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해령 대표이사는 임상실험을 자청해 ‘레이저 세례’를 받기도 했다. 그런 열정이 현재의 ‘루트로닉’을 만들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레이저 의료기기 전문 (주)루트로닉 황해령 대표이사(54)의 말이다. ‘레이저 세례’는 제품 개발 때는 직접 임상실험 대상이 되고, 판매 땐 자기 몸에 레이저를 쏘며 시연한 일을 일컫는다. 이는 1997년 창업 후 13년 연속 매출 증가 및 11년 연속(2000년부터) 흑자, 피부·성형 레이저 의료기 국내 시장점유율 1위(세계 9위), 1천만불 수출탑 수상(2008년) 국내외 특허기술 79건(등록 및 출원중 포함) 보유 등 루트로닉 성과의 원동력이다. 황 대표의 팔에는 레이저 세례로 생긴 흉터가 남아있다. 그 ‘영광의 상처’ 스토리를 시작한다.
“왠지 모르겠는데 이민 갈 때부터 저는 커서 우리나라로 돌아와서 일하겠다고 생각했어요. 대학 기숙사에도 태극기를 걸어놓고 있었습니다.”
대구 화원 출신인 황해령 대표는 중학생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가 예일대 전자공학과에 입학, 전공을 경제학으로 바꿔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10년 가까이 지나 미국 레이저기기 회사에 재직할 무렵 그렇게 소망했던 귀국 계기가 찾아온다. 한국에 있는 친구 요청으로 미국의 레이저 의료기 시장 조사를 수차례 도와줬더니 아예 같이 수입 판매를 하자는 제안을 받은 것. 그는 1991년부터 의료기 수입업을 시작, 한국과 미국을 오가다 1993년께 본격적으로 국내에 자리를 잡는다.
“우리 의료인들이 앞서가 빨리 신기술을 적용하더군요. 미국 제조사들이 자국 내 승인도 안 된 걸 한국에 팔기도 했어요. 미국 회사서 세계 최초 라식장비를 개발했지만 살 사람이 없어 부도날 지경이었는데 한국에서 10대를 주문 받아 회생한 일화도 있습니다. 그런 걸 보면서 우리 IT(정보기술) 인프라면 직접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어요.”
직접 제작을 결심한 그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발품을 팔며 창업의 기초를 다졌다.
“100군데가 넘는 레이저 의료기 회사를 가봤습니다. 수입을 검토하겠다고 하면 다 보여줍디다. 앞으로 뭘 만들까 고민하면서 닥치는 대로 써 보고 관련 인맥을 만들었죠.”
그렇게 3년가량 준비를 한 황 대표는 1997년 루트로닉의 전신인 맥스엔지니어링을 창업한다. 당시 직원은 6명. 자금이 많은 것도, 박사급 인재가 모인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창업 직후 IMF가 터져 집까지 팔아야 했다. 이어지는 그의 위기 극복 비결이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성공 포인트가 ‘신뢰’예요. 저도 신뢰를 목숨같이 지켰어요. 수입할 때도 어떻게든 약속을 지키려 노력했죠. 그렇게 신뢰를 쌓아놓으니까 사람들이 도와줘요. 부품회사에선 부품 먼저 주고 돈은 나중에 내라고 하고 고객은 돈 먼저 줄 테니 물건은 나중에 주라 하고. 그게 큰 힘이 됐습니다. 인복과 운도 따랐죠.”
이처럼 창업 직후의 어려움을 버텨내며 연구를 거듭했다.
“외국제품은 어떻게 만들었나, 우린 뭘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고민했습니다. 새로운 기술을 보면 국내건 외국이건 아는 사람 통해 모셔 와서 배우고. 방향과 기술 수준만 알고 벌인 모험이었죠. 하지만 그것 자체가 의미가 있었어요. 미국에서 팔 수 있는 기준으로 우리가 우리 손으로 만든다는.”
1999년 첫 제품이 나왔다. 현재 루트로닉 제품 라인업의 모체가 된 문신, 색반변성 치료기 ‘스펙트라(Spectra)-VRM’이 그것. 그해 연말 15대(대당 7000만 원)가 팔리면서 사업이 풀리기 시작했다. 억대 미국 제품에 비해서 이 정도면 쓸 만하다는 평가가 입소문을 탔고 발 빠른 애프터서비스로 고객을 사로잡았다. 이후 의료진과의 소통은 제품을 혁신시켰고 2001년 대만에 첫 수출, 2004년엔 드디어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국산을 외면하던 국내 대학병원들도 제품을 쓰기 시작했다.
“우리가 직접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 아니니까 우리는 임상 연구를 계속해서 이렇게 하니 효과가 있더라고 의료진에게 알려주고 의료진은 우리한테 이런 식으로 해보라, 이런 걸 도입해보라는 등 서로 도왔어요. 아이디어 줘서 우리가 만들고 수출도 하니까 의료진이 기분 좋아 같이 외국 가서 발표하고, 논문도 써주고 해서 널리 알려지고 차별화가 된 거죠.”
이후에도 연구개발(R&D)에 투자를 아끼지 않은 루트로닉은 스펙트라 시리즈와 함께 피부재생 흉터 치료기 ‘모자이크(MOSAIC)’, ‘에코(eCO)2’, 성형용 기기 ‘아큐스컬프(AccuSculpt)’ 등을 히트시키며 꾸준한 성장을 해왔다. 하지만 2009년 매출 370억 원을 기록한 이후 지난해 매출이 9억 원 증가에 그치는 등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세계 경기가 안 좋다는 거죠. 그래도 매출 50%가 줄어든 선진국 선발업체보다는 상황이 낫죠. 게다가 연구개발 비중을 굉장히 늘렸습니다. 경기는 좋아질 거니까요. 현재 서구 선진국 실명질환의 57%를 차지하는 황반변성 치료기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 혁신적인 제품이 출시되고 어느 정도 사용될 때는 우리 회사의 단위가 많이 달라질 겁니다. 장기적으로 글로벌 톱3가 목표입니다.”
황반변성 치료기 상용화 전에는 세계 2번째로 고출력 제모용 기기 출시가 예정돼 있다. 루트로닉으로선 세계 피부용 의료기기 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제모 분야에 처음 진출하는 것이다. 이처럼 루트로닉 앞에는 환하게 비춰가야 할 광활한 미개척지가 남아있다. 루트로닉(Lux+Electronic·빛+전자)이 품고 있는 ‘작지만 강한 빛’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
‘신뢰’ 되로 주고 ‘매출’ 말로 받았다
1. 어려운 분야에 도전하되 눈 감고 하면 안 된다. 충분히 파악하면서 해야 그나마 성공 가능성이 있다.
2.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게 사업이지만 근본적인 신뢰를 지키고 자기의 원심에서 이탈하지 말라.
3. 자기가 만드는 것이 사회적 기여도가 있고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최후의 목적으로 삼고 이를 잊지 말라.
4. 같이 일하는 사람, 자기가 영향을 미치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된다. 이익을 줄 수 있도록 하라. 그 결과로써 성공이 온다.
5. 반짝 아이디어만으로 성공하지 못한다. 끊임없는 노력과 실패가 있어야 성공이 있다. 꾸준히 열심히 노력하면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긍정적 마음은 기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