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 마음 농사 중입니다. 직접 해보시면 흙에 발을 딛고 또 햇볕을 쬐면서 하는 정직한 노동이 얼마나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지 실감하게 될 거예요."
한때 대도시에 살면서 여러 직업을 기웃거렸던 전희식 씨(65). 28년 전 돌연 귀농을 선택한 그는 '자연농사'를 시작했다. '만물을 스승으로 모시고 산다'는 그는 오직 자신의 힘만으로 농사를 짓는다.
기계로 땅을 갈지 않고 필요한 농기구를 직접 만들어서 쓰며 맨손과 맨발로 흙을 딛으며 농사를 짓는다. 누군가는 '고단해서 몸이 배겨나냐?'고 묻지만 전희식 씨는 자연농사를 고집한다.
"무위이화(無爲而化)라고 하죠. 자연은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이루어지거든요."
화학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는 농부의 밭에서는 작물들이 시간과 환경이 허락하는 만큼 순리대로 자란다. 전희식 씨는 말한다. 농부가 할 일은 사랑 어린 관찰자가 되어 작물이 자랄 수 있도록 거들어 주는 것뿐이라고.
전희식 씨는 지금까지 열 권 남짓한 책을 낸 글 쓰는 농부이다. 그가 글을 쓰게 된 계기는 7년 전 작고하신 어머니였다. 전북 장수군 덕유산 자락 해발 600미터 고지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도 자연 속에서 어머니와 함께 살기 위해서였다.
일찌감치 부친을 여의고 어린 7남매를 홀로 키우며 고달픈 인생을 살아오신 어머니는 여든둘에 노인성 치매를 얻으셨다.
전희식 씨는 어머니를 모시고자 황토와 나무로 직접 집을 지었다. 그 집에서 어머니는 자존감을 잃은 치매 노인이 아니라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여생을 살다 7년 전 작고하셨다.
모친은 가고 없지만 농부의 마음 밭엔 여전히 어머니가 나와 앉아 풀을 매고 계신다. 그래서 지금의 산골생활이 즐겁다.
전희식 씨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차를 팔고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삶의 속도는 느려졌지만, 차를 타고 다닐 때는 보지 못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고장 난 세탁기도 10년 전 버렸다.
손빨래를 할 때마다 닳아서 해진 자국을 보며 자신의 습관을 돌아보게 됐고 바느질을 하면서 뜯어진 옷과 함께 자신의 마음도 매만지게 됐다. 느리게 걸으며 세상을 다른 각도로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자신에 대한 성찰도 더욱 깊어졌다고 한다.
작물도 대량 생산, 대량 수확하는 시대지만 전희식 씨는 400여 평 땅에 농사를 짓고 작물을 심을 때도 시차를 두고 조금씩 심는다. 기계를 안 쓰고 오롯이 혼자만의 힘으로 일구다 보니 농사 규모가 작을 수밖에 없고 조금씩 시차를 두고서 심어야 수확할 때도 한결 수월하다.
퇴비도 필요할 때만 적당히 주고 뿌리가 내리기 전에는 지지대를 묶어주지도 않는 농부가 매정해 보일 수도 있지만 전희식 씨는 작물이 제힘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다린다.
근성이 튼튼한 작물이 건강하게 자라고 작지만 단단한 결실을 맺듯이 전희식 씨는 사람도 마음의 뿌리가 튼튼해야 어떤 흔들림도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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