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 스마트 냉장고(왼쪽)와 LG전자 스마트 냉장고. |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냉장고 전쟁 1차전은 ‘국내 최대 용량’ 타이틀을 두고 벌어졌다. 그 시작은 지난해 3월 LG가 800ℓ(리터)급 양문형 냉장고를 내놓으면서부터다. 그해 9월 삼성전자는 ‘지펠 그랑데 스타일’ 시리즈를 출시, 820~840리터 냉장고를 선보이며 경쟁이 심화됐다.
올 초 삼성전자는 LG에 다시 타이틀을 내줬다. 지난 3월 LG전자가 삼성보다 10리터 용량을 늘린 850리터짜리 양문형 냉장고를 출시한 것. 당시만 해도 삼성전자는 더 이상 용량 확대에 집착하지 않는 듯 보였다. 대신 자사 냉장고의 수납공간의 효율화 등을 앞세워 마케팅만 강화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던 삼성은 지난 9월 860리터급을 내놓으며 ‘국내 최대 용량’ 타이틀을 다시 가져갔다. 삼성의 초대형 냉장고 등장을 두고 업계에서는 “냉장고 시장의 대형화가 지속되고 LG전자의 대용량 냉장고가 시장의 호평을 받으면서 자극을 받았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도 두 기업의 기싸움이 치열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10월 12~15일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2011 전자산업대전’에서 처음으로 860리터급 냉장고를 선보였다. 그런데 냉장고 외관에는 860리터를 뜻하는 ‘그랑데 860’으로 소개됐지만 냉장고 안 제품 규격표에는 820리터나 840리터로 붙어 있었다.
이를 두고 “삼성전자가 LG전자를 따라 잡기 위해 외형만 바꾸는 속임수를 썼다”는 말이 나왔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제품을 완성했는데 속임수를 쓸 이유가 없지 않느냐. 라벨이 잘못 붙어있었던 것뿐”이라며 “엉뚱한 루머가 만들어진 이유를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최대 용량’ 바람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자 이번에는 ‘스마트 냉장고’가 등장, 2차전이 시작됐다. ‘스마트 냉장고’는 등장부터 시끄러웠다. 지난 10월 3일 LG전자는 홈플러스와 손잡고 냉장고 화면상의 버튼을 눌러 상품을 주문하는 ‘웹 오더링 시스템’을 적용한 스마트 냉장고를 먼저 선보였다.
문제는 삼성도 이틀 뒤인 5일 이마트와 1년간 공동연구해 만든 ‘쇼핑형 스마트 냉장고’를 선보이기로 예고한 상황이었다는 것. 삼성전자 관계자는 “우리가 신기술을 발표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LG전자가 다급했나보다”며 “제대로 된 준비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스마트 냉장고’를 발표한 꼴이다. 전형적인 김 빼기 전략이다”고 비난했다.
이에 LG전자도 발끈했다. LG전자 관계자는 “우리는 이미 4월부터 판매를 하던 대용량 냉장고에 업그레이드를 한 것뿐이다. 냉장고 시연 당시에도 ‘웹 오더링 시스템’을 곧 적용시킬 것이란 발표를 했었다. 쫓긴 쪽은 우리가 아니라 삼성전자였다”고 말했다.
발표 시기를 두고 으르렁거리던 두 회사는 서로의 제품을 끌어내리기에도 거침이 없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스마트 냉장고’는 몇 가지 차이가 있는데 이를 두고 양사는 “우리 제품이 더 발전된 것이고 상대방은 뒤처졌다”고 일갈한다.
우선 LG전자의 ‘스마트 냉장고’는 양문형으로 자사 최대 용량인 850리터를 자랑한다. 제품 전면 LCD는 10.1인치 정전식 터치를 사용하며 360만 원대에 판매하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의 ‘스마트 냉장고’는 상단에 냉장고가 있고 하단에는 서랍 형식의 냉동고가 있는 프렌치 도어형 제품으로 726리터다. LCD는 8인치 감압식 터치를 사용했으며 가격은 450만 원 수준이다.
LG전자 관계자는 “크기 가격 디스플레이 등 모든 것을 따져 봐도 우리 상품이 더 뛰어나다. 첨단기술로 무장한 우리 제품을 본 삼성전자가 마음이 급했는지 미국에서 팔던 제품을 그대로 들여왔다”며 “우리가 디지털이라면 삼성전자 제품은 아날로그식”이라고 표현했다.
날이 갈수록 더욱 치열해지는 두 기업의 신경전에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의연구소 관계자는 “삼성·LG전자의 경쟁구도 속에서 기술이 빨리 성장했지만 두 기업이 공정한 경쟁을 펼쳤을 때 이런 긍정적인 효과가 지속될 수 있다”면서 “올해처럼 지나치게 서로를 의식하는 모습은 양사 모두 이미지 손실만 가져올 뿐”이라고 밝혔다.
경희대 마케팅전공 이훈영 교수는 “1, 2위 기업의 네거티브 전략은 의도치 않게 다른 경쟁 기업에게 기회를 줄 수도 있다. 그게 국내 타 기업이 될 수도 있고 해외기업이 될 수도 있다”면서 “선두기업들이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타 기업을 끌어내리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최고의 경쟁자로 생각하고 발전하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다른 통계치 들고 “우리가 1위”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세탁기 시장에서도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두 회사는 더 크고 빠른 신제품을 쉼 없이 출시했다. 대용량 경쟁에서는 국내 최대인 ‘19㎏ 버블샷 드럼세탁기’를 출시한 삼성전자가 앞섰다. 하지만 속도에서는 2분 차이로 LG전자가 더 빠르다. LG전자는 지난 7월 세탁물 1㎏를 최단 시간인 17분 만에 처리할 수 있는 드럼세탁기 ‘트롬’을 출시해 ‘속도 1위’ 타이틀을 차지했다.
‘스마트 세탁기’ 시장에서도 두 회사는 첨단기능을 앞세워 경쟁 중이다. 삼성전자는 스마트그리드(지능형 전력망) 기술을 이용해 저전력 시간대를 찾아 작동한다. 센서를 통해 옷에 묻은 오염부위를 집중 세탁하는 기능도 선보였다. 먼저 스마트 세탁기를 선보였던 LG전자는 보다 똑똑해진 제품으로 응수했다. 올 초에는 가전업계 최초로 스마트 세탁기 어플리케이션을 출시했다.
과열경쟁이 계속되자 양사는 서로 다른 통계자료를 근거로 “우리가 업계 1위”라고 싸우는 웃지 못 할 상황도 연출됐다. 지난 3월 23일 삼성전자는 세탁기 신제품을 출시하면서 “작년 드럼 세탁기 국내 1위를 기반 삼아 올해는 전체 세탁기 시장 1위를 달성하겠다”며 “미국시장에서도 작년 3분기부터 LG전자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고 발표해 논란이 시작됐다. 이 소식을 들은 LG전자는 “작년 한국과 미국 드럼 세탁기 시장 1위는 우리가 확실하다”며 즉각 반박에 나섰다. 이어 두 회사 모두 “상대방의 통계치는 신뢰하기 힘든 면이 있다”고 덧붙이며 신경전을 이어가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