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무 LG그룹 회장 연합뉴스 |
지난 3일 주식시장에서는 개장 직후부터 큰 소동이 일어났다. ‘LG전자가 1조 원대의 유상증자를 실시한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개장 직후부터 하락으로 출발한 LG전자 주가는 이날 13.78% 폭락한 6만 1600원에 마감했다.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대표종목 중 하나인 LG전자가 하루 동안 빠진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수치였다.
<월스트리트저널>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은 LG전자의 유증설을 보도했으며 유가증권시장본부는 LG전자에 유상증자설에 대한 조회공시를 요구했다. 하루 종일 아무 말 없던 LG전자는 장 종료 후 결국 1조 621억 원에 달하는 유상증자를 발표했다. 2000년 상환우선주(일정 기간 동안 우선주 성격을 띠며 기간이 만료되면 이를 발행한 회사에서 되사도록 한 주식) 발행 이후 11년 만의 주식 발행이다.
시장은 충격으로 휩싸였다. 국내외 증권사들은 “뒤통수를 심하게 한 방 맞은 느낌”(권성률 동부증권 연구원), “이번 증자는 경영진의 투자 실패 책임을 주주에게 떠넘기는 위험한 선택”(전성훈 하나대투증권 연구원), “내년 투자를 위한 충분한 현금이 부족하다는 의미이며 단기적으로 주식가치 희석을 가져올 것”(노무라증권)이라며 혹평했다.
투자자들도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투자자는 “LG전자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LG전자 같은 대표적인 기업이 1조 원 규모의 유증을 할 줄은 몰랐다”며 망연자실했다. 또 다른 투자자는 “주가가 5만 원대까지 떨어졌다가 최근 8만 원을 넘기면서 기대가 컸다”며 “유증 때문에 주가가 올랐던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한숨을 쉬었다. 주식시장에서는 유증 직전 고의로 주가를 띄운다는 속설이 있다.
LG전자를 얘기하는 게시판에는 평소 올라오던 글보다 수십 배 더 많은 글이 올라오고 있다. 투자자들의 아우성과 험한 말이 대부분이다. 삼성전자 주가 100만 원과 비교하며 한숨과 탄식을 내뱉기도 한다. 코스피지수가 58.45포인트(3.13%) 폭등한 지난 4일 삼성전자 주가는 100만 5000원으로 마감해 주가 100만 원 시대를 다시 열었다. 반면 유증 결정으로 전날 13.78% 폭락한 LG전자는 4일 코스피 폭등의 영향으로 장 초반 1% 넘게 상승했지만 결국 500원 하락한 6만 1100원으로 마감해 극명하게 대비됐다. 유증 충격을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LG전자의 위기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해부터 떠들썩했다. 스마트폰에 제때 대응하지 못한 결과라는 것이 중론이다. 대표이사 자리도 남용 전 부회장에서 구본무 그룹 회장의 동생 구본준 부회장으로 교체됐다. 오너 일가의 힘으로 위기상황을 돌파하겠다는 의지였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잠시 반짝하던 LG전자 실적은 다시 적자 전환했다. ‘옵티머스’로 대표되는 스마트폰 기종을 공격적으로 출시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증권가 일각에서는 ‘LG전자가 스마트폰 사업을 빨리 접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돌았다.
LG전자가 유증을 통해 얻는 1조 원을 어디에 쓰려는지도 관심거리다. LG전자는 “시설자금과 운영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라며 “유동성 위기 때문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오죽 급하면 유증을 실시하겠냐’고 의견도 존재한다. 연간 수조 원을 투자하는 글로벌 기업에서 ‘고작’ 1조 원이 필요해 시장과 투자자들의 비판을 무릅쓰고 유증을 한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회사채를 발행한다든지 금융권에서 차입한다든지 다른 방법으로도 LG전자라면 1조 원은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LG전자는 유증을 결정했다. 그만큼 사정이 좋지 않다는 방증이다.
지난달부터 3대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 S&P, 피치는 모두 LG전자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이는 곧 회사채 발행과 금융권 차입이 이전보다 어려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LG전자는 올해 이미 1조 3000억 원 정도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간편한’ 방식은 유증밖에 없는 셈이다. 연초 대비 주가가 크게 하락했음에도 유증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이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현재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LG전자의 향후 전망에 뭐 하나 똑 부러지게 좋을 것이라는 사업 부문이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4세대(G) LTE폰에 대해서만 일부 긍정적인 의견이 나오고 있을 뿐이다.
재계 관계자는 “현재 매우 안 좋아졌다는 증거”라며 “본격적인 위기는 이제부터”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래도 해오던 게 있으니 잘 이겨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