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천 경마공원 마방에서 마필관리사들이 말들을 돌보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지난 11월 9일 경주의 한 호텔에서 부산경남경마공원(부경) 마필관리사로 일하던 박 아무개 씨(34)가 목을 매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박 씨는 후임 관리사를 폭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은 뒤 잠적한 상태였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지난 7년간 마필관리사로서의 고단한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조교사협회와 시행체인 KRA(한국마사회)는 연말까지 임금 투명성 확보와 함께 처우개선을 약속했다. “새우잡이 배를 타는 게 낫다”고 항변하고 있는 마필관리사들의 실태를 들여다봤다.
조교보인 박 씨가 속한 조의 일반 관리사는 두 명뿐이었다. 조교승인 관리사가 공석이어서 박 씨까지 포함해 3명이 17마리의 말을 관리했다. 시행체인 마사회가 관리사들의 상금을 책정하는 기준은 1인당 3.1두로 현실과는 차이가 있다. 일본은 1인 2두 관리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부경의 경우 당초 계획은 910마리를 290명이 관리하는 것이었지만 현재 인원은 220명 수준. 이들은 출주하지 않고 쉬는 말까지 포함해 1400마리를 돌보고 있다.
전직 마필관리사 한 아무개 씨는 “2005년에 개장한 부경의 경우 서울에서 부푼 꿈을 안고 내려간 관리사들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속했던 조가 항상 4~5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최고 많이 받았던 때가 공제금액 포함 210만 원이었다”며 언론에서 말하는 억대 연봉은 일부 조교사의 이야기이지 자신들은 무관하다고 밝혔다.
마필관리사는 일반 관리사를 시작으로 조교승인과 조교보를 거친다. 이들 중 일부는 마필관리사를 지휘하는 조교사가 되기도 하지만 이때 마사회의 면허시험 및 면접을 거쳐야 한다.
마필관리사들의 하루 일과는 새벽 5시에 시작해 오후 3시쯤 끝난다. 경마장 주로 개방은 5시 30분이지만 대부분 30분에서 1시간 일찍 나와 말 상태를 확인하고 말간을 청소해야 한다. 노동시간만 연간 3000시간이 훌쩍 넘는다. 한 달 당직은 평균 3회로 자살한 박 씨의 경우는 12번까지 서기도 했다고 한다. 가장 힘들고 또 많이 다치는 일은 장제일(말에 편자를 대는 일)이다. 500㎏에 육박하는 말들이 발버둥치는 걸 버텨내야 한다. 과천 서울경마장에서 만난 한 관리사는 “관리사 일을 시작한 지 1달 만에 장제를 보조하다 말 뒷발에 채여 두 달간 병원 신세를 졌다”고 말했다.
마필관리사들은 자신들이 받는 돈을 임금이 아닌 상금이라고 부른다. 상위 10개 조가 상금의 60%, 나머지 하위 조가 40%를 가진다. 쉽게 말해 경주에서 이겨야 돈을 벌 수 있다. 전국경마장마필관리사노동조합 문수열 부산경남지부장은 “경쟁성 상금이 10%인 서울에 비해 부산은 30~40% 가까이 된다. 그나마 비경쟁성 상금인 위탁관리비 같은 경우 8년간 최저임금 수준으로 받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경마공원의 경우 1년 동안 책정된 상금 가운데 마주가 78%, 조교사와 기수 15%, 일반 관리사 7%가량을 나누도록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부경의 경우에는 조교사가 임의대로 나눌 수 있다. 조교사가 마필관리사를 개별적으로 고용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제한된 상금을 갖고 서로 뺏고 뺏기다 보니 다른 마방 사람들과 친분을 쌓기도 힘들다. 자살한 박 씨의 경우에도 유서를 통해 “조교사가 다른 마방에 갈 수 없게 한다. 교도소에서 사역하는 기분”이라고 한탄했다. 윤창수 노조위원장 역시 “협회 체제 하에 단체 고용되는 서울과 달리 부경은 마주의 위탁을 받는 조교사들이 관리사를 개별 고용하는 체제이기 때문에 문제가 빈발한다”고 부연했다.
마필관리사의 열악한 환경은 2007년 경마 중단 사태 때 잠깐 알려지기도 했다. 윤 위원장은 11월 16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과거를 회상하며 “과거 단일마주제 때는 조교사들이 관리사들을 금요일부터 일요일, 경마 경기가 끝날 때까지 3일간 감금시키기도 했다. 사전에 정보가 새 나가는 것을 차단시키기 위해 관리사들을 통제한 것이다. 그야말로 인권 유린이다”고 주장했다. 단일마주제는 1993년 개인마주제로 바뀌었다.
이에 대해 KRA 홍보팀의 한 관계자는 “현재 한국 경마 경기는 사행 도박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고 스포츠의 한 분야로 자리잡혀가고 있다. 각 조 마주들은 자신들이 구단주라 생각하며 팀원을 관리하고 있다. 성적이 안 나오는 팀원들에게 똑같이 돈을 준다면 실력 향상과 함께 경마 산업이 활성화되지 못했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부경의 경우 마필관계자들 간에 우승 열망이 서울보다 높아 경기력이 월등히 앞선다. 이에 따라 관객들은 더욱 더 박진감 넘치는 경마를 구경할 수 있는 게 사실이다”고 밝혔다.
실제로 서울과 부경의 말들은 매년 교류시합을 가지는데 2011년 오픈경주에서 부경과 서울의 전적은 6:1로 부경 출신 말들이 압도적인 성적을 냈다. 영화 <챔프>의 실제 주인공인 ‘절름발이 루나’의 경우도 부경에서 조련한 명마다. 마사회는 이 모두가 선진화된 시스템을 도입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부경 홍보팀 홍기복 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언론에서 일부 사건을 부각시키는 면이 안타깝다. 박 씨의 경우에도 후임을 폭행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던 중이라 반드시 열악한 환경 때문만이라고 할 순 없다”고 조심스레 입장을 밝혔다. 그는 또 “부경은 서울보다 선진화된 시스템이라 자부하지만 조교사들이 상금을 임의대로 나누는 문제 등은 투명하게 고쳐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서울경마공원의 한 관리사는 “부경 관리사가 열심히 일하는 것은 결국 고용 착취 구조가 만들어졌기 때문일 뿐이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우리는 엄연한 근로소득자다. 근로기준법에 의해 일한 만큼 받고 싶다는 것이 잘못된 것인가. 경마 선진화 시스템과는 별개로 상위 말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임금을 싹쓸이하게 만들려는 발상은 잘못됐다”고 항변했다.
경마 선진화를 위해 경쟁을 강화하려는 마사회 측과 현실을 헤아려 달라고 읍소하는 마필관리사들의 평행선 레이스는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