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저가 화장품숍이 점령한 명동의 거리 모습. 이곳은 뷰티에 관심이 많은 외국인들의 필수 관광 코스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명동으로 출근한 지 5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매일 새롭게 보입니다.”
지하철 4호선 명동역 바로 옆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이 아무개 씨의 말이다. 그는 하루에도 수십 번 길을 묻는 사람들이 찾아오지만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한다. 이 씨는 “하도 공사를 많이 하고 가게도 자주 바뀌어 위치를 설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명동 거리는 지하철 을지로입구역에서 시작해 을지로 2가 사거리~퇴계로 2가 교차로~회현 사거리를 꼭짓점으로 잇는 큰길에 둘러싸인 모습을 하고 있다.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이 발달했을 뿐만 아니라 오랜 역사를 바탕으로 서울은 물론이고 대한민국 최고의 상권을 자랑한다. 실제 명동은 매년 전국 표준 공시지가 발표에서 1위부터 10위권을 싹쓸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루 평균 200만 명이 넘는 유동인구를 기록하고 있는 지역이다.
최근 10년간 가장 크게 눈에 띄는 변화는 내국인이 아닌 외국인을 중심으로 한 상권이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명동이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의 필수 관광코스로 자리 잡으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한 상권이 크게 발달한 것이다.
먼저 변화의 바람을 주도한 곳은 호텔업계다. 5년 전만 하더라도 명동에 호텔은 로얄, 메트로, 세종, 사보이 등 몇 곳뿐이었다. 하지만 급증하는 관광객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명동거리 중심지에 자리한 빌딩 일부가 호텔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지난 2006년 옛 서울은행 본점을 리모델링해 영업을 시작한 ‘IBIS앰버서더 명동’이 대표적이다. 그 결과 몇 년 사이 호텔 수는 3배 가까이 늘었으며 현재도 M플라자와 밀리오레에 호텔 공사가 진행 중이다.
▲ 명동은 임대료가 비싸기로 유명하지만 제품에 대한 반응이 빨라 국내외 회사들이 모두 탐을 내는 자리다. 사진은 패션업체와 화장품 업체의 플래그십 스토어. |
또 도보로 5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브랜드가 5~6개씩 입점해있다는 점도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이로 인해 명동에는 ‘이니스프리, 스킨푸드, 네이처 리퍼블릭, 에뛰드 하우스, 더페이스샵, 미샤’ 등 거의 모든 국내 화장품 브랜드숍이 모여 ‘화장품 특구’를 이루고 있다.
명동에서 16년간 부동산중개업을 하고 있는 김 아무개 씨는 “이제 더 이상 명동은 금융의 중심지가 아니다”라며 “소공동에서 명동성당으로 이어지는 큰길에 몇 개의 은행이 있기는 하지만 예전 금융업종이 있던 자리가 화장품 상점에 완전히 밀려났다”고 말했다.
명동에게 ‘쇼핑 1번지’ 타이틀을 만들어준 패션업계를 강타한 변화의 바람은 더욱 거세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명동은 동대문식 쇼핑몰을 따라가는 모습이었다. 1990년대 인기를 끌었던 ‘명동의류’를 시작으로 밀리오레, 하이헤리엇 등 대형 쇼핑몰이 잇따라 들어섰다. 하지만 현재까지 과거의 모습을 지키고 있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 명동의류 매장엔 2007년 12월 일본계 캐주얼 브랜드가 들어섰으며 하이헤리엇 역시 몇 차례의 변화 끝에 일본 브랜드가 들어서 패션업계의 새로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대형 쇼핑몰이 사라지고 난 자리는 패스트패션(SPA) 브랜드가 들어서 새로운 패션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의 경쟁은 전쟁이라 불릴 만큼 치열하다. 선두주자로 꼽히는 ‘자라’와 ‘망고’(이상 스페인계), ‘포에버21’(미국), ‘유니클로’(일본)에 이어 지난해에는 스웨덴계 ‘H&M’까지 상륙해 경쟁은 더욱 심화됐다.
이들은 매장 대형화뿐만 아니라 한국시장에 맞춘 특화된 상품까지 개발하며 명동 패션시장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비록 후발주자지만 이랜드가 운영하는 토종 SPA 브랜드 ‘스파오’(SPAO)와 여성복 전용 ‘미쏘’(MIXXO)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점포의 특징도 변화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소상공인들이 운영하는 매장이 줄어들고 대신 ‘플래그십 스토어’들이 문을 열었다. 플래그십 스토어란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특정 상품 브랜드를 중심으로 해 전체 브랜드의 성격과 이미지를 극대화한 매장을 말한다. 매장의 규모도 크고 다양한 제품라인을 구비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한 비용이 들지만 홍보효과가 뛰어나다는 평가다.
명동은 임대료가 비싸기로 유명하지만 국내기업은 물론 외국회사들까지 탐내는 상황이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장소임과 동시에 제품반응을 빨리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옛 명동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은 뒷골목이라 불리는 중심거리 외곽지역 일부뿐이다. 직업상 명동을 10년 넘게 찾았다는 한 아무개 씨는 “가끔 과거의 명동이 그리워지긴 하지만 그 모습을 찾기가 어렵다. 그나마 남아 있는 곳은 하동관, 영양센터, 명동교자 등 오랜 시간 명성을 이어오는 음식점들뿐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사라지고 있는 추세라 조금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명동상가번영회 이동희 사무국장은 “2006년 건축법에 묶었던 명동이 지구단위계획 결정으로 재건축이 가능해졌다”며 “이를 기점으로 명동상권변화는 더욱 빨라졌다. 명동에 공사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명동은 마치 생명체와 같다. 명동은 누구보다 변화를 빨리 받아들이고 유연한 곳이다. 앞으로도 이런 변화는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