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상승의 주인공이었던 자동차 석유화학 정유, 즉 ‘차·화·정’이 폭락장에서도 주연을 하더니 반등장에서도 다시 주연을 꿰차고 있다. 이쯤 되면 우리 증시의 이름을 코스피가 아니라 ‘차화정’으로 바꿔야 할 판이다. 그런데 실상을 알고 나면 이상할 것도 없다. 가장 유망했기 때문에 상승의 주인공이었고, 가장 많이 올랐기 때문에 폭락을 겪었다. 그리고 여전히 가장 믿을 만하기 때문에 반등도 주도하는 것이다. 그 배경에는 글로벌 산업지도와 국내 산업지도의 변화 방정식이 작동하고 있다.
차·화·정의 맏형은 단연 자동차다.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완성차 관련주 외에도 대형 부품주들 모두가 ‘차 라인’인데, 가장 큰 상승 원동력은 우호적 대외환경이다. 국내 자동차산업의 경쟁력은 품질 면에서 빠른 속도로 개선돼 왔지만, 그래도 아직 일본이나 독일과 정면 승부를 벌일 정도는 아니었다.
2000년 이전만 해도 현대·기아차의 해외 판매 주력은 준중형급인 C세그먼트였다. D(중형) F(대형) 세그먼트인 일본차 주력과는 거리가 다소 있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서면서 현대·기아차 주력이 D세그먼트, F세그먼트로 바뀌는 추세다. 일본차와의 경쟁력이 그만큼 더 강해진 셈이다. 2008년 금융위기 발발 전만 해도 현대·기아차 주가가 다소 부진했던 데에는 일본차와의 치열한 경쟁 부담이 크게 작용했다.
그런데 글로벌 금융위기로 엔화가치는 높아지고, 원화가치는 낮아졌다. 그만큼 해외에서 판매되는 제품 가격을 낮출 여지가 생긴다. 현대차는 가격 인하로만 대응하지 않고 이를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에 투입했다. 그 결과 괄목상대할 점유율 상승과 브랜드 이미지 개선이 이뤄졌다. 반면 일본차는 원가 압박에다 마케팅 여력까지 줄어들면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특히 미국에서의 도요타 대량 리콜 사태는 일본차 브랜드를 훼손시켜 판매에 치명타를 가했다. 올 들어서도 3월 일본 대지진으로 생산차질이 빚어지면서 현대·기아차에 더 많은 시장을 빼앗기고 있다.
일본차는 아직 현대·기아차와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고급차종 부문에서도 유로화 약세를 앞세운 독일차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독일차의 경우 고급이 주력이다 보니 현대·기아차와의 직접적인 경쟁은 치열하지 않다. 일본차를 한국차와 독일차가 아래 위에서 협공하고 있는 셈이다. 박희운 KTB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자동차 업종은 최근 더블딥(이중침체) 우려 상황 속에서도 거의 유일하게 하반기 견조한 실적을 유지할 것으로 기대되는 업종”이라고 평가했다.
‘화·정’은 자동차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투자 매력이 많은 업종이란 평가다. 가장 큰 매력은 공급부족에 따른 높은 이익률이다. 석유화학과 정유 모두 대규모 공장이 필요한 사업인데, 2007년 이후 지속된 글로벌 경기침체로 해외 경쟁사들의 설비는 노후화됐거나 생산효율이 떨어진다. 반면 국내 업체들은 선제적인 설비투자를 단행한 덕분에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제품 공급원이 됐다.
중국과 인도, 브라질 등 신흥국의 경제규모가 성장하면서 에너지 소비량이 늘고 석유화학 제품의 수요도 크게 확대되고 있다. 당장 몇 년간은 국내 석유화학과 정유업체가 강력한 시장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이다. 다만 최근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가 다시 부각되면서 원유가격이 하락하고, 화학제품의 수요 감소가 우려되면서 화학업체들의 올 이익 전망치도 다소 낮아졌다. 증권사들의 목표주가도 아울러 낮아지는 추세지만, 최근 이익 감소치보다 주가 하락폭이 워낙에 컸던 만큼 주가 회복의 여지는 아직도 가장 높은 편이다.
정유업종의 경우 최근 정부의 물가잡기 표적이 된다는 점이 부담 요인이고, 제일모직 등 IT업종과 연관이 깊거나 OCI 등 태양광과 관련한 퓨전형 화학 관련주의 경우 글로벌 경기침체의 충격이 상대적으로 더 크다는 점이 약점으로 지적된다. 따라서 호남석유, 금호석유, LG화학 등 순수 석유화학 쪽이 상대적으로 더 나은 실적 흐름을 보일 것이란 전망이 많다. 아울러 OCI와 같은 태양광 관련업체의 경우 경기둔화에 따른 원유가격 하락으로 태양광 수요가 더뎌졌고, 관련 업체들의 중복과잉투자가 문제가 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이처럼 차·화·정은 충분히 스스로 투자 매력을 갖고 있지만, 전기전자(IT)나 금융, 철강, 조선, 건설 등 다른 증시 주요업종이 상대적으로 부진한 데 따른 상대적 수혜도 크다. 전기전자의 경우 글로벌 경기에 가장 민감한 업종이다. 경기침체기일수록 TV, 컴퓨터를 바꾸는 시기를 지연시키는 게 일반적인 소비심리다. 자동차는 제때 바꾸지 않으면 중고 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하는 반면 가전제품은 굳이 중고품 가치를 생각하지 않는다. 자동차보다 IT가 경기에 더 민감한 이유다.
물론 모바일과 스마트 기기라는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졌지만, 애플이라는 거대한 벽이 문제다. 스마트폰과 태플릿PC를 더 팔기 위해서는 상당한 마케팅 비용을 치러야 한다.
금융도 마찬가지다. 금융 최대 업종인 은행은 가계 빚의 덫에 걸렸다. 대출을 줄이라는 정부의 압력이 거세다. 저축은행 사태로 드러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부담도 은행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일단 공동기금을 만들어 부실 PF를 인수하는 방안이 진행 중이지만, 과연 매입한 가치의 얼마를 보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은행의 잠재부실 요인이다.
손해보험의 경우 물가상승으로 인한 자동차보험 손해율 개선이 아킬레스건이다. 정부 압박으로 준조세 성격을 가진 자동차보험 인상이 어렵다. 생명보험은 신계약 유치가 쉽지 않다. 물가상승과 실질소득 감소는 새로운 보험계약 수요를 갉아먹는다. 경기침체로 금리인상 기조가 멈춘 것도 보험주들의 자산운용 수익률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채권을 만기보유하는 보험사들에게는 금리인상이 약이고, 금리인하가 독이다.
철강, 조선, 건설 등도 모두 경기민감사업이고 대규모 발주산업과 연관이 깊다. 중국의 부진은 세계 최대 철강수요시장의 부진이다. 신규 선박의 최대 수요처인 유럽은 재정위기로 금융기관들이 압박을 받으며 선박금융이 크게 위축됐다. 건설은 국내 부동산 경기침체의 여파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해외 플랜트사업을 하는 일부 대형주들의 경우 그나마 국내에서의 부진을 만회하고 있지만, 중소형 건설사들의 경영상황은 여전히 열악하다.
이밖에 유통, 통신 등 내수주들 역시 물가와의 전쟁에 따른 정부 압박, 그리고 국내에 시장이 제약된 데 따른 성장한계 등으로 의미 있는 주가상승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