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 허용이 개인투자자와 관계 있을 수밖에 없는 큰 이유는 주가가 하락해야 돈을 버는 구조라는 점, 그리고 공매도를 이용하는 헤지펀드 투자자들은 거액자산가나 기관투자자 등 한마디로 부자라는 데 있다. 부자들의 돈벌이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개인들이 피해를 볼 수 있는 셈이다.
국내에 나올 헤지펀드는 롱/쇼트 펀드가 주류가 될 것이 확실시된다. 롱/쇼트 펀드란 주식을 매수하거나 공매도 해서 수익을 내는 전략으로 돈을 버는 펀드다. 롱(Long)이란 주식을 매수한다는 뜻이고, 쇼트(Short)란 주식을 공매도한다는 뜻이다. 롱은 주가가 올라야, 쇼트는 주가가 내려야 수익이 난다. 헤지펀드의 시작도 주가가 오를 것을 기대하고 샀지만, 혹시 떨어질지 모르는 경우를 대비해 공매도를 한 데서 비롯됐다. 주가가 내려가 난 손실을 공매도를 통한 수익으로 만회하는 방법이다. 일종의 보험이었다고 생각하면 쉽다.
그런데 롱/쇼트를 조금 응용하면 주가를 내리게 만든 후에 싸게 사는 전략이 가능하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게 그동안의 일반적인 주식 투자라면, 반대로 비싸게 팔아놓고 다시 싸게 사서 그 차이를 노리는 전략이다. 기관이나 거액 자산가처럼 주식을 빌려올 수 있는 능력이 클수록 유리하다.
예를 들어 개인들이 주로 투자하는 중소형 종목 A가 있다고 치자. 헤지펀드가 잔뜩 주식을 빌려와 A 종목에 대한 ‘팔자’ 주문을 쏟아내면 주가가 하락하기 마련이다. 주가가 하락하면 개인들로서는 손실을 줄이기 위해 팔려는 욕구가 강해진다. 헤지펀드의 공매도에 손절매성 개인매도까지 겹치면 주가가 폭락한다. 헤지펀드는 개인들의 투매물량이 나오면 이를 야금야금 사들이기 시작해, 공매도 했던 평균단가보다 싼 값에 빌려온 만큼의 주식을 되사면 된다.
고액자산가나 기관들이야 자신들이 시세를 움직일 수 있는 데다, 투자금도 당장 필요 없는 여윳돈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개인들은 시세를 움직이기도 어렵고 여윳돈도 빠듯하다. 공매도로 주가가 떨어지기 시작할 때 버틸 수 있는 지구력부터가 다르다. 개인들은 참지 못하고 파는 경우가 속출할 수밖에 없다. 헤지펀드의 손아귀에서 주가가 놀아날 수 있다는 뜻이다.
헤지펀드를 운용하는 곳과 일반 펀드를 운용하는 곳이 같은 회사인 점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 정부 기준대로라면 대형 자산운용사들만이 헤지펀드 상품을 내놓을 수 있는데, 이들은 기존 공모펀드 등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연간 수수료 수익이라고 해 봤자 순자산(NAV)의 1% 남짓이다. 그런데 헤지펀드는 수수료율이 이보다 더 높다.
또 성과보수도 있다. 보통 목표수익률 초과분의 20%를 성과보수로 받는다. 1조 원짜리 펀드를 운용할 때 운용사가 버는 수수료는 성과와 관계없이 연간 10억 원이지만, 헤지펀드는 1000억 원짜리만 되도 이보다 더 많이 벌 수 있다. 차입(Leverage)을 통해 투자금을 4배까지 불릴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이 더 되는 쪽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고 공을 들이는 건 이익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의 기본 속성이다. 이해가 상충할 때에는 더 큰 이익을 위해 더 작은 이익을 희생하는 쪽으로 의사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돈 안 되는 공모펀드를 희생해서라도, 돈 되는 헤지펀드를 살리는 식이다.
이론적이지만 헤지펀드의 기능 중에 지나치게 비싼 종목 주가를 바로잡고, 지나치게 싼 종목 주가를 정상화시키는 기능이 있다. 헤지펀드 매니저들이 비싼 주식은 공매도를, 싼 주식은 사려고 애를 쓰게 되면 그만큼 시장의 불합리성이 개선될 것이란 의미다. 하지만 이를 역이용하면 변동성을 더욱 키울 여지도 있다. 비싼 주식을 더 비싸게 만들어 공매도 기회를 높이고, 싼 주식을 더 싸게 만들어 매수기회를 만드는 식이다. 광범위한 의미에서 일종의 시세조종이다.
올 초까지 열풍을 일으킨 자문형랩이 이른바 ‘7공주’ 등 차·화·정 주식을 집중 매수해 주가를 높이고, 이를 통해 자문형랩 수익률을 끌어올린 것을 떠올리면 쉽다. 좀 더 거슬러 가면 금융위기 발발 전 펀드 회사들이 적립식 펀드에 들어온 자금으로 시장을 끌어올려 수익률을 만든 것도 비슷하다. 결국 가장 힘이 세다는 외국인의 매도공세로 이들이 쌓은 사상누각은 무너지고 말았다.
주의할 점은 공매도로 투기적 거래를 잘못할 경우 그 손실이 무한대로 커진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1만 원짜리 주식을 샀을 때의 최대 손실액은 매수가인 1만 원을 날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1만 원짜리 주식이 하락할 줄 알고 공매도 했는데, 주가가 되레 2만 원으로 오르면 원금 손실률은 100%다. 주식은 유한책임증서이므로 주가 0원이 바닥이지만, 위로는 제한이 없다. 이론적으로 1만 원에 공매도한 주식이 10만 원, 100만 원, 1000만 원까지 오르는 것도 가능하다.
1997년 외환위기의 주범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헤지펀드가 15년 만에 대한민국 자본시장의 구원투수인 양 재등장했다. 그동안 한국 경제를 주물러왔던 헤지펀드의 투자전략을 이제 국내 투자자들도, 돈만 많이 있으면 활용할 수 있게 된 셈이다. 하지만 헤지펀드가 가진 강력한 무기들, 즉 차입 공매도를 일반 개미들이 가입하는 펀드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게 문제다. 칼만 든 무사와, 칼과 방패를 함께 든 무사 간의 대결인 셈이다.
이 때문에 해외에서는 일반 개인투자자들도 헤지펀드 전략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고 있다. 유럽의 공통 펀드기준인 UCIT(양도성 유가증권에 대한 집합투자기구)가 대표적이다. UCITⅢ 기준을 충족하는 펀드들은 공매도 등 헤지펀드들이 사용하는 다양한 전략들이 허용된다. 일반 개인 투자자들이 헤지펀드 전략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놓은 셈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