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브라더스 몰락 후 3년 만에 그리스 재정 위기로 유로존이 위태로워지며 주식시장은 물론 전 세계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관점에서 보면 3년 전의 재판이라 할 만하지만, 같은 듯 다른 게 역사의 묘미다. 3년 전과 지금은 닮았지만 다르다. 일단 닮은 점을 보자. 리먼이나 그리스 모두 도미노의 첫 막대(bar)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은 같다. 리먼브라더스는 다양한 금융기관과 파생상품으로 엮여 있었다. 그리스 국채는 유럽의 여러 금융기관이 보유하고 있다.
리먼브라더스가 무너지면서 거래하던 금융기관들이 연쇄적으로 충격을 받았다. 그리스가 지급불능(default)에 빠지면 관련 채권을 보유한 금융기관 그리고 그 금융기관과 연계된 다른 금융기관이 연쇄적으로 충격을 받는다. 부실을 떨기 위해 보유자산을 매각하고,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본재확충(recapitalization)을 해야 하는 점은 리먼 충격을 받았던 금융기관이나 부실한 그리스 국채를 보유한 유로존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닮은 점은 여기까지다. 리먼은 사기업이지만 그리스는 국가다. 사기업은 부도가 나면 청산되거나 매각하면 된다. 국가는 부도가 났다고 해서 청산하거나 매각할 수 없다. 외부 지원을 받으려면 재정긴축을 하는 게 당연한데, 국민이 고통스럽다. 국민들의 동의를 구하기 쉽지 않고, 이는 다시 외부 도움을 받기가 어렵게 만든다. 우리나라가 1997년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긴축에 동의한 국민들의 희생이 바탕이 된 덕분이다.
파급력도 다르다. 리먼은 투자은행이어서 주요한 거래 상대가 기관이었다. 그리스 채권을 가진 국가들의 ‘주주’ 격은 국민이고, 금융기관들의 주거래대상은 상업은행이며, 일반 예금자가 많다. 그리스 사태로 충격을 받을 경우 자칫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사태) 같은 치명적인 연쇄반응 우려가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다른 점은 리먼 때만 하더라도 재정이나 통화정책을 동원해 부실을 막을 여지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데 있다. 쉽게 말해 3년 전에는 금융기관의 부실을 정부가 메워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정부 곳간도 바닥이 났다. 돈을 더 찍어낼 수 있지만 하이퍼 인플레이션(hyper inflation ; 통제상황을 벗어나 1년에 수백% 물가상승이 일어나는 경우)이란 카오스를 초래할 수 있다.
경제 상황이 닮은 듯 다른 것처럼 증시도 비슷하지만 같지만은 않다.
일단 올 연말까지 주가 흐름은 2008년과 상당히 유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2011년 증시와 환율, 외국인의 움직임을 보면 2008년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최근의 환율 상승세는 그해 가을을 떠올리게 해 더 섬뜩하다. 올 4분기에도 좋은 재료보다 우울한 재료가 많아 보인다.
2008년에도 양적완화라는 특단의 해결책은 겨울이 다 돼 나왔다. 올해에도 미국 연준리가 당장 이달이나 다음달에 ‘양적완화3’와 같은 특단의 카드를 내놓기는 어렵다. 이 카드는 정말 이도저도 다 통하지 않을 때 나올 것이다. 2008년 말에는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됐지만, 2011년 말에는 ‘레임덕’이다.
유럽도 마찬가지다. 그리스와 이탈리아는 허리띠를 졸라매려 하지 않고, 독일은 손해를 보려 하지 않는다. 정치적 합의가 쉽지 않다. 신용등급 하향 도미노도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중국의 도움도 기대하기 어렵다. 인플레와 전쟁이 한창이라 남의 사정을 봐줄 여유가 없다.
최근 증시가 국내 프로그램 수급 덕분에 반짝 반등하는 듯하지만 ‘덫’일 수 있다. 국내 자금의 힘, 프로그램의 힘만으로 상승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최대 세력인 외국인의 시장 대응 전략은 ‘매도’다. 반짝 반등은 매도 기회다.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 붕괴 전까지 코스피의 그해 고점과 저점의 폭은 채 30%가 안됐다. 올해 고점 대비 저점의 폭은 25%가량이다. 리먼 사태 발발 이후 시장은 고점 대비 반 토막이 났다. 그리스 부도가 현실화되면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최악의 경우 고점 대비 10~20%는 더 빠질 각오를 해야 한다. 양대 기축통화를 이루고 있는 유로존의 도미노 충격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 코스피로 1200~1500선이다.
그렇다면 내년엔 증시가 나아질까? 2009년을 닮을까?
2008년 바닥을 찍은 증시는 2009년 봄 반등을 시작해 올 5월까지 계속됐다. 두 차례에 걸친 미국의 양적완화 덕분이다.
2012년에도 반등을 기대할 수 있지만 속도나 기울기는 2009년에 비해 더디고 완만할 가능성이 높다. 돈을 풀어서 자산가격을 끌어올린 2009년과 달리 2012년에는 실물경제가 바닥을 확인한 후 회복하는 국면에서 주가가 반등하는 국면이 예상된다.
그리스와 이탈리아가 당장 발등의 불을 끄더라도 천문학적인 빚을 갚기 위해서는 상당 기간 긴축이 불가피하다. 돈을 빌려준 입장에서도 상당 기간 돈이 묶이는 만큼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유로존 전체의 긴축이다. 미국, 중국과 함께 세계 3대 소비시장인 유럽의 긴축은 국내 수출기업의 실적 둔화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도 사정이 녹록지 않다. 감세 및 경기부양책이 의회를 통과하더라도 9%대에 이르는 실업률과 악화일로의 경기지표 방향을 크게 되돌리지는 못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쉽게 말해 2008년 금융위기로 치명타를 맞은 미국의 소비가 단기간 내에 되살아날 가능성이 많지 않다는 뜻이다. 세계 최대 소비시장인 미국의 위축 역시 국내 증시의 주력인 수출기업 실적에 부담이다.
그럼 어느덧 국내 기업의 최대 수출시장이 된 중국은 어떨까? 2년간 긴축을 해왔지만 아직도 물가는 제대로 잡히지 않고 있다. 10%에 육박했던 경제성장률이 4%대로 더뎌질 것이란 분석이 많다. 물가상승과 경제성장률 둔화는 중국 내수의 위축을 뜻한다. 역시 국내 수출기업에 좋은 소식이 아니다. 당장 8월 무역수지가 4억 달러 흑자에 그쳐 7개월 이래 최저치로 쪼그라든 것은 전조다.
2007년과 2010년 활황장에서 주식시장은 미래에 대한 낙관을 바탕으로 주가를 높여 잡는 경우가 많았다. 1년 후 이익 전망을 바탕으로 주가가 오르면, 다음엔 2년 후 이익 전망을 당겨와 다시 주가에 반영하고, 주가가 더 오르면 다시 3년 후 전망까지 끌어다 높은 주가를 정당화한다.
하지만 2008년과 2011년에는 미래의 부정적 이익 전망이 주가에 반영되면서 주가 수준이 낮아지는 국면이다. 2012년에도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다가 다시 이익 전망이 좋아지는 때, 즉 경기 회복이 예상되는 시점에 주가가 반등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을 긍정적으로 보면 내년 하반기, 부정적으로 보면 미국 대선이 끝나는 2013년에 가서야 글로벌 경기가 회복 국면을 제대로 맞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