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야 할 이미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거나, ‘난 이런 건 못 해’라는 건 이제 없어요. 나이가 한 살씩 먹어가면서 조금씩 그런 마음이 변해 갔는데 특히 올해는 나이 앞자리가 바뀌니까 더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런 거 할 수도 있지!’ 이런 마인드(웃음). 사실 제가 서른 살 땐 지금보다 겁이 많았거든요. ‘이런 거 해도 괜찮을까?’ 그런 두려움이 지금은 완전히 없어진 것 같아요. 그땐 뭐가 그렇게 겁이 났었을까요? 그때도 이런 걸 해봐도 좋았을 텐데 말이죠.”


캐릭터에 대한 욕심은 ‘개그 욕심’으로 이어졌다. 언뜻 보기에 차갑고 완벽해 보이는 외모와 동시에 허술해 보이는 일면도 함께 보여줘야 하다 보니 그 중간에서 중심을 잡는 것이 가장 어려운 지점이었다. 그럼에도 매 신마다 ‘어떻게 하면 더 웃기게 찍을 수 있을까’를 혼자 고민했다고 하니 이쯤 되면 코믹 연기에 대한 박해진의 열정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진짜 매 신마다 개그 욕심을 냈던 것 같아요(웃음). 특히 귀신들과 나오는 장면은 따로 콘티가 있는 게 아니라 저희끼리 바로바로 현장에서 만들어야 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애드리브도 많았고, 또 차차웅이 마술을 하는 신은 웃겨야만 하잖아요. 사실 찍을 땐 현타(현자 타임, 자괴감을 재미있게 표현한 신조어)가 와요. 아무 것도 없는 데서 쇼하고, 멋있는 척 카드 마술을 하다가 방귀에 불이 붙는다거나 하는 신을 찍으면(웃음). 그래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아예 그냥 웃기는 데에만 집중해서 찍으려고 노력했죠.”
고락을 함께하며 회를 거듭할수록 짙어지는 고슬해와의 로맨스 기류도 코믹 연기만큼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둘의 전생 서사가 펼쳐질 때 박해진의 전매특허인 정극 연기가 빛을 발하며 그의 캐릭터 연구가 단순히 코믹에만 집중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줬다. 그렇게 시청자들의 마음까지 뭉클하게 만든 두 사람이었지만 정작 박해진은 “노력했는데 로맨틱하게 안 보이면 어떡하나 전전긍긍했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상대역인 진기주와 너무 친해져서 로맨틱한 남녀보단 ‘전우’에 가까운 사이가 되다 보니 설렘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이었다.
“서로 설레고 손도 못 잡아야 하는 설정인데 저희가 너무 친해서 스킨십도 자연스럽다 보니 걱정됐죠(웃음). 사실 이렇게 고생을 같이 하다 보면 안 친해질 수가 없거든요. 촬영 들어가고 초반에 제일 고생스러웠던 사극 장면을 한 달 정도 같이 찍어서 더 빨리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진)기주 씨는 저보고 늙은이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저희 나이 차가 여섯 살인데 기주 씨가 워낙 동안이라 가지고….”

“지금 생각하면 40대인 실제 저의 감수성이 담긴 캐릭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이제까지는 제 세대를 거슬러서, 제 나이를 역행하는 캐릭터를 많이 해 왔으니까요. 그것보다는 제 안의 40대 박해진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꺼내 보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특히 이번에 사극 연기를 짧게나마 해보면서 정말 사극 배우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사극이 주는 분명한 매력을 느끼면서 좋은 사극이 있다면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요. 요즘 퓨전 사극은 로맨틱한 소재를 많이 쓰는데 그런 것도 좋겠지만 역사를 고증해서 할 수 있는 정통 사극을 해 보고 싶어요. 제 나이로 퓨전 사극은 좀 안 될 것 같기도 하고(웃음).”
올해 데뷔 16년 차를 맞으면서 동시에 한국 나이로 앞자리 숫자가 바뀐 박해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연기에 더 이상 ‘리미트’를 걸고 싶지 않다는 말을 강조했다. “박해진이 그 얼굴로 이런 연기를 해?”라는 놀라움보단 “박해진이니까 이런 연기도 할 수 있겠다”는 수긍과 인정을 받고 싶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꼰대인턴’ 이후로 작품을 보는 시야가 더욱 넓어졌다는 박해진은 그 목표를 위해서라도 몸 사리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캐릭터의 방향에 있어서도 멋짐이란 수식어를 벗어나고 싶어요. 16년간 연기를 해 왔는데 아직까지도 연기보다는 외모로 많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더 멋지고 잘난 친구가 많은데 아직도 연기나 이런 부분들도 뚜렷하게 인정을 받지 못하는구나, 계속 외모로만 나오는구나 그런 생각을 스스로 하게 되더라고요. 언젠가는 외모보단 연기력으로 이름이 불리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박해진이란 배우를 떠올렸을 때 1번이 연기였으면 좋겠습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