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A 시장에서 유력한 인수 후보로 늘 거론되는 포스코. 대형 인수전에선 눈의 띄는 실적이 적지만 스몰딜 시장에선 왕성한 식욕을 보이고 있다. 오른쪽은 정준양 회장 |
그동안 포스코의 M&A는 조용히 진행돼온 것처럼 보인다. 포스코가 진행해온 M&A가 대개 스몰딜에 해당하며 인수 주체도 포스코의 계열사였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 포스코가 인수하거나 투자한 기업은 국내외적으로 쉽게 꼽을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 M&A 과정에서 잡음이 일어나면서 포스코의 왕성한 식욕을 되돌아보게 한다. 포스코가 그동안 해온 M&A와 그와 관련된 잡음을 조명해봤다.
국내에서 M&A 시장이 열릴 때마다 포스코는 늘 유력한 인수 후보로 거론돼왔다. 막강한 자금력에다 사업영역을 넓혀야 한다는 필요성이 맞물려 있었기 때문이다. 2008년 GS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공을 들였던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실패로 돌아간 후에도 대형 매물이 나올 때면 후보군에서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포스코가 인수전에서 승리한 적은 거의 없었다. 아니, 인수전에 정식으로 뛰어들어 입찰을 한 적이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부에서는 ‘너무 신중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지난해 3조 4000억 원을 들여 대우인터내셔널을 인수함으로써 포스코의 M&A는 마침내 가시적인 성과를 나타냈다. 그렇지만 대우인터내셔널을 인수한 후 포스코는 이슈가 될 만한 대형 매물을 인수하지 못했다. 지난 6월에는 삼성을 등에 업고서도 대한통운 인수전에서 고배를 마셨다. 이후 포스코는 M&A에 대해 ‘꼭 필요한 부분으로 한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최근 임원회의에서 “불요불급한 M&A(인수·합병)를 자제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글로벌 경제가 다시 불안해지고 재무구조에 대한 해외 신용평가사들의 잇단 경고도 배경이 됐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포스코의 M&A는 활발했다. 다만 대부분 스몰딜에 해당하고 인수 주체가 계열사였기에 그다지 부각되지 않았을 뿐이다.
대한통운 인수에 실패한 포스코는 지난 7월 동남아 최대 스테인리스업체인 태국 타이녹스를 3058억 원에 인수했다. 이를 끝으로 포스코 측은 “올해 안에 대규모 M&A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신사업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M&A마저 포기한 것은 아니다. 다만 “그 규모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포스코의 이 같은 작심은 최근 성사된 M&A가 증명한다. 포스코ICT는 최근 신규법인 ‘포뉴텍’을 설립해 원전 계측 전문업체 삼창기업의 원전사업 부문을 인수할 예정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인수 작업이 거의 끝났다”고 말해 마무리 단계임을 알렸다. 인수대금은 1400억 원.
지난해 6월 플랜트 제조업체 성진지오텍을 인수한 포스코는 지난 4월 포스코엠텍을 통해 산업폐기물 재활용 업체 리코금속을 인수했다. 6월에는 포스코P&S가 알루미늄 판재업체 대창알텍을 인수했다. 포스코의 패밀리회사가 된 대우인터내셔널은 대우로지스틱스 기업회생 사모펀드(PEF)에 참여해 약 20%의 지분을 확보했다. 이들 계약은 약 600억~1500억 원이었다.
해외 M&A에는 포스코건설이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 1월 에콰도르의 플랜트 시공업체 산토스 CMI를 인수한 포스코건설은 지난 8월 스페인의 담수플랜트업체 이니마사(社)의 최종 입찰 후보에 GS건설과 함께 선정됐다. 또 지난 9월 정준양 포스코 회장이 파키스탄 총리 관저에서 투와르키 스틸밀사(社)의 지분 15.34%를 인수하는 계약을 했다. 이밖에 브라질 광산업체 지분, 베트남 석탄화력발전소 지분 등을 확보했다. 포스코는 또 계열사를 통해 희소금속 공급업체를 인수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 밝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자료에 따르면 포스코의 계열사 수는 2007년 4월 23개에서 2011년 4월 61개로 늘어났다. 4년간 무려 38개사, 165.2%가 증가한 것으로 증가율로 보면 경실련이 조사한 국내 15대 대기업 중 현대중공업(7개에서 21개, 200%)에 이어 두 번째다. 단순증가 수만 보면 포스코가 가장 많다. 4월 이후 성사된 스몰딜이 더 있어 포스코의 계열사 수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가 자칭 ‘패밀리회사’를 계속 늘리며 그룹 규모를 확대하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계열사를 늘리면서 이런저런 잡음과 우려가 불거진다는 점이다.
먼저 포스코의 공격적인 M&A가 재무구조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 같은 지적은 주로 무디스, S&P 등 해외 신용평가사들이 주도하고 있다.
무디스는 “비철강회사에 대한 공격적인 M&A는 재무구조 악화와 등급 하향에 대한 압력을 더욱 높일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S&P 역시 “지난해 포스코가 대우인터내셔널 인수에 3조 4000억 원을 쏟아붓는 등 한 해 동안 사업 확장에 9조 4000억 원이 넘는 비용을 투입하면서 재무 상태가 악화됐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해외 신용평가사들의 잇단 경고는 포스코가 대한통운 인수전에 뛰어들면서 제기된 것이다. 바꿔 말하면 대한통운 인수에 실패한 것이 오히려 재무 상태에는 도움이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비록 스몰딜 위주긴 하지만 잦은 M&A가 포스코 주가의 할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최근 유럽 경제 위기와 글로벌 경제의 더블딥 우려로 주가가 폭락하기 전까지 대형주의 상승이 이어져왔지만 포스코의 주가는 제자리걸음이었다. 잦은 M&A가 포스코의 주가 상승을 가로막는 한 요인이라는 셈이다.
포스코가 M&A를 했거나 시도하고 있는 회사와 관련해 크고 작은 잡음도 일고 있다. 포스코ICT가 인수하려는 삼창기업과 관련, 원전사업 부문만 인수하는 데 인수대금 1400억 원은 너무 과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포스코 측은 “주간사에서 정한 액수인 데다 주주들이 이의를 제기하면 모를까 다른 곳에서 인수가격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일”이라고 일축했다.
일각에서는 이두철 삼창기업 회장과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친분이 있어 삼창기업을 비싸게 인수하는 데 박 명예회장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일고 있다. 두 회장은 같은 지역 출신에다 카네기멜론대학교 동문으로 묶인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포스코 측은 “명예박사(박태준 명예회장)도 동문이라는 테두리에서 친분이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고 해명했다.
포스코는 또 대우인터내셔널을 통해 대우로지스틱스 인수를 꾀하며 해운업에 진출하려 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대우인터내셔널이 지난 5월 기업회생절차를 진행 중인 대우로지스틱스의 기업회생 사모펀드에 참여한 것을 두고 해운업계는 ‘해운업 진출을 모색하기 위한 포스코의 전략 아니냐’며 반발했다. 대우인터내셔널이 인수한 대우로지스틱스 지분은 약 20%. 포스코가 향후 대우로지스틱스 기업회생 사모펀드에 참여한 정책금융공사 등의 지분을 추가로 매입해 결국 대우로지스틱스를 인수함으로써 해운업에 진출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종철 한국선주협회장(STX 부회장)은 지난 9월 16일 제주에서 “포스코 같은 대형 화주가 본업과 상관없는 해운업에 진출하는 것은 산업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이라며 반발했다. 이 회장은 또 “철강제품의 안정적 공급이 본연의 책무인 포스코의 해운업 진출은 다소 엉뚱하다”며 “해운업 진출은 포스코에도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포스코 관계자는 “대우인터가 대우로지스틱스의 회생을 지원하기 위해 사모펀드에 참여한 것일 뿐”이라며 “계약기간 3년이 지나면 그쪽(대우로지스틱스)에 우선인수권이 있다”며 대우로지스틱스 인수를 부인했다.
선주협회가 지적하는 것은 대우인터내셔널이 다른 재무적투자자(Financial Investors, FI)와 달리 전략적투자자(Strategic Investors, SI)라는 점. 재무적투자자는 단순 이익을 위해 자금을 조달해주고 투자를 하지만 전략적투자자는 경영권 확보를 목적으로 자금을 조달해준다. 따라서 대우인터내셔널이 결국 대우로지스틱스를 인수하고, 이를 기회로 포스코가 해운업에 진출한다는 것이다.
2009년 포스코가 대우로지스틱스를 인수하려다 해운업체의 반발로 무산된 전력이 있다는 점도 포스코의 해운업 진출 의혹을 짙게 하는 요인이다.
현행 해운업법상 대형 화주가 해운업에 진출하기는 불가능하다. 보유할 수 있는 지분이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에서 대형 화주의 해운업 진출 규제를 재검토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사실이 장기적 관점에서 포스코의 해운업 진출 의혹을 짙게 한다.
이종철 회장은 포스코의 해운업 진출을 “대기업들이 소모성자재구매대행(MRO) 사업을 벌이는 것”에 비유했다. 이와 관련해 포스코는 MRO사업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고 밝힌 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삼성이 대표적인 MRO계열사인 아이마켓코리아(IMK)를 매각키로 한 것을 비롯해 대기업들이 잇따라 MRO사업을 포기하는 추세와 달리 포스코는 MRO사업을 유지할 것을 밝혔다. 포기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어떻게 상생모델로 발전시키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 포스코 측은 영업이익을 남기지 않는다는 각오도 피력했다. 그러나 대기업 한 관계자는 “다른 대기업들은 몰라서 포기하겠느냐”며 “지금 상황에서는 영업이익을 남기지 않는다는 게 중요한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M&A를 거듭하며 외형과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포스코에 대해 우려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재무 상태를 지적받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적어도 연임 여부를 앞둔 정준양 회장의 ‘업적’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는 시선이 존재한다는 것이 더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여전히 군침 도는 ‘그 물건’
▲ 대우조선해양 해상크레인인 ‘대우 3600호’. |
현재 포스코와 연결되는 대형 매물은 대우조선해양이다. 지난 2008년 GS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나서며 가장 강력한 인수 후보로 지목됐지만 GS의 갑작스러운 돌변으로 포스코마저 눈물을 삼켜야 했다.
이후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대우조선해양 인수의 뜻을 완전히 굽히지는 않았다. 2010년 초까지만 해도 정 회장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할 수 있다는 의중을 감추거나 부인하지 않았다. 당시 이동희 포스코 사장 역시 “대우인터내셔널과 대우조선해양을 모두 인수한다 해도 자금에 어려움이 없다”고 말해 대우조선해양 인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포스코의 입장이 변한 것은 대우인터내셔널을 인수한 후다. 대우인터내셔널 인수를 위한 주식매매 계약을 한 8월 이후 정 회장은 직접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대해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말로 인수 의향이 없음을 피력했다.
이후부터 포스코 측은 여러 경로를 통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지 않을 것임을 내비쳤다. 심지어 지난 7월 22일 최종태 포스코 사장은 “대우조선해양은 우리 관심에서 없어진 회사”라고까지 밝혀 입장을 확실히 했다.
현재로서는 포스코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대우조선해양이 언제 매물로 나올지도 모르는 상태인 데다 ‘국민주 방식 매각’, ‘블록세일’ 등의 방법도 검토되고 있다.
포스코의 자금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도 걸림돌이다. 지난 6월 대한통운 인수전에 참여하면서도 재무 상태에 대해 신용평가사들의 경고를 받은 바 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설사 시장에 매물로 나온다 해도 그보다 덩치가 훨씬 큰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 참여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그럼에도 시장과 일부 전문가들은 포스코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가능성을 완전히 닫아놓지는 않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포스코 외에 대우조선을 인수할 기업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며 “관심이야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