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월 31일 밤 부산저축은행 구명로비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로비스트 박태규 씨가 대검찰청에서 구치소로 이송되고 있다.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부산저축은행 사건을 수사 중인 대검 중수부는 8월 31일 김양 부산저축은행그룹 부회장(구속 기소)으로부터 ‘퇴출 저지’ 청탁과 함께 17억 원을 받은 혐의로 거물 로비스트 박태규 씨(71)를 전격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박 씨는 김 부회장으로부터 “부산저축은행그룹의 퇴출을 막아 달라”는 청탁과 함께 지난해 7월 두 차례에 걸쳐 각각 1억 5000만 원과 3억 5000만 원 등 5억 원을 건네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박 씨는 이후에도 수차례 로비자금 명목으로 모두 12억 원을 전달받은 뒤 김 부회장에게 2억 원을 돌려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박 씨의 신변을 확보한 검찰은 지금까지 박 씨가 김 부회장으로부터 로비자금을 어디서 어떻게 전달받았는지 여부를 집중 추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그동안 통화 기록을 분석해 박 씨가 자주 통화한 정관계 인사 10여 명을 수사선상에 올려놓고 있다. 검찰은 박 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해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로비자금이 이들 정관계 인사들에게 실제로 전달됐는지를 확인한다는 방침이다. 이미 검찰은 박 씨가 여야 정치인 10여 명과 청와대 인사 2~3명과 집중적으로 통화한 사실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우선 박 씨와 현 정권의 ‘그림자 실세’로 통하는 김두우 청와대 홍보수석의 관계를 파헤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김 수석은 지난해 부산저축은행이 퇴출 위기에 몰렸던 시기에 박 씨와 골프를 쳤고, 수십 차례 통화한 사실도 포착된 상태다. 검찰은 박 씨가 김 수석과의 골프 회동 직전에 상품권 수백만 원어치를 구입한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김 수석에게 모종의 청탁을 하기 위해 상품권을 마련했고, 골프 과정에서 이를 실제로 건넸을 가능성에 힘을 싣고 있다.
김 수석은 현 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 정무2비서관으로 영입된 뒤 정무기획비서관과 메시지기획관, 기획관리실장을 거쳐 올해 6월 홍보수석에 발탁됐다. 김 수석은 청와대 내에서도 이명박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얻고 있는 몇 안되는 참모로 분류되고 있다. 부산저축은행의 ‘퇴출 저지’ 특명을 받은 박 씨 입장에선 여권 실세로 자리매김한 김 수석을 로비의 징검다리로 삼았을 수 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하지만 김 수석은 박 씨와의 개인적 친분은 인정하면서도 청탁이나 금품 수수 의혹에 대해서는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검찰은 박 씨의 진술이나 구체적인 증거가 확보되는 대로 김 수석에 대한 조사를 본격적으로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검찰은 박 씨가 로비자금으로 받은 15억 원 중 5억 원을 여권의 실세 1명에게 전달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진다. 나머지 10억 원은 정관계 인사 10여 명에게 살포하고 일부는 자신이 챙겼을 것으로 검찰은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검찰은 17억 원의 용처를 추적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검찰 주변에서는 박 씨로부터 검은 돈을 수수한 이른바 ‘박태규 리스트’가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이 리스트에는 한나라당 중진인 K 의원과 또 다른 K 의원, H·J·K·P 의원, 사정기관 수장을 지낸 K 씨, 민주당 중진 J 의원, 참여정부 실세였던 B 전 의원과 민주당 H 전 의원 등 10여 명의 전·현직 정치인들이 올라 있다.
검찰은 리스트에 올라 있는 인사 중 한나라당 중진인 K 의원과 또 다른 K 의원을 우선 소환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김양 부회장 등 구속된 관련자로부터 박 씨가 두 중진 의원에게 돈을 건넨 것으로 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박 씨를 상대로 두 의원과의 관계 등 사실관계를 먼저 파악한 뒤 소환일정을 잡을 계획이다. 검찰 관계자들은 두 의원의 소환 시점은 국정감사 전인 이달 중후반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박태규 리스트’ 수사와 함께 검찰이 박 씨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역점을 두고 있는 사안이 있다. 다름 아닌 대기업 재단이 부실 징후가 감지됐던 부산저축은행에 1000억 원을 투자한 경위다. 실제로 지난해 6월 삼성꿈장학재단(삼성재단)과 학교법인 포스텍(포항공과대학)은 당시 부실 우려가 제기됐던 부산저축은행에 각각 500억 원을 투자했다. 검찰은 두 재단이 500억 원이라는 거액을 약속이나 한 듯 부산저축은행에 투자한 배경에 강한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특히 박 씨는 1000억 원 투자금 유치 과정에 깊숙이 개입해 김양 부회장으로부터 6억 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 부회장이 박 씨를 신뢰하면서 ‘퇴출 저지’ 로비스트로 그를 전면에 내세웠던 것도 1000억 원 유치 과정에서 보여준 박 씨의 막강한 영향력 때문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부산저축은행이 두 재단의 자금을 유치하는 과정에 박 씨를 매개로 한 정관계 유력인사가 개입했고, 거액의 리베이트가 오갔을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검찰은 1000억 원 유치건에 여권 거물급이 연루된 정황이 포착하고 은밀히 수사를 진행해 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실제로 검찰은 포스텍 500억 투자건에 깊숙이 개입한 당사자로 지목받고 있는 포스텍 고위임원 K 씨가 여권 핵심 실세인 A 씨와 막역한 사이라는 점에 미뤄 A 씨가 500억 투자건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야권 거물급도 1000억 원 유치건에 연루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검찰 일각에서는 부산저축은행 고위 임원들이 학맥을 바탕으로 야권 거물급 정치인 B 씨를 비롯해 호남권 일부 현역 의원들에게 정치적 후원을 지속해 왔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따라서 검찰은 두 재단의 투자 과정에 A, B 씨를 비롯한 여야 정치인들이 개입됐는지 여부를 은밀히 파헤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 유치에 개입한 박 씨가 리베이트 명목으로 6억 원을 수수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야 거물급인 A, B 씨에게는 수십억 원대의 정치자금이 흘러들어갔을 개연성이 높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 일부 관계자들은 대기업-여야 거물급-부산은행으로 이어진 삼각 커넥션에 개입된 의혹을 받고 있는 A, B 씨가 ‘박태규 리스트’의 몸통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섣부른 관측을 내놓고 있다.
과연 박 씨의 구속으로 탄력을 받고 있는 검찰 수사의 칼날이 몸통을 겨냥할 수 있을지 정치권의 이목이 대검 청사로 쏠리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