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간기관에서 주관하는 각종 자격증들.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
언젠가부터 기자의 메일함에는 각종 민간자격증의 전형을 알리는 광고성 스팸메일이 가득 차 있다. 발신처도 불명확하지만 민간자격증의 전형광고를 보고 있자니 누가 봐도 솔깃한 제안이다. 100% 취업에 향후 100년은 끄떡없는 전도유망한 사업이라니 요즘같이 찬바람만 쌩쌩 부는 취업난에 무척이나 고마운 정보가 아닐 수 없다.
기자가 받은 한 민간자격증 전형 광고메일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한 민간기관이 주관하는 이 자격증은 ‘저작권’의 권리취득 및 법률적 대리인을 표방하고 있었다. 올해 처음 시행한다는 이 자격증은 취득만 한다면 70년간 일거리 걱정이 없다는 식의 선정적인 광고를 앞세웠다. 또한 국내 저작권 시장 규모가 세계 9위권에 해당하며 이와 관련한 전문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의무보험을 전문적으로 컨설팅해주는 인력을 양성한다는 한 민간자격증 광고는 취득만 한다면 ‘고소득을 보장한다’는 문구로 사람들을 홀리고 있었다. 국내 의무보험이 적용되는 사업장의 취업에 용이하며 적은 비용으로 창업도 쉽게 할 수 있다는 이점이 눈길을 끌었다. 고소득이 보장되는 취업에 창업까지 할 수 있다니 금상첨화와 같은 기적의 자격증이었다.
또한 이러한 민간자격증 가운데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동교육과 관련된 각종 자격증들이다. 아동상담, 보육, 놀이지도 등 그 종류만 해도 수십 가지다. 아이들에게 놀이를 통해 지도한다는 한 민간자격증 광고는 유치원, 공부방 등 각종 아동시설에 취업할 수 있는 폭이 넓으며 전문가들의 수요가 부족하다는 것을 앞세워 전형을 알리고 있었다.
과연 이렇게 전도유망하다는 민간자격증들의 광고를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을까. 소비자보호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민간자격증 피해사례로 접수된 건은 1786건에 이른다. 2008년 1531건, 2009년 1622건과 비교해 월등히 높아진 수치다.
현재 민간자격증의 등록과 모니터링역할을 하고 있는 ‘한국직업개발원’에 공식 등록된 민간자격증 수는 2000여 개에 이른다. 이 중 국가공인을 받은 자격증은 84개에 불과하다. 고작 4%에 해당하는 수치다. 민간자격증은 말 그대로 민간기관이 자체적으로 검증해 발급하는 자격증이다. 자격기본법 17조 1항은 ‘신설을 금지하는 분야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자율적으로 민간자격증을 신설·운영·관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간기관이 ‘한국직업개발원’에 민간자격증 등록을 신청하면 교과부와 관계중앙부처를 거쳐 손쉽게 신설할 수 있는 구조였다.
마땅한 수익이 없는 민간기관들은 민간자격증 설립을 남발해 수익원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민간기관 대부분이 자격시험을 통한 인력 검증과 양성보다는 형식적인 교육과 수준 이하의 시험출제로 상당수를 합격시켜 발급비를 챙기고 있는 실정이다. 한 기관이 수십 종의 자격증을 만들어 놓고 운영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지난 4월께 한 매체에 의해 소개된 바 있는 한 대학 교수는 레크리에이션 관련 협회를 만들고 웃음치료사, 페이스페인트강사, 유아풍선교육사 등 25종의 자격증을 신설한 뒤 28억 원의 부당수익을 올려 적발되기도 했다. 그는 학생에게 취업스펙을 이유로 자신이 만든 자격증 취득을 권유했다고 한다. 이 중 10억 원을 자신의 주택과 상가구입에 썼다니 말 그대로 자격증 장사로 건물까지 산 셈이다.
따라서 민간자격증의 권위는 갈수록 추락하고 있다. 취업과 고소득 보장은 말뿐이지 정작 사후관리는 뒷전이다. 이렇다 보니 비슷한 종류의 자격증도 중복으로 등록되고 있다. ‘풍선아트’와 관련한 자격증도 전국에 14개나 되며 ‘노인복지’와 관련한 자격증도 13개나 된다. ‘종이접기’와 관련한 자격증은 10개가 넘는다.
민간자격증 공해가 이 지경까지 왔지만 정작 관리당국은 뒷짐만 지고 있다. 지난해 소비자보호원에 접수된 민간자격증 피해사례 중 구제된 건수는 전체의 7%에 불과하다. 기자와 통화한 한국직업개발원 관계자는 “사실상 민간자격증은 신설 자체에 제한이 없을뿐더러 법적으로 제재하는 것도 마땅치 않다. 심지어 한 기관에서 100개 이상 자격증을 등록한 곳도 있다. 다만 민간자격증의 과대광고나 허위광고는 공정거래위원회가 단속하고 있다. 이 역시 광고에 한해서다. 우리도 모니터링을 하고 있지만 규제력은 없다”고 말했다. 사실상 현재로선 민간자격증 공해를 막을 수 있는 방안은 전무한 셈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올해 초, 민간자격증 신설의 자격을 제한하고 향후 법적 제재가 가능한 내용을 담고 있는 ‘자격기본법’의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됐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민간자격증 폐해를 막기 위해 ‘자격증 등록 가이드라인 마련’ ‘국가자격체제 전환’ ‘상시 모니터링’ ‘DB구축’ 등 여러 가지 해결 방안들을 내놓고 있지만 실현 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