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전후로 항상 부동산 투자 문의가 많았는데 올해는 조용합니다. 장사를 망친 것 같아요.”
유앤알컨설팅 박상언 사장은 최근 시장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보통 부동산 시장에서 추석은 여름 비수기를 지나고 가을 성수기로 진입하는 초입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과거 집값 추세는 추석을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살아나는 경우가 많았다.
예컨대 2009년 9월과 10월 전국 집값은 각각 0.7%, 0.4% 올라 그해 월간 기준 상승률이 가장 높았다. 지난해도 줄곧 하락세를 걷다가 9월 들어 0.1% 올라 상승 반전하고 10월엔 0.2%로 오름폭을 확대했다. 올해 추석 이후 집값은 어떤 움직임을 보일까.
주택시장 전문가들은 대부분 추석 이후 매매시장이 살아나긴 여전히 어렵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우리은행 안명숙 부동산팀장은 “거시경제 상황은 불투명하고, 은행권은 가계대출을 제한하고 있으며, 집값이 오를 것이란 기대감도 없다”며 “침체가 내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나비에셋 곽창석 사장도 “하반기 새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면서 준공 후 미분양이 다시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며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져 당분간 침체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그럼에도 전세난은 더 확산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집값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면서 기존 전세 거주자는 매매로 돌아서지 않고, 신혼부부 등 새로운 수요자는 전세만 찾기 때문이다. 강남 등 일부 지역에서는 재건축 이주 수요가 늘어나는 것도 전세난을 부추긴다. 서일대 건축학과 이재국 교수는 “전세가가 덜 올랐던 강북지역 및 수도권 다른 지역으로까지 전세난이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일각에선 가을에 전세난이 더 심각해지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내놓는다. 국민은행 박합수 부동산팀장은 “서울 강남지역 등에는 가을 이사철 전세 수요가 7~8월 미리 움직였다”며 “어느 정도 전세난을 겪겠지만 지금보다 더 심각해지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추석 이후 주택시장에서 가장 유망한 분야는 역시 소형 주택과 오피스텔 등 수익형 부동산이라고 생각하는 전문가가 많다. E.H경매연구소 강은현 소장은 “전세난이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임대사업을 할 수 있는 소형 주택의 인기는 계속 상승할 수밖에 없다”고 예상했다. 소형 주택이 인기를 끌면서 경매시장의 인기는 높아질 전망이다. 작은 돈으로 소형 주택을 사 임대사업을 하려는 수요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메리트 박미옥 본부장은 “경매시장에서 다세대, 다가구 등 임대사업을 위한 주택을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며 “이 같은 추세가 추석 이후에 더 심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임대사업을 위한 소형 주택이 앞으로도 계속 인기를 끌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수익률이 걸림돌이다. 오피스텔이나 도시형생활주택 사업을 할 수 있는 도심 역세권 등의 땅값이 올라가면서 분양가가 비싸져 투자 대비 수익이 계속 떨어지고 있어서다. 클리코컨설팅 한문도 대표는 “정부가 오피스텔을 임대사업 대상에 포함시키고 세제혜택을 주는 등 지원방안을 내놨지만 문제는 수익률”이라며 “수익률이 5% 수준에도 못 미치는 수익형 부동산이 많아지고 있어 인기가 계속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올해 계속됐던 지방 부동산 상승세는 주춤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지방 부동산 시장 상승 원인이 부족한 주택공급에 비해 실수요가 많았기 때문이란 점을 염두에 두면 곧장 하락세로 돌아서진 않더라도 급격한 상승세는 다시 나타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곽창석 사장은 “지방은 투자자가 많은 수도권과 달리 실수요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집값이 크게 요동치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실제 수요에 비해 너무 과열된 곳이 많아 어느 정도 조정을 거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올 들어 8월까지 수도권 집값은 0.7% 상승하는 데 그친 반면 광주(14.5%) 부산(13.2%) 대전(12.3%) 등은 10% 이상 폭등했다. 같은 기간 전국 집값은 평균 5.3% 올랐다. 세중코리아 김학권 사장은 “부산 광주 대전 등 일부 지역은 이미 실수요자들이 부담을 느낄 수준까지 집값이 뛰었다”며 “요즘은 수도권 등의 외부 투자자까지 가세하는 등 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어 추가 매수세가 따라붙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신규 분양시장도 낙관적인 전망을 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유망 지역에 나오는 관심 물량은 꽤 있지만 분양가가 만만치 않을 전망인 까닭에서다. 예컨대 가을 분양시장의 최대 관심 대상은 서울 왕십리뉴타운, 전농답십리뉴타운 등 도심 재개발 재건축 물량. 분양가가 3.3㎡(1평)당 2000만 원 전후로 예상된다. 부동산부테크연구소 김부성 소장은 “서울 도심 뉴타운 아파트의 예상 분양가가 꽤 높아 적극 추천하기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재개발 물량을 노린다면 분양가보다 싸게 나오는 조합원 입주권을 노리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하반기 주택시장을 좌우할 가장 큰 변수로 ‘선거’를 꼽는 전문가들이 많다. 10월 26일 치르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결과에 따라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추진하던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나 서해뱃길, 뉴타운 사업 등이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야당은 이들 사업에 대해 예산 낭비라고 보고 있다. 미래에셋생명 이명수 부동산팀장은 “야당이 승리할 경우 압구정동이나 여의도 등 한강변 개발 사업이 중단될 가능성이 크다”며 “선거결과가 시장을 더욱 침체에 빠뜨리거나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부가 실행계획을 발표했지만 아직 입법절차가 마무리 되지 않은 각종 규제 완화 대책이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하는 전문가도 있다. 신한은행 이남수 부동산팀장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나 분양가상한제 폐지 등이 입법과정을 거쳐 실제 시행된다면 매수세가 살아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외 거시경제 회복에 따른 매수심리가 관건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주택산업연구원 권주안 연구위원은 “올 상반기 전세난이 확산되면서 조금씩 살아나던 매수심리가 미국발 경제 위기로 다시 위축된 상황”이라며 “국내외 거시경제 변화가 매수 심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가 추석 이후 시장을 좌우할 가장 큰 변수”라고 지적했다.
박일한 중앙일보 조인스랜드 기자 jumpcut@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