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월 27일 열린 ‘한이음 일자리 엑스포 2011’에 참가한 한 여성이 구인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
지난 9일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10월 취업자수가 크게 늘어난 것에 기쁨을 표하며 한 말이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적어도 현 통계수치로는 박 장관의 말이 맞다. 통계청에 따르면 10월 취업자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50만 1000명 늘어났다. 취업자수가 50만 명 이상 증가한 것은 지난 2010년 5월(58만 6000명)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취업자수가 증가하면서 실업률도 뚝 떨어졌다. 10월 실업률은 2.9%로,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 0.4%포인트나 하락했다. 실업률이 3%대 아래로 내려온 것도 지난 2002년 11월(2.9%) 이래 9년 만이다. 실업률이 2.9%라는 것은 완전 고용 상태에서나 가능한 수치다.
문제는 이처럼 취업자가 늘고 실업률이 떨어졌다는데도 시민들이 느끼는 체감 고용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을 졸업한 자녀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고, 50대 가장이 퇴직해 집에서 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고용지표가 체감 고용과 동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 실업자를 규정하는 데 허점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우리나라는 직장을 찾다 찾다 포기한 실망실업자를 실업자로 구분하지 않고 ‘비경제활동인구’에 포함시킨다. 공무원 시험이나 기업 공채를 준비하는 대졸자들도 여기에 해당한다. 즉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된다. 취업자와 구직활동 중인 실업자가 ‘경제활동인구’에 들어가고, 실업률은 ‘경제활동인구 중 실업자의 비율’을 의미한다. 문제는 실망실업자나 취업준비생 등 누가 보기에도 명백한 실업자들을 실업자로 분류하지 않다보니 지표와 현실이 달라지는 셈이다.
여기에 우리나라는 서민들이 체감하는 고용지표를 만드는 데도 인색하다. 미국의 경우 실업률을 U1~U6, 6가지로 나눠 매달 조사·발표하고 있다. U1은 15주 이상 장기 실업자, U2는 비자발적 전직실업자, U3는 4주 실업자(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실업자 통계), U4(U3+구직단념자), U5(U4+1년간 구직활동을 하지 않은 자), U6(U5+35시간 미만 취업자)를 의미한다. 이 중 미국 시민들이 체감하는 실업률은 ‘U6’다. 캐나다도 4주 실업자에 구직단념자, 취업대기자, 불완전취업자 등을 포함한 실업률 보조지표를 발표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한때 이처럼 체감할 수 있는 ‘취업애로계층’이라는 지표를 발표한 적이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발생한 이후 고용 현장과 지표가 따로 놀자 이를 보완하기 위해 만들었다. 그러나 최근 경제 사정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자 취업애로계층 발표를 슬그머니 없던 일로 만들어버렸다. 취업애로계층은 비경제활동인구 중 취업의사와 취업능력이 있는 사람을 합치고, 주당 36시간 미만 근로자 중 추가 취업을 희망하는 사람을 더한 개념이다.
이는 통계 원자료를 이용해 만들기 때문에 공개된 통계청 자료만 접근가능한 일반인들은 계산해낼 수가 없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부 언론에서는 ‘사실상 실업자’라는 지표를 사용한다. 사실상 실업자는 공식 실업자에 비경제활동인구 중 취업준비자와 ‘쉬었음’ 응답자, 구직단념자를 합하고 취업자 중 아르바이트에 불과한 주당 1∼17시간 취업자를 더한 수치다. 이는 미국이나 캐나다가 보조로 사용하고 있는 지표를 최대한 우리 식으로 변형한 것이다.
이를 적용하면 10월 사실상 실업자는 399만 5000명에 달한다. 이는 정부가 발표한 실업자 73만 6000명보다 5배 이상 많은 것이다. 특히 10월 실업자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9만 6000명 감소한 것과 달리 사실상 실업자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9000명 늘어났다.
사실상 실업자 가운데 구직활동을 하지 않고 쉬고 있는 이들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12만 4000명이나 늘어났고,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영위하는 이들은 7만 4000명 증가했다. 정부가 ‘취업자가 늘고 실업자가 줄었다’고 외치고 있지만 실제로는 일자리 구하기가 어렵자 구직을 포기하고 놀거나, 단순 아르바이트를 일자리로 택한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비경제활동인구나 취업자로 분류되기 때문에 실업률 하락과 취업자 증가로 계산된다.
정치권에서도 정부의 고용지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김성곤 민주당 의원은 통계청 자료를 토대로 공식실업자에 불완전취업자(36시간 미만 취업자 중 추가취업희망자), 취업준비자, 구직단념자를 합해 실질 실업률을 계산했다. 김 의원의 계산방식에 따르면 10월 실업자수는 177만 1000명이다. 언론에서 사용하는 사실상 실업자의 절반 수준이지만 정부가 발표하는 실업자수보다는 2배 이상 많다. 김 의원의 계산에 따른 실질 실업률도 7.0%로 정부가 발표한 실업률 2.9%보다 2배 이상 높다.
이처럼 고용을 둘러싼 경제지표와 체감지표간 차이의 문제점은 국책연구기관인 KDI(한국개발연구원)에서도 지적한 바 있다. KDI는 10월 26일 ‘설문조사에 따른 실업측정치 비교’ 보고서를 내놓았다. KDI는 “ILO(국제노동기구) 표준설문방식을 대안으로 실업률을 조사한 결과 잠재실업은 21.2%로 현행 방식(4.8%)에 비해 4배 이상의 차이를 보였다”고 밝혔다. 실업률도 현행 방식은 4.0%인데 반해 대안방식은 5.4%였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차이는 현재 설문방식으로 실업자가 되기 위해서는 △지난주 1시간 이상 일을 하지 않았을 것 △지난 4주 내 적극적 구직활동을 했을 것 △지난주 일이 제시됐다면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세 가지 요건을 충족시켜야하기 때문이다. 이렇다보니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고시학원이나 직업훈련기관에 다니는 것 등은 구직활동으로 보지 않아서 상당수의 취업준비자가 실업자가 아닌 비경제활동인구로 파악된다.
물론 이러한 지적을 통계청이 수긍하지는 않는다. 통계청은 KDI의 보고서가 문제되자 바로 해명자료를 내고 “KDI가 보고서에서 언급한 잠재실업률은 연구자가 임의로 정의한 개념이고 뚜렷한 기준 없이 선정한 표본을 대상으로 작성했다”면서 “KDI의 조사방식은 ILO에서 제시하는 국제기준에도 맞지 않고, 실업률 등 국가 공식통계의 신뢰성 훼손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반박했다.
정부에서 이러한 지표와 체감 간 차이를 줄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향후 정치일정을 감안해 미적거리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는 2013년 ILO가 주최하는 국제노동통계인회의에서 잠재 실업자 산정 기준 논의가 마무리되면 실업 보조 지표를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정부의 한 관계자는 “더 큰 문제는 정부가 ‘성장률이 높다. 실업률이 낮다’고 발표할 때마다 서민들이 정부에 등을 돌린다는 점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지표를 발표하는 것은 정부가 ‘봐라. 경제가 좋지 않느냐’고 강요하는 것과 같다”면서 “정부가 서민들의 생활에 관심이 없다는 불만만 키우고, 정책에 대한 신뢰만 잃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서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