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J그룹이 지난 6월 29일 ‘대한통운을 글로벌 7대 전문 물류기업으로 육성 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2000년대 초반 CJ는 미디어부문의 공격적인 투자로 태광그룹과 함께 국내 양대 미디어그룹의 반열에 올랐다. 케이블TV와 홈쇼핑, 영화 및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CJ그룹은 이미 공룡이다. 하지만 미디어부문의 수익성은 아직 투입자본대비 그다지 좋지 않다. 그런데 이 같은 미디어부분의 수익부진을 M&A로 한 번에 만회한다. 바로 2008년 CJ투자증권과 CJ자산운용을 현대중공업에 7000억 원에 매각한 딜(Deal)이다.
2008년 6월 말 CJ투자증권의 자본총계는 2208억 원이고 CJ그룹 지분율이 73%, CJ자산운용 자본총계가 약 500억 원에 CJ그룹 지분율이 100%였던 점을 감안하면 장부가치 약 2000억 원의 자산을 3.5배 값에 팔았던 셈이다. 특히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글로벌증시는 물론 국내 증시까지 폭락하며 증권사와 자산운용사의 가치가 추락하기 직전 계약을 체결한 것은 ‘천우신조’였다.
흥미로운 점은 매각 당시 이재현 회장은 CJ자산운용 지분 7.4%를 갖고 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펀드 열풍이 한창일 때라 자산운용사의 가치가 증권사보다 더 높았다. 당시 CJ자산운용 매각가격은 4000억 원 이상으로 알려져 있다. 이 회장으로서는 280억 원 이상의 현금을 챙길 수 있었던 셈이다.
이후 CJ그룹과 이 회장의 승승장구는 계속된다. 2010년 5월 숙원이었던 삼성생명 상장이 이뤄진다. 삼성생명 2대주주임에도 상장이 되지 않아 현금화할 수 없었던 자산을 현금화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주당 11만 원이라는 파격적인 공모가도 CJ의 기업 가치에 보탬이 됐다.
2010년에는 CJ그룹의 지주사 체제 전환도 마무리되며 지배구조 측면에서도 일신된 모습을 보인다. 2009년 56% 상승한 CJ 주가는 2010년에도 25% 이상 급등한다. 게다가 이 해 말에는 종합편성채널 사업자로 무려 4개 신문사 컨소시엄이 선정되면서 CJ그룹 내 미디어계열사의 가치가 치솟는다. 종편채널과 지상파 채널의 경쟁에서 최후 승자는 콘텐츠 공급자인데, CJ는 이 부문에서 국내 최고 경쟁력을 보유했기 때문이다. 종편 사업자가 선정된 직후인 올 1월에만 CJ 미디어 계열 小(소)지주사격인 CJ E&M 주가가 44% 급등할 정도다.
그러나 올 들어 대한통운 인수전에 뛰어들면서 2008년 이후의 승승장구가 한풀 꺾이는 모습이다. 인수대상인 대한통운 주가는 M&A 추진으로 급등한 반면 인수자금 마련의 핵심인 삼성생명 주가는 부진한 흐름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지난해만 해도 10만 원을 넘지 못했고 한때 5만 원대까지 추락했던 대한통운 주가는 CJ그룹의 인수 추진으로 지난 6월 장중 15만 원을 넘기도 했다. 이 때문에 CJ그룹의 대한통운 인수가격은 주당 무려 21만 5000원에 달한다. CJ가 직접 인수한 대한통운 지분율은 37.62%지만, 지불하기로 한 인수대금은 1조 8450억 원으로 현재 1조 7000억~1조 8000억 원대인 대한통운 전체 시가총액보다 크다. 우연의 일치로 올 6월은 코스피지수가 정점을 기록한 때이기도 하다. CJ로서는 불운인 셈이다.
공동투자자들이 매도청구권(Put-back Option)을 행사할 경우 대한통운 주식 83만 8415주를 추가로 매수하기로 한 것도 적잖은 부담이다. 현재 대한통운의 주당가치는 약 8만 원으로 매도청구가격 21만 5000원보다 13만 원 이상 낮다. 현재가치로 1130억 원이 넘는 평가손실이다.
가장 믿었던 자금원인 삼성생명 주식 매각 결과는 씁쓸하다. CJ제일제당은 지난 18일 삼성생명 보유주식 300만 주를, 20일 2565억 원에 처분한다고 밝혔다. 주당 매각가격은 8만 5500원. 지난 8월 30일 CJ제일제당이 CJ로부터 439만 4340주를 매입할 당시 주당가격은 8만 5000원으로 불과 주당 500원(0.58%) 차익에 불과하다. 각종 거래비용 등을 제외하면 사실상 크게 얻은 게 없는 거래였던 셈이다.
같은 날 100만 주를 처분을 밝힌 CJ오쇼핑도 마찬가지다. 이번 매각으로 CJ그룹에 유입되는 현금은 3420억 원으로, 지난 7월 대한통운 인수계약 당시 금액 1조 8450억 원의 18.54%다.
문제는 이번 지분 매각으로 삼성생명 주가의 추가하락이 예상되고, 이에 따라 CJ제일제당과 CJ오쇼핑이 가진 잔여 지분(각각 139만 4340주, 100만 주)의 매각이 원활치 않을 것이란 점이다. 9만 원대를 지켰던 삼성생명 주가는 18일 8만 원대로 주저앉았는데, 시간외매매시 약 5%의 할인율을 감안하면 자칫 매수가격인 8만 5000원 아래로 주가가 떨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CJ가 삼성생명 보유지분을 CJ제일제당과 CJ오쇼핑에 매각한 이유는 지주회사의 금융회사 주식보유 금지 유예기간이 끝났기 때문이다. 처분 당시 CJ그룹은 “삼성생명 주가가 지나치게 저평가돼 있어 외부에 파는 것보다 계열사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고 이유를 곁들였다.
하지만 결국 주당 500원을 더한 가격에 CJ제일제당과 CJ오쇼핑이 삼성생명 지분을 매각함으로써, 이 같은 설명은 힘을 잃게 됐다. 이보다는 CJ그룹이 삼성생명 주식을 저평가 된 값에 팔 정도로 대한통운 인수자금 마련이 급한 게 아니냐는 시장의 우려만 사게 됐다. CJ로부터 삼성생명 지분을 1700억 원에 매입할 당시 CJ오쇼핑의 보유현금(현금 및 현금성자산+단기금융자산)은 643억 원에 불과했다.
CJ는 아직도 대한통운 인수자금을 다 마련하지 못했다. 240만여 주의 삼성생명 지분을 추가 매각해야 하고, CJ제일제당이 가진 부동산도 매각해야 한다. 하지만 증시 상황이 좋지 않고,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충격으로 부동산 시장도 꽁꽁 얼어있다. 계획한 만큼의 자금을 마련하지 못할 수도 있는 셈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추가로 돈을 빌려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부채비율이 올라가면서 CJ그룹 전반의 신용도에 부담이 될 가능성이 크다.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장손이지만, 삼성의 주력을 물려받지 못한 이재현 회장은 취임 이후 가장 큰 규모인 대한통운 인수를 통해 자존심을 회복하려 하고 있다. 그리고 열쇠는 증시에 달려있다. 삼성생명 주가가 더 올라야, 향후 대한통운 주가가 21만 5000원을 넘어줘야 CJ그룹의 부담은 최소화되면서 이 회장의 꿈이 이뤄질 듯하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