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태평로 2가에 위치한 삼성 본관(가운데). 왼쪽 작은 건물은 삼성생명, 오른쪽은 태평로빌딩. | ||
최근 삼성 본관 앞에서의 집회 성사 여부로 초미의 관심을 받았던 노비타 노동조합(노조)의 7월9일 집회가 결국은 무산되었다. 삼성전자가 부랴부랴 협상에 나서 집회 이틀 전에 노비타 노조와 타결을 보았기 때문이다.
비록 집회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이번 일로 삼성이 본관 앞에서의 시위에 대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와 이를 막기 위한 갖가지 방법들이 적나라하게 공개됐다.
서울의 한복판인 중구 태평로2가에 위치한 삼성 본관은 역시 삼성그룹 소유인 삼성생명 건물과 태평로빌딩을 좌우로 두고 있다. 말하자면 이 일대는 삼성타운인 셈이다. 이곳의 중심부인 삼성 본관 앞은 그동안 집회·시위의 불모지였다. 2003년 10월 헌법재판소에서 기존 ‘외국 공관 1백m 이내 집회금지’ 규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는 이곳에서 집회를 열 수 없었다. 크로아티아 명예 대사관, 도미니카공화국 대사관, 엘살바도르 대사관 등이 삼성생명 건물과 태평로빌딩에 입주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정된 집시법은 공관이 집회 대상이 아닐 경우 휴일을 빼고 집회가 가능하도록 해 삼성은 매일 집회 신고를 내면서 이곳의 집회를 막아왔다.
노비타 노조는 5월17일 삼성전자가 두산그룹 계열의 네오플럭스캐피탈에 노비타 지분을 전량 매각하자 고용보장과 위로금 지급을 요구하며 같은 달 23일부터 시위에 돌입했다. 노비타는 ‘코끼리밥솥’으로 유명한 한일가전을 삼성전자가 1999년 인수해 만든 회사다. 삼성의 무노조 정책으로 노조가 없었던 노비타는 회사 매각 다음날인 18일 민주노총 충남지부에 등록해 노조를 결성했다.
삼성 본관의 집회신고가 어려워지자 노비타 노조는 길 건너편에서 집회를 시작했다. 그러나 노비타 노조는 포기하지 않고 매일 경찰서 문을 두드렸다. 집회신고는 7백20시간 전부터 선착순으로 접수되기 때문에 아침에 관할 남대문 파출소가 문을 열자마자 집회신고를 접수시킬 계획을 짠 것이었다. 노비타 노조는 6월9일 기습적으로 새벽 4시부터 기다린 끝에 집회신고를 할 수 있었다. 그러자 다음날부터 노비타 노조와 삼성 직원들의 치열한 자리 경쟁이 벌어졌다.
노비타 노조에 따르면 다음날 미리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노조원 3명이 새벽 4시30분에 셔터문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있었고, 이후 6시경에 삼성 직원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와서 여기저기 전화를 하자 8시경에는 30명 정도가 모여들었다고 한다. 아침 9시 셔터문이 열리자마자 미처 다 올라가지 않은 셔터문 아래 틈으로 들어가기 위해 치열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6월19일 일요일 밤에는 노조원들이 경찰서 앞에 8시에 도착했지만 이미 삼성 직원 6명이 민원실 앞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자정 무렵 삼성 직원들이 교대를 위해 경찰서 앞을 기웃거렸고 그 틈을 타 노비타 노조원들이 자리를 잡은 것이었다. 다음날이 월요일이라 미처 일요일에 접수하지 못한 날짜를 합쳐 7월19, 20일 이틀치에 대한 집회신고를 할 수 있었다.
그 다음날에는 노조원들이 먼저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노조원들끼리 배웅을 위해 계단 앞으로 나서자 그 틈에 나타난 삼성직원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노비타 노조원들이 항의하자 삼성측 직원들은 “어제는 우리가 잠시 자리 비운 틈을 타 당신들이 자리를 맡지 않았느냐”며 항의했다. 어차피 피장파장이라는 것이다. 노비타 노조원들은 이렇게 해서 7월9일, 19일, 20일, 30일, 8월4일, 7일 집회허가를 받았다.
한편 남대문 경찰서는 셔터문 앞에서 매일 아침 ‘진풍경’이 벌어지자 타협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대신 셔터문 앞의 과열을 막기 위해 계단 아래 오른쪽 기둥 앞에 먼저 와 있는 사람의 집회 신고를 받겠다는 새로운 룰을 제시했다.
다음날부터는 아래쪽 계단에 먼저 앉아있기 위해 서로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눈치전을 펼쳤다. 노비타 노조원들은 길 건너편 서울역 쪽에서 반대편 경찰서를 주시하면서 삼성측 직원들이 안심하고 자리를 뜨는 것을 지켜보고 있고 이 때문에 삼성 직원도 노조원들이 자리를 뜨는지 항상 주시해야만 하는 신경전이 벌어졌다.
이러는 와중에 노비타의 삼성본관 앞 집회예정 소식이 알려지면서 삼성측에 부담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날짜가 다가오면서 부담을 느낀 삼성측은 7월5일부터 노비타의 노무사를 통해 노조와 협상에 돌입했다. 동시에 노비타 노조는 삼성 본관 건너편에서의 시위를 접는 대신 7월9일 집회를 협상의 카드로 내세웠다. 협상중에도 노조는 노조원 1백80명과 노비타 노조가 속한 민주노총 충남지부 노조원 2백명이 참가하는, 4백명 규모의 집회를 공고하는 등 “끝까지 싸워서 요구조건을 관철시킬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협상 개시 이틀 만에 삼성전자가 기본급의 1천3백∼1천5백%를 위로금으로 지급, 고용보장, 납품기한 연장을 받아들여 협상이 타결됐다. 노비타 노조원들의 요구사항을 대부분 들어준 셈이다. 삼성 본관 앞에서의 집회 허가가 비록 이뤄지지는 못했지만 상당한 압박 효과를 본 셈이다.
한편 노비타 노조가 집회허가를 받는 데 성공한 것이 알려지면서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의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그간 삼성 본관 앞에서의 집회를 지레 포기했던 단체들이 노비타 노조 덕에 노하우를 깨닫게 된 것. 이번엔 집회가 열리지 못했지만 앞으로 본관 앞 집회를 두고 삼성과의 제2라운드가 곧 열릴 것임을 시사하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