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평로에 있는 옛 삼성 본관 로비. 삼성의 지배구조 관련 두 번째 숙제인 에버랜드 지분 처리가 일단락되면서 마지막 숙제인 삼성전자 지배력 강화 해법에 관심이 집중될 전망이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주목할 점은 일부에서 보는 것처럼 삼성생명 상장과 에버랜드 지분매각은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삼성생명 상장은 삼성자동차 부채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필요했고, 에버랜드 지분 문제는 2004년 신용대란으로 인한 삼성카드와 삼성캐피탈의 합병, 그리고 노무현 정부 때 이뤄진 금융회사의 비금융회사 지배규제 제도 탓에 불거졌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선택인 것이다.
이 때문에 삼성생명과 에버랜드 문제를 수익으로 연관시키는 투자적 접근은 성과를 보기 어려울 듯하다. 당장 지난해 5월 상장 당시 삼성생명 공모가는 주당 11만 원이지만, 현 주가는 9만 원 안팎에 머물고 있다. 증시 관계자는 “상장 전부터 공모가 거품 논란이 있었지만 당시 삼성그룹은 공모가를 높이는 데 힘을 집중했다”면서 “삼성자동차 채권단에 주당 7만 원에 내놓은 담보가치와 이자 등을 감안할 때 11만 원은 돼야 추가부담 없이 부채를 털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회고했다.
삼성은 1999년 삼성자동차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채권단 손실 2조 4500억 원 보전을 위해, 이건희 회장이 가진 삼성생명 주식 350만 주를 주당 7만 원(액면분할 기준)에 내놓았다. 공모가격이 7만 원을 밑돌 경우, 이 회장이 가진 삼성생명 주식 500만 주를 추가로 출연하겠다는 조건도 있었다.
채권단은 삼성생명 상장 지연으로 인해 손해를 입었다며 원금에 연 19%의 연체 이자율을 붙여 지급하라고 소송을 냈고, 2008년 법원은 삼성 측이 채권단에 연체 이자율 6%를 적용해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양측이 모두 불복, 재판은 계속 진행 중이지만 만약 1심 판결대로 연체 이자를 연 6%로 할 경우 공모가만으로 빚 청산을 하고도 남는다. 물론 공모가가 높아지면서 일반 투자자들이 얻을 수 있는 시세차익 기회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지분처리 문제도 투자자 입장에서 돈이 되기 어려운 측면은 비슷하다. 삼성카드는 지난해 이미 에버랜드 지분 재평가를 통해 주당 10만 원씩 총 641억 원에 취득한 지분 25.64%(64만 1123주)를 주당 213만 원씩 총 1조 3657억 원으로 장부에 반영했다. 2010년 말 기준 삼성에버랜드의 주당순자산(BPS) 172만 8556원보다 높다.
“상장이 아닌 블록딜을 통해 매각할 경우 매수자 입장에서 이 지분을 비싸게 살 이유가 없다. 에버랜드의 작년 자기자본수익률(ROE)이 3.9%에 불과하고, 배당금 총액도 겨우 125억 원으로 수익성이 거의 없다. 또 나머지 지분 75%가 삼성 우호지분인 만큼 경영권 프리미엄을 누리기도 어렵다. 삼성 입장에서도 금산법 적용을 피하려면 내년 4월이라는 매각시한을 넘길 수 없다. 비싸게 팔 입장도 못 되는 셈이다. 따라서 일각에서 기대하는 에버랜드 보유 부동산 가치의 재평가가 이뤄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한 펀드매니저의 말이다. 종합하면 삼성카드 입장에서는 장부가와 매각가 사이의 특별이익 기대 폭이 적을 수밖에 없다. 되레 향후 매각한 지분을 일정한 값을 주고 되사는 풋백옵션 계약을 체결한다면 되사는 조건에 따라 자칫 주가에 독이 될 수도 있다. 그래도 현재 장부가보다 높은 값에 팔려 매각차익이 발생한다면 삼성카드에 일단 득이 될 수 있다. 시장가치의 최소 기준인 청산가치, 즉 자본총계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뜩이나 자본이 비대한 삼성카드 입장에서 꼭 반길 일만은 아니다.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지분이 매각되더라도 ‘이건희 회장 일가→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현재 지배구조 자체에는 변화가 없다. 이 때문에 3대 숙제 가운데 마지막으로 남은 삼성전자의 지배구조 개편에 모든 관심이 집중될 전망이다.
총수일가와 계열사의 삼성전자 지분율은 17%다. 글로벌 투자자로부터 경영능력을 인정받는 이 회장이라면 17%로도 충분히 지배가 가능하지만, 다른 사람이라면 안심할 수 없는 수준이다. 게다가 이건희 회장에서 그 자녀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50%가 넘는 상속·증여세를 내면 지배력이 뚝 떨어지질 수 있다. 후계구도까지 감안하려면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 강화가 필수다.
삼성전자 지분을 직접 늘리는 방법이 있지만, 1% 늘리는 데 1조 원 이상이 든다는 게 부담이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늘릴 수 있지만, 고객 자산으로 총수일가 지배력을 강화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지주사 설립을 통한 주식 스와프(Swap·교환) 방안이 거론되기도 한다. LG나 SK그룹의 경우 이 방법을 통해 총수일가가 자본투입 없이 그룹 지배력을 배 이상 늘린 선례가 있기 때문이다. 증권가에서 이와 관련한 시나리오는 수십 개에 달할 정도다. 그 가운데 하나를 소개하면 ‘삼성에버랜드가 가진 삼성생명 지분과,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을 맞바꾸는 방법’이다.
삼성에버랜드와 삼성생명 모두 총수일가의 직접지배력이 강하기 때문에 스와프의 효과는 삼성전자 대주주를 삼성생명에서 삼성에버랜드로 바꾸는 효과만 발생한다. 이후 삼성전자를 사업회사와 지주회사로 인적분할하고, 지주회사에 삼성전자가 가진 자사주 11.6%를 현물출자하게 되면 ‘총수일가→삼성에버랜드→삼성전자지주사(가칭)→삼성전자사업사(가칭)’의 구조가 만들어진다.
꽤 복잡한 계산이지만, 결론만 언급하면 지배력은 17%에서 30% 넘는 수준으로 높아질 수 있다. SK그룹이 ‘최태원 회장→SK C&C→SK(주)→계열사’의 지배구조를 갖춘 것과 비슷하다. 특히 삼성생명이 빠짐으로써 섞여있던 제조업부문과 금융부문이 분리되는 효과도 누릴 수 있다. 이제 이 ‘마지막 숙제’가 최대 관전 포인트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