92% 정도로 꽤 높다. 하지만 입주 지정기간이 지난 미입주 가구가 2100가구나 된다. 미입주 물량이 미분양의 3~4배는 되는 셈이다.
요즘처럼 마이너스 프리미엄 단지가 속출하는 상황에서 미입주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전국적으로 미입주 규모가 준공 후 미분양의 2배 이상은 될 것으로 예상한다. 전용면적 85㎡ 초과 규모의 중대형이 많고 마이너스 프리미엄 단지가 몰려 있는 수도권은 미입주 규모가 더 많을 것으로 관측된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준공 후 미분양은 현재 전국적으로 3만 9700여 가구 수준이다. 수도권은 사상 처음으로 1만 가구를 넘었다. 따라서 미입주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전국 기준 6만여 가구, 수도권에서는 2만 가구는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준공 후 미분양과 미입주를 합할 경우 전국 빈집이 10만 가구 규모는 된다는 이야기다. 한 채당 집값이 평균 3억 원이라고 계산할 경우 30조 원 규모의 빈집이 잠겨 있는 셈이다.
미입주는 기존 집이 팔리지 않아서 이사를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투자목적으로 샀다가 집값이 떨어져 이사를 포기한 경우가 더 많다는 게 건설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소송을 걸고 계약 해지를 요구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최근 고양시 식사지구의 한 아파트에서는 단체로 1000여 가구가 계약을 해지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계약해지를 요구하며 중도금 이자와 잔금을 납부하지 않았고, 금융권에서 건설사에 대위변제를 요구해 결국 분양 계획을 취소한 것이다.
해당 건설사 관계자는 “계약 해지를 요구하면 대출 부담을 건설사가 져야 하기 때문에 거부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미입주 상태로 남겨 두는 것보다 계약을 해지하고 서둘러 파는 게 낫다고 판단할 경우 계약을 해지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계약자 입장에서는 계약금을 날리지만 손절매고, 건설사 입장에서는 회사 이미지를 망치느니 빨리 처리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다.
고양시에서 분양하고 있는 다른 건설사 마케팅팀장은 “현재 150여 명을 단체로 계약 해지하기로 최종 결정한 상태”라며 “미입주가 잠재적 준공 후 미분양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미입주와 준공 후 미분양은 계속 증가할 전망이다. 일단 기존 물량이 쉽게 소화될 분위기가 아니다. 수도권의 경우 전체 준공 후 미분양의 87%가 수요가 많지 않은 중대형이어서다. 용인 성복지구와 상현지구 등이 중대형 미분양이 몰려 있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이 지역 5개 단지에서 3600여 가구를 분양하고 있는 건설사 고위 관계자는 “분양한지 4년이 됐지만 계약률은 여전히 50%를 밑돌고 입주율은 그중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며 “해결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반면 준공되는 중대형 아파트는 계속 늘어난다. 중앙일보조인스랜드에 따르면 올 7~12월 사이 입주하는 중대형으로만 지어진 곳은 전국적으로 73개 단지 3만 6600여 가구나 된다. 이 중 42개 단지, 1만 9600여 가구는 수도권 물량이다. 이미 빈집이 많은 김포·파주·용인·인천 청라 등에 물량이 특히 많다.
건설사 중에는 이미 빈집이 많은 지역에 집중적으로 입주가 예정된 곳도 있다. H 건설은 올 12월부터 내년 상반기까지 김포한강신도시, 인천 청라지구, 파주시 등에서 모두 4700가구를 준공한다. 이 회사 관계자는 “3~4년 전 분양할 때 투자수요가 많았던 지역이고 현재 시장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아 대규모 미입주가 발생할 것이란 불안감이 크다”고 말했다. 피데스개발 김승배 사장은 “가을 이후 중대형 미분양이 많은 경기도 김포, 인천 청라, 영종 하늘도시 등에서 입주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빈집 공포는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빈집이 늘어나면 건설사는 자금난에 빠진다. 미입주 가구의 경우 잔금 비중은 분양가의 30% 수준이지만 건설사들은 최근 몇 년간 분양률을 높이기 위해 잔금 규모를 늘리고, 중도금 무이자 대출 등의 혜택을 줬다. 예컨대 중대형 미분양이 많은 용인이나 고양, 파주 등에서는 계약금을 분양가의 5%만 받고 입주 때까지 한 푼도 내지 않도록 해 계약률을 높였다. 계약자들이 입주를 하지 않고 잔금을 내지 않으면 건설사는 준공 후 3~6개월 이후 갚아야 하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은행 대출을 갚을 방법이 없다.
주택사업 비중이 높은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잔금이 들어오지 않으면 금융권에 대출 연장을 요구하거나 다른 곳에서 돈을 빌려 막는 수밖에 없다”며 “금융 리스크가 계속 커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러니 건설사들의 PF 지급보증, 중도금 보증 등 채무보증 총액은 천문학적 수준으로 늘어난다.
최근 건설사들의 공시를 보면 이미 대우건설의 채무보증 총액은 8조 8000억 원을 넘었다. 현대건설과 GS건설은 6조 원 이상이다. 삼성물산도 5조 8000억 원, 두산건설 5조 5000억 원, 대림산업 3조 3000억 원 등을 기록하고 있다. 김동수 주택협회 정책실장은 “채무보증액이 많다는 건 그만큼 위험에 많이 노출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형건설사야 다른 사업을 통해 돌려 막기가 가능하지만 중견건설사는 더 위험하다. 올 초 워크아웃에 들어간 진흥기업이 대표적이 사례다. 부산과 울산의 2개 사업장이 지난해 입주를 시작했지만 잔금이 들어오지 않고 준공 후 미분양이 남아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용인에서 분양하고 있는 한 건설사 임원은 “미분양 때문에 자금이 돌지 않아 지난 4년간 아무 일도 못했다”며 “새로운 사업은 없는데 금리부담이 늘어 부담이 계속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일한 중앙일보 조인스랜드 기자 jumpcut@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