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년간 공직생활을 하다 공기업 CEO로 변신한 박철곤 사장. 직원들과 밤낚시 등산 당구 등 취미를 함께하는 등 신명나는 일터를 만들기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다.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
지난 2009년 1월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차관급)을 끝으로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올 6월 1일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으로 취임한 박철곤 사장(57)의 말이다. 정통 관료에서 공기업 CEO로 변신, 취임 6개월째를 맞이하는 박 사장과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지난 1952년 전북 진안에서 태어난 박철곤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은 가난을 딛고 검정고시로 부산진고에 진학했다. 1981년 한양대 행정학과를 졸업하면서 제25회 행정고시 합격, 총무처 소청심사위원회 행정사무관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그는 30년여 공직생활 중 대부분을 총리실에서 근무했다. ‘전기’와는 인연이 없었던 셈이다.
“한마디로 비전문가라는 거죠? 그러나 그건 우리 사회가 보편적으로 빠져 있는 편견과 착각입니다. 사장이 현장에서 배전반 다루고 검사하고 그러나요? 차관으로서 큰 국가조직과 정책을 관리하는 거나, 전기재해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라는 미션을 부여받은 공사를 바른 방향으로 잘 갈 수 있게 하는 거나 같죠. 행정의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전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지 않습니다. 취임 직후 기술파트 직원들이 ABC를 가르치겠다고 왔는데 영어로 치면 문장을 써버렸어요.”
지난 6월 취임하자마자 박 사장은 눈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내야 했다. 올여름엔 유독 많은 양의 비가 내렸고 그로 인한 피해도 상당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당일복구’ 지침을 내리고 직원들과 함께 침수가옥에서 봉사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수해가 났을 때 침수피해를 입은 이재민들에겐 제일 중요한 건 전기입니다. 임시로 다른 선을 끌어오더라도 당일 복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현장에 직접 가봤는데요, 컴컴한 상황에서 직원들이 연결해 불이 ‘착’ 들어오니까 다들 ‘와!’ 하는 거예요. 이처럼 직접 도와 줄 수 있으니 바로바로 보람을 느낄 수 있죠.”
지난 9월엔 사상 초유의 대규모 정전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직접적 연관은 없지만 그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기를 발전·송전·배전하는 곳은 한국전력과 그 자회사들입니다. 생산자가 안전을 직접 다루면 효율을 중시해 안전이 희생되죠. 그래서 안전부문을 따로 떼어 내 전문화한 곳이 바로 한국전기안전공사입니다. 지난 9월 대규모 정전사태는 생산 공급 과정의 문제로, 우리 공사랑 상관없었습니다. 다만 정전으로 이차적 피해가 올 수 있기 때문에 사태가 끝날 때까지 전국 사업소에 비상대기를 발령했습니다. 당시 직원들이 잘 모르는 시민들로부터 엉뚱하게 욕먹은 사람 많아요. 허허”
박 사장은 취임 이후 줄곧 ‘에너지복지’를 강조해왔다. ‘스피드콜’(1588-7500) 제도가 대표적이다. 스피드콜은 사회적 취약계층의 주거용 전기설비에서 전기사용 중 정전·누전 등의 전기고장에 따른 고충이 발생하면 전기안전공사에서 긴급 출동, 조치해 주는 제도다. 국내에 에너지 복지로 디딤돌을 놓은 그의 눈은 세계로 향한다. 이른바 ‘전기안전 한류’다.
“한국형 전기안전 관리모델을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상품으로 개발해 수출하는 것입니다. 과거 우리는 안전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선진 제도나 기술을 수입해 우리나라 현실에 맞게 활용해왔습니다. 이제는 한국형 모델을 세계에 전파해도 좋은 수준에 이르렀다고 자부합니다.”
이를 위해 그는 최근 중동으로 첫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전기검사 부분도급을 받은 외국 업체가 3개월간 질질 끌어서 애먹고 있는 해외 건설현장에 우리 직원들이 가서 한 달 만에 끝냈습니다. 현장감독이 한국에선 전기 검사한다고 귀찮은 존재인 줄로만 알았지 이런 기술로 자기들과 같이 일할지 몰랐다고 하데요. 다음부터는 컨소시엄으로 같이 하자는 제안도 받았습니다. 이렇게 하면 달러도 벌어들이고 우리 기업들에게도 도움이 될 겁니다. 우리 공사가 가진 기술력을 가지고 해외시장 진출 방안이 무엇일까, 가능성이 있을까 하고 갔는데 대단히 밝다, 할 일이 많다는 걸 확인하고 왔습니다.”
해외에서 인정받으려면 기술력은 필수다. 최근 한국전기안전공사의 기술력을 입증한 것이 바로 지난 7월부터 본격 서비스를 시작한 ‘무정전검사’(POI, Power On Inspection)다. 무정전검사는 운전 중인 전기설비에 대해 정전을 수반하지 않은 상태에서 검사를 하는 것. 세계 최초의 기술이다.
“제철소 등 일부 대기업들의 경우 24시간 공장이 가동되고 있어 정전상태에서 진행되는 검사를 받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공사는 고객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2004년부터 무정전상태 검사기법을 연구해왔고 2005년부터 시험, 운용해 왔습니다. 그 결과 국가 주요산업시설 100호를 대상으로 무정전검사를 실시했을 경우 공장 가동 중단에서 오는 연간 정전비용 5340억 원의 절감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고객들의 반응도 폭발적입니다.”
박 사장은 지난 9월 취임 100일을 맞아 한국전기안전공사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전기안전 선도기업, 행복한 고객, 신명나는 일터’다. 신명나는 일터를 위해 그는 몸을 던졌다. 공직생활 시절 부하직원과 함께하기 위해 당구와 볼링도 익힌 그다.
“와서 보니 직원들이 경직돼 있더라고요. 그래서 직원들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공직에 있을 때보다 더합니다. 밤낚시 등산 당구 호프데이…. 틈나는 대로 둘러앉아 밥 먹고 얘기하는데 말 안하면 밥값 내라고 해요. 같이 커피도 한잔하고. 다음주에는 사옥 옆 가을이 깊어가는 생태공원에 여직원회하고 점심 후 산책할 예정입니다.”
박 사장은 암송하는 시가 수백 편이 넘는다. 밤낚시에 갔을 때 이를 안 직원들이 모여들어 시를 낭송해달라고 해 낚시도 제대로 못했다고 한다. 그에게 현재 심정을 표현할 수 있는 시 한 수를 부탁했다. 그가 고른 것은 윤동주의 ‘서시’였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그의 앞에 새로 펼쳐진 ‘공사 CEO의 길’에 대한 그의 각오인 셈이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