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금복권520’의 인기가 뜨거워 소비자들이 구매하기도 쉽지 않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연금복권의 인기에 총판업체는 배달할 때마다 ‘수량이 너무 적다’는 불만에 해명하느라 진땀을 흘린다. 로또는 전산시스템으로 운영돼 중간 유통단계가 없지만 연금복권은 인쇄복권이라 총판업체를 거친 뒤 전국으로 배포된다. 총판에서 최종 판매점으로 나가는 물량이 정해지기 때문에 가끔은 오해를 받는다고 한다.
경상남도 한 지역 총판업체 관계자는 “명문화된 배분규정은 없으나 수익이 많은 복권방이 가장 우선이고 그 뒤로 편의점, 슈퍼, 가판대 순이다. 즉 매출과 기존의 거래량에 따라 수량이 좌우되는데 각각 몇 장이 나가는지는 영업비밀이라 공개할 수 없다. 그런데 이걸 두고 특정 업소만 많이 주는 것 아니냐며 문제를 제기하는 소매업주가 있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 나름대로 최대한 공평하게 배분을 하지만 연금복권이 너무 인기가 많아 공급량을 늘려달라고 요구하는 분이 많다. 간혹 웃돈을 주고서라도 공급량을 더 받고 싶다고 말하는 분도 있으나 물건 자체가 없으니 그것도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가끔 직접 사무실로 찾아와 연금복권을 달라는 소매업자도 있다. 한 번은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려 차도 대접하고 밥도 사면서 잘 달래 보내는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소매업자들은 연금복권 때문에 웃고 운다. 연금복권은 매주 매진을 기록하기 때문에 점포에 배치되는 수량이 곧 수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연금복권의 수수료는 10%로, 로또(5.5%)의 두 배 가까이 된다.
로또 1등보다는 2~3등 당첨자가 꾸준히 나와 ‘실속 명당’으로 소문난 서울시 종로구의 복권방 주인 김 아무개 씨(64)는 “늘 항의도 하고 부탁도 해보지만 수량을 늘려주진 않는다. 지금 수량의 딱 두 배만 들어오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김 씨는 “현재 유통되는 연금복권 양은 구매자, 판매자도 만족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기자가 찾아간 날은 15차 추첨이 있는 10월 12일 오후였지만 그의 점포에 배치된 연금복권은 이미 17차(10월 26일 추첨)까지 동이 난 상태였다. 김 씨는 “연금복권이 처음 나왔을 때와 지금을 비교해봐도 손님이 줄지 않았다. 꾸준히 찾는 사람은 많지만 일주일을 팔아야 하는 복권이 1~2일 만에 없어지니 난감한 노릇”이라고 전했다. 그는 “매진이 됐다는 말을 손님이 믿지 않을 때도 있다. 판매 초반에는 돈을 더 줄 테니 빼놓은 것이 있으면 달라는 손님도 있을 정도여서 꽤나 힘들었다”고 덧붙였다. 명당으로 소문이 나 멀리서 일부러 찾은 손님들이 허탕치고 가는 모습을 보고 나면 본인의 마음도 편치 않단다.
본의 아니게 손님과 언쟁을 벌이는 경우도 빈번하다. 김 씨는 “특정 숫자를 달라고 하는 손님이 있다. 하지만 그 숫자가 인쇄된 연금복권을 보유하지 않을 때도 있고 찾기도 어렵다. 1등 번호 앞뒤 번호가 2등이기에 연속으로 구매하는 손님이 대부분이라 특정 숫자를 빼주는 것은 곤란해 거절하면 말다툼이 생기기도 한다”고 밝혔다. 결국 김 씨는 “낱장 판매를 원하거나 특정 숫자를 지목하는 손님들에게는 판매를 하지 않게 됐다”고 얘기했다.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연금복권 구입 기회를 주기 위해 자구책을 마련한 점포도 있다. 로또 1등을 15번이나 배출해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서울시 노원구에 위치한 편의점 ‘스파’가 그 주인공이다.
기자가 가장 한가한 시간이라는 평일 오후 3시에 스파 편의점을 직접 찾아가 봤으나 손님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연금복권은 살 수 없었다. 판매 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편의점 점주 김현길 씨(57)는 “복권이 들어오는 날 무한정으로 팔아버리면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동이 난다. 그 이후에 오는 손님들을 위해 생각해낸 방법이 시간대별 판매였다”고 밝혔다.
▲ 복권을 사기 위해 줄을 서고 있는 사람들. |
이처럼 워낙 연금복권 구하기가 어렵다 보니 억지를 부리는 손님도 종종 있다. 김 씨는 “일 때문에 바빠 시간 맞춰 오지 못한다며 연금복권을 빼놓으라는 손님, 무작정 전화를 걸어 연금복권 배달을 요청하는 손님 등 때론 황당한 요구를 받기도 한다”고 전했다.
가끔 연금복권의 인기 때문에 손님들 사이에서 싸움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그는 “판매시간을 정해놓은 대신 손님들이 직접 복권을 고를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종종 줄을 길게 서있는데도 불구하고 복권을 뺐다 넣었다하며 ‘느낌’을 찾는 손님이 있다. 거기다 너무 많은 양의 복권을 고르면 줄 서있는 손님들의 얼굴이 붉어지는 걸 볼 수 있다”며 “그럴 때마다 중간에서 난처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 워낙 연금복권이 조기에 매진돼 당첨자 교환도 원활하지 못하다고 한다. 김 씨는 “끝자리 숫자 하나만 맞아도 7등(1000원) 당첨이라 교환을 위해 찾는 손님이 꽤 많다. 대부분 다시 연금복권으로 교환하길 원하는데 복권이 없어 로또로 바꿔가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이런 열기는 지방의 ‘명당’도 예외는 아니다. 로또 1등을 8명을 배출해 유명해진 부산 동구의 복권방 주인은 “연금복권 수량이 워낙 적다 보니 들어오면 바로 매진이다. 연금복권 사러 왔다 로또를 사기도 하고, 당첨된 복권을 교환하러 왔다가 물건이 없어 짜증내며 로또로 전환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젊은 유동인구가 많은 대학가 편의점에서도 연금복권은 단연 인기다. 서울시 동대문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이 아무개 씨(33)는 “한 번에 거액의 당첨금을 받는 것이 아니라서 그런지 학생들이 부담 없이 구매하는 편이다. 판매 초반부터 홍보를 하지 않아도 손님들이 먼저 와서 연금복권을 판매 하느냐고 물어볼 정도로 인기”라고 말했다.
이 씨는 “9월엔 복권을 못 받은 주도 있었다. 당첨발표 2주 전에 매진이 되는 경우가 빈번하자 한 차례 조절을 한 것”이라고 했다. 번호만 맞히면 되는 로또보다 다소 복잡한 방식 때문에 벌어지는 황당한 일도 있다고 한다. 그는 “사갔던 복권을 다시 가지고 와 맞춰달라고 하는 분도 있고 무조건 자신이 당첨됐다고 우기는 손님도 있다. 특히 발표된 회차와 구입한 복권의 회차 시차가 제법 나서 당첨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밝혔다.
판매자만큼이나 구매자들도 연금복권을 손에 넣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앞서 언급한 스파 편의점을 찾았지만 복권을 사지 못한 한 아무개 씨(52)는 “어쩔 수 없이 다시 와야겠다. 집 주변에서 복권을 구입하려 했더니 늘 매진이라고 했다. 여긴 유명한 곳이니 물량이 많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다. 그래도 6시면 구입을 할 수 있다니 기다려야 겠다”고 말하며 근처 카페로 들어갔다.
외근 나왔다 잠깐 들렀다는 직장인 박 아무개 씨(32)는 “영업을 하기 때문에 서울 곳곳을 많이 다니는데 제때 연금복권을 구입하지 못할 때가 더 많다. 복권방에서 만난 어떤 분은 복권 사는 날을 정해 하루에 몇 군데를 다닌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첫 회부터 빠지지 않고 연금복권을 구입했다는 김 아무개 씨(24)는 나름의 노하우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우선 복권을 고를 수 있는 곳을 찾아 단골을 만든다. 그 점포의 복권 들어오는 날을 미리 알아두고 그 시간에 맞춰 찾아가면 원하는 숫자의 복권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연금복권은 선물용이나 판촉 행사에도 사용되고 있다. 최근 지인의 생일파티에 초대된 회사원 유 아무개 씨(여·28)는 초대 문자 맨 아래 적힌 한 줄에 절로 웃음을 지었다. ‘선물은 연금복권 2장으로 받겠습니다’라는 문구를 봤기 때문이다. 유 씨는 “선물에 대한 부담감도 덜고 재미있다. 주위 사람들이나 인터넷을 보면 생일뿐만 아니라 병문안, 집들이, 각종 파티 선물로도 연금복권이 인기인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 온라인 판촉 행사 이벤트 경품으로도 연금복권을 증정하는 곳이 늘었다. 연금복권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덩달아 홍보효과도 상승하기 때문이다.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연금복권의 형식을 딴 경품이 등장했다. 롯데백화점은 가을 정기세일 이벤트 차원에서 지난 9월 30일부터 10월 30일까지 한 달간 연금 경품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벤트 1등 당첨자에게는 매달 300만 원씩 10년간 총 3억 6000만 원의 연금이 지급된다.
연금복권과 관련한 다양한 스마트 기기 애플리케이션(앱)도 등장했다. 복권 출시 100여 일 만에 30개에 달하는 관련 앱이 나왔다. 종류도 다양하고 기능도 여러 가지다. 대부분의 앱은 당첨확률이 높은 숫자 정보를 제공하고 직접 특정 번호를 지정해주기도 한다. 또 소지한 복권의 번호를 입력하기만 하면 자동으로 당첨 여부를 알려준다. 번호만 맞히면 되는 로또와 달리 연금복권은 당첨 확인이 다소 복잡한 편이라 앱을 이용하면 편리하다는 평가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1등 확률 로또의 2.6배
연금복권은 ‘발행→총판→딜러(총판업체 직원)→최종 판매점’의 단계를 거친다. 연금복권을 발행하는 한국연합복권 관계자는 “총판과 딜러가 5%의 수수료를, 판매점이 10%의 수수료를 받는다. 매주 630만 장의 연금복권 중 온라인에서 35만 장이 판매되고 남은 595만 장은 전국 18개 총판업체로 나간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우리는 총판업체까지만 배분하고 최종 판매점 배분은 총판의 재량에 따른다. 인구비례에 따라 나뉜 전국 총판에 배분되는 연금복권의 수량은 각 33만 장 정도로 거의 균등하지만 지역 특성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덧붙였다.
연금복권은 보통 복권이 출시 3개월 이후부터는 판매율이 떨어진다는 일명 ‘3개월 고비’도 무사통과하며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가장 매력적인 점은 1등 당첨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연금복권은 로또에 비해 1등 당첨확률이 약 2.6배에 이른다. 낮은 세금도 이점이다. 보통 3억 원 이상의 복권 당첨금은 세율이 33%지만, 연금 복권은 22%의 세율이 적용된다. 로또와 달리 연금복권은 온라인에서도 구매가 가능하다.
연금복권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면서 그동안 각종 루머도 제기됐다. 논란이 계속되자 기획재정부가 직접 나서 해명을 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가장 논란이 됐던 부분은 ‘정부가 당첨금 원금을 가지고 당첨자는 이자만 받는다’는 의혹이었다. 인터넷 포털 게시판에 처음 의혹을 제기한 네티즌은 “당첨금을 일시금으로 받아 은행에 넣어두면 이자만 해도 월 지급금과 비슷하다”는 주장을 폈다. 즉 매월 500만 원씩 받지 않고 한 번에 12억을 받아 연 3.5% 단리로 20년간 은행에 넣어두면 원금 12억도 남지만 연금복권은 이자만 받는 꼴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 관계자 “오해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총 지급액이 12억 원이라는 뜻이지 1등 당첨금이 12억 원인 것은 아니다. 매주 2명의 1등 당첨자가 나오는데 이들에게 배당된 금액은 약 16억 원 정도다. 이 돈으로 안전한 자산인 국채를 매입한다”고 말했다.
지급준비금이 부족해 당첨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불거졌다. 앞서의 복권위 관계자는 “지구가 멸망하거나 나라가 망하지 않는 이상 그럴 일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지급준비금으로 위험자산에 투자해 돈놀이를 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국고채수익률 변동으로 약간의 과부족이 발생할 순 있지만 어떤 경우에도 당첨자에게는 약정된 금액이 지급되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또 삼성자산운용이 지급준비금을 관리하는 것에 대해서는 “언제든 바뀔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역시도 위험자산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해명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