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증권거래소를 방문한 관람객들이 홍보관을 둘러보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금융상품도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은 자사 수익과 직결된 문제라 대놓고 환매하라는 말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위기 후 반등은 새로운 주도주에서부터 비롯된다’는 통설을 들며 지난 2년간 수익률이 좋았던 금융상품의 약발이 다한 만큼 일단 비중을 줄이라는 완곡한 조언이 나오고 있다. 금융상품 종류별 구체적 대응전략을 알아봤다.
▷국내펀드=올 상반기까지만 해도 국내 주식형 펀드 가운데 백미는 단연 자동차 화학 정유, 즉 ‘차·화·정’을 담고 있는 펀드였다. 특히 자동차테마 펀드나 현대차그룹주 펀드의 성과가 눈부셨고, 차화정 대형주를 중심으로 종목을 압축한 이른바 압축형 펀드가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이번 폭락으로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자동차와 화학의 업황이나 이익 전망이 다른 업종과 비교해 못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추가하락 위험에서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호남석유나 SK이노베이션 같은 종목의 낙폭은 유달리 깊다. 특히 OCI를 비롯한 태양광 관련 화학주는 토막 주식이 됐다. 경기가 좋지 않으면 국제유가도 약세를 보일 수밖에 없고, 국제 유가가 약세인 상황에서 태양광 등 대체에너지의 수요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엔화 강세 덕을 여전히 톡톡히 보고 있는 견조한 자동차조차도 일본 업체들이 대지진의 충격에서 벗어나고 있고, 독일 업체들이 건재한 상황이어서 지속적인 낙관은 어렵다. 한-미 FTA와 한-EU FTA가 모두 발효되면 수입차의 국내 공략도 거세질 게 뻔하다. 가장 큰 이익을 벌어들이고 있는 국내시장에서의 경쟁 심화는 자동차 업체들의 수익성에 부담을 줄 만한 요인이다.
IT의 경우 업계를 통일했던 스티브 잡스가 최근 사망했다. 당분간 IT업계는 잡스의 잔영만이 남은 애플제국의 뒤를 이을 새로운 맹주 쟁탈전이 벌어질 전망이다. 우리나라 IT업체들의 경쟁력을 고려할 때 꽤 승산이 있어 보인다. 경기가 좋지 않을 때일수록 독점적 기업들이 득세하기 마련이다. 국내 시장, 그리고 글로벌 시장에서 독점적인 위치를 누리는 곳이 어딘가를 살피고, 해당 업종에 대한 투자비중이 높은 펀드로 갈아타는 게 좋을 듯하다.
당분간 글로벌 경기가 좋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자동차를 바꾸거나, 집을 새로 짓거나, 에너지를 더 사용할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휴대폰이나 휴대용 전자기기는 교체부담이 적다. 차화정의 뒤를 이을 후보군으로는 현재로서는 IT가 가장 유망하다는 게 중론이다.
익명의 자산운용사 운용팀장은 “결국 인덱스처럼 시장 자체에 투자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특정 업종이나 종목에 쏠린 펀드의 경우 위험이 크다”면서 “반등국면에서 핵심 업종이나 종목이 시장 주도주가 되리란 확신도 없다. 자동차는 2007년 상승장의 주도주는 아니었지만, 2009~2010년 반등장을 주도했다. 화학의 경우 2007년엔 태양광이, 2010년엔 석유화학과 정유가 떴다”고 말했다.
월지급식 펀드도 환매 고려 대상이다. 계속 적자가 나면 회사도 월급 주기가 어려워지듯이 약세장에서는 월급펀드가 월급을 주기 어렵다. 되레 원금만 까먹을 수 있어 은행에 맡겨둠만 못할 수 있다.
▷해외펀드=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해외펀드 열풍이 급격히 줄었지만 여전히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를 중심으로 해외펀드를 보유한 경우가 많다. 이 역시 단계적인 환매 대응이 바람직해 보인다.
중국은 경제상황이 심상치 않다. 제도권 대출이 막히면서 사채시장이 팽창하고 있고, 인플레이션 속에서도 부동산 가격은 오르지 않는다. 지방정부 재정에도 주황색 불이 들어왔다. 연평균 9~10%에 달하던 경제성장률이 내년부터는 반토막 난다는 전망도 있다. 한국 투자자금이 많이 유입된 홍콩에서는 최근 외국인 자금이탈이 심각한 수준이다.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 금융기관이 현금 확보 차원에서 보유자산 매각에 나선 것으로 관측된다.
브라질도 ‘룰라 효과’가 옅어지며 정치가 불안해지고 있고, 물가는 들썩이고 있다. 브라질 경제의 심장인 원자재 시장이 최근 글로벌 경기침체로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점도 부담요인이다.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푸틴의 재집권 가능성과 함께 국제유가 하락세로로 증시 엔진에 힘이 빠지고 있다. 인도의 경우 인플레와 재정건전성 문제가 동시에 불거지면서 브릭스 가운데 가장 취약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환헤지를 하지 않은 해외펀드의 경우 현재 원화약세 국면이 진행 중인 만큼 해외자산을 팔고 들어올 때 환차익이 가능하다. 원자재투자 펀드의 경우에도 경기부진으로 원자재 수요가 약화되고, 유럽 발 재정위기로 인한 달러 강세로 당분간 큰 폭의 상승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국제금융센터 오정석 연구원은 “그리스의 채무 감축목표를 달성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거의 확실시되는 데다 미국 경기지표가 다소 호조를 보였으나 유로존 위기를 잠재울 정도는 아니어서 글로벌 불안감이 확산됐다”면서 “그리스가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만 넘기면 원자재 가격이 잠시 반등할 가능성도 있으나 전반적으로 하락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변동성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사펀드·랩어카운트=지난 2년간 펀드 시장을 대체하며 돌풍을 일으킨 상품이 바로 랩어카운트다. 상반기까지만 해도 최고의 수익률로 각광받았지만, 이젠 과거지사. 펀드보다 종목 쏠림이 심해 하락장에서 더 큰 출혈이 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실제 랩어카운트가 보유한 핵심 종목들은 차익실현을 위한 외국인의 펀치를 집중적으로 맞으며 ‘샌드백 신세’가 됐다. 코스피지수는 고점대비 25%가량 밀렸지만, 랩어카운트 핵심 종목들 가운데는 이보다 주가가 더 떨어진 종목들이 수두룩하다. 50%가 하락할 경우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려면 100%가 올라야 하는데,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 환경을 감안할 때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 덩치가 상당히 커진 일부 자문사의 경우 이번 위기 이후 반등장에서의 주도주와 현재 보유 종목이 다를 경우 포트폴리오 교체에 상당한 시간과 비용,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곳에 자금을 계속 묵혀둘 경우 ‘비자발적 장기투자’라는 덫에 걸릴 수 있다. 한번 무너진 포트폴리오로 다시 재기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증시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조언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