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우석 신드롬으로 코스닥에선 이른바 생명공학주로 분류되는 종목들이 널뛰기 양상을 보이고 있다. | ||
하지만 신약개발 등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는 곳은 역시 재벌기업들이다. 화학분야의 역사가 긴 LG그룹의 LG생명과학은 신개발 약품이 최초로 미국 FDA(식품의약국)의 승인을 받는 등의 성과를 내고 있다. SK그룹은 SK(주)와 SK케미칼이 동시에 신약개발에 나서고 있다. 지난 4월1일부터는 SK제약을 SK케미칼에 합병시켜 사업분야를 정리하는 등 생명과학 부문에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화학으로 오랫동안 다져진 노하우를 생명공학에 펼쳐보겠다는 것이다. SK케미칼은 라이센스인(License-In: 타사의 개발약품에 대해 특허료를 지불하고 들여와 생산하는 것)이나 제네릭(Generic: 특허기간이 끝난 의약품을 똑같이 만든 것)이 아닌 자체 신약을 1999년 국내 최초로 개발한 이력이 있다.
코오롱과 CJ도 제약사업부를 두고 신약개발을 계속하고 있다. 코오롱 역시 석유 및 섬유 분야에서 화학분야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으며 CJ는 식품사업에서 얻은 노하우로 의약품 개발에 나서고 있다. 한편 삼성은 IT산업이 주 사업 동력이라는 점을 이용해 신약개발보다 생체정보인식 및 관리시스템 개발 등 IT를 접목해 생명공학 사업을 노리고 있다.
아직까지 국내 생명공학은 신약개발에 치중되어 있다. LG생명과학의 박철하 부장에 따르면 “좁은 의미에서 바이오 산업이라고 하면 신물질 개발인데, 화학적 방법의 합성 신약 분야와 유전자 결합으로 인한 의약품 개발이다. 대부분의 업체들은 신물질 화합물 개발에 나서고 있다. 넓은 의미에서는 생물, 특히 미생물 연구나 농업기술, 환경 등을 포괄한다”고 말했다. 현재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줄기세포 등의 연구는 미진하다고 한다.
최근 LG생명과학이 현대아산병원과 임상실험 협조를 추진하고 있어 LG와 현대의 BT산업 합작설이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LG에서는 이에 대한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LG생명과학쪽에선 “임상실험을 할 수 있는 해당 분야 전문가에게 직접 맡기는 것이다. 병원을 가지고 있는 제약회사가 국내에 없는 상황에서 한 병원과 업무제휴를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한 병원의 전문가가 여러 기업의 임상실험을 맡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국내 연구인력이 많지 않아 병원을 골라가며 임상을 맡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제약산업의 특성상 병원과 유기적 관계가 중요한 만큼 임상실험을 하는 데 연구 외적인 부분에서 용이한 점은 있다고 한다.
매출 2천억원대 중반의 LG생명공학은 국내에서 연구비(R&D) 비중이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SK케미칼의 김성우 과장은 “보통 제약회사의 연구비 비중이 10%대인데, 이마저도 중소기업에서는 상당히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 우리 같은 경우는 연구비 비중이 14∼15%인데, LG생명과학은 이보다 더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신약을 하나 개발하기 위해서는 10년 이상의 기간동안 꾸준한 투자가 필요한데, 그동안 자금력이 이를 뒷받침할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하기 때문에 회사 규모가 클수록 유리하다. LG생명과학은 지난해 자사 개발약물인 팩티브가 국내업체로는 최초로 미국 FDA의 승인을 받았다. 대기업의 파워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SK그룹은 1987년 삼신제약을 인수해 제약사업에 뛰어들었다. SK제약은 지난 4월부터는 SK케미칼에 합병돼 생명과학부문에서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 후발주자이지만 SK케미칼은 1992년 기넥신이 히트를 치면서 지난해 판매실적 상위 100대 품목에 5개 품목을 올리는 등 대기업의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SK케미칼 외에 SK(주)에서도 신약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서로 업종이 달라 중복되는 분야는 없다는 것이 SK측의 설명이다. SK(주)에서는 아직 판매하는 약품은 없는 대신 R&D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고 한다.
CJ(주)제약사업본부는 불경기를 겪으며 조금 주춤한 모습이지만 신약개발에 다시 집중하고 있다. 일반의약품이 없는 대신 전문의약품 분야에서 신물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조미료 등 식품사업에서 얻은 원료물질합성기술을 바탕으로 제약사업에 진출한 CJ는 1986년 수입품에 의존하던 간염백신의 국내제조에 최초로 성공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한편 BT산업을 추진하다가 한풀 꺾인 삼성은 생명공학 분야에 재도전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의 경우는 제약산업보다는 주력업종인 IT기술을 접목할 수 있는 분야를 검토하고 있다. 생체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하는 등 바이오기술이 접목된 바이오칩을 차세대 수종사업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진료기관인 삼성병원이 있기 때문에 신약개발보다는 치료에 필요한 정보네트워크 분야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동시에 화학계열사에도 눈길이 모여지고 있는데 이에 대해 삼성정밀화학은 “제약산업에 진출할 계획은 없다. 규모가 작기 때문에 반도체 원료 등 주력사업에 집중하자는 것이 회사의 방침이다”고 밝히고 있다.
업계에서는 삼성과 현대의 경우 제약산업에 진출할 움직임은 없어 보인다는 것이 중론이다. 삼성은 IT, 전자, 금융 등이 주력업종이고 현대는 거대장치산업 등이 주력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기업의 진출에 대해서는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협소한 국내시장에서는 중소규모의 업체가 사업성격에 맞지만 세계시장에서 앞서가기 위해서는 투자비용이 많이 드는데 이에 대한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곳은 대기업뿐이기 때문이다.
국내업계 1위인 동아제약 매출이 5천억원대이지만 화이자, MSD 같은 글로벌 기업의 경우 매출액이 50조원을 넘는다. 연구비용 등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들지만 성공만 하면 추가비용이 많이 들지 않고서 꾸준한 이익을 내는 황금시장이라는 것이 제약산업의 특징이다. 그러나 성공에 대한 보장 없이 10년 이상 투자를 해야 하는 부담이 있고 10년 후에 시장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쉽게 진출하기는 힘들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