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회로기판 전문기업 뉴프렉스 임우현 대표는 연 매출 700억 원을 올리기까지 기업의 탄생과 성장 뒷얘기를 들려줬다.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
여러 개의 전기배선을 단일 부품에 담아내는 인쇄회로기판(PCB, Printed Circuits Board) 전문기업 뉴프렉스 임우현 대표(57)의 회사 소개다. 그의 말대로 PCB에 연성을 가미한 것이 FPCB로, 지금은 거의 모든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이다. 연 700억 원 가까운 매출을 올리고 있는 글로벌 전자 부품회사 뉴프렉스의 성장 비화를 풀어본다.
“1998년쯤일 거예요. 어느 날 갑자기 리스사에서 전화가 왔어요. 큰 장비가 포항으로 들어왔는데 들여온 회사는 부도가 나 연락이 안 되고 무슨 장비인지도 모르겠고, 전문가 리스트를 확인해보니 제 이름이 있다면서 항공 티켓을 보내줄 테니 내려와서 좀 봐 달래요. 가서 보니까 TV 부품인 섀도 마스크 생산 설비 풀세트예요. 기계에 대해 설명해주고 오래 사용 안하면 상하니까 빨리 처분하라고 하곤 올라왔어요.”
IMF 외환위기의 엄혹한 시절. PCB 전문가인 임우현 대표와 FPCB의 사업적 인연은 그렇게 극적으로 시작됐다.
“잊고 있었는데 두 달쯤 지나니 또 전화가 와요. 그 장비를 누가 인수해서 공장에 셋업했는데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네요. 또 가봤죠. 한데 인수한 사람이 농부, 부농이에요. 기계 값이 당시 12억 원 했으니까요. 상황을 보니까 설치한 사람은 도망가고 없고 농부는 사기를 당한 거예요. 나 보고 기계를 사라는데 내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돈도 없고. 빨리 팔라고 하고는 올라와 버렸죠.”
그리고 얼마 뒤 또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공장이 팔렸는데 기계를 치울 데가 없다면서 당시 저희 공장 공터에 보관해주면 안되겠냐는 거예요. 근데 설비라는 게 들어오긴 쉬워도 나가는 건 어렵습니다. 그래서 반대했는데 보관료 주겠다면서 하도 사정하는 바람에 일단 들여놨죠. 그 뒤에 은행도 리스회사도 부도가 나고 채권을 받은 은행 쪽에서 정리하자고 왔어요. 결국 보관료를 받는 셈치고 설비를 넘겨받았습니다.”
당시 업종전환을 검토하고 있던 임 대표는 이 설비를 FPCB용으로 변형했다. 막상 기계를 떠안고 보니 활용법이 생긴 것이다. 업종 전환 과정에서 외환위기는 되레 도움이 됐다. 이전에 사용하던 독일제 설비를 다른 곳에 넘겼는데 원-달러 환율 800원대에 산 기계는 환율이 2000원대가 되니 중고가 더 후한 값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시계를 좀 더 과거로 돌려보자. 1954년 경북 청송에서 6남매의 맏이로 태어난 임우현 대표는 경북대학교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판잣집을 전전할 정도로 어려운 기억에 대구 쪽은 쳐다보기도 싫었단다. 1976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자리 잡은 그의 첫 직장은 전화교환기 제조회사. 공장에서 표면처리 기술을 담당하다 신규 PCB사업부 책임자가 됐다. 이후 다른 PCB 회사 기술책임자로 있던 중 “원래 사업할 성격이 아니었다”는 그는 본의 아니게 창업을 하게 된다.
“고향에서 데려온 친구가 있는데 제가 자리 옮기니 다른 데로 갔다가 저를 찾아와서는 메탈마스크라는 전자 부품 사업을 해보겠다면서 돈을 좀 대 달래요. 고심 끝에 없는 집 잡히고 대표 이름 빌려줘 창업을 돕고 가끔 봐줬죠. 한데 시간이 지나면서 경쟁업체가 많이 생겨 사업이 어려워졌어요. 제 집까지 잡혀 있으니 큰일 난 거죠. 결국 1996년 몸담고 있던 회사를 나와 합류했습니다. 그리고 뭔가 변신해야 한다고 고심하던 와중에 우연찮게 설비를 확보하고 FPCB 사업에 뛰어든 거죠.”
FPCB 생산 초기엔 컴퓨터 하드디스크, 자동카메라 등 쓰이는 곳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서 국내 휴대폰 생산량이 폭증하면서 뉴프렉스도 급성장을 했다. 2005년 반월공단에서 단일 건물로는 가장 큰 건평 12500평(대지 5500평)짜리 공장도 인수하고 2006년 코스닥에 상장하는 등 뉴프렉스는 탄탄대로를 걷는 듯했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등 국내 휴대폰 업황이 좋지 않으면서 성장세는 주춤했고 수익성은 악화됐다. 지난해부터는 LED용 메탈(M)PCB 시장에도 진출했지만 LED 시장도 침체기다. 돌파구는 있는 걸까.
“구조적으로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형태를 상반기에 벗어났습니다. 1년여 동안 전부다 직거래로 전환했죠. 해외도 에이전트 다 잘라버리고 엔드유저(End User, 최종 사용자)와 직접 거래를 트느라 그간 좀 어려웠습니다. 그러고 나니 9월부터 갑자기 주문이 늘었어요. 내년엔 실적이 많이 좋아질 겁니다. LED도 당초 기대보단 속도가 떨어지지만 효율적으로 투자하고 있고 전력난 등 때문에 앞으로 활성화될 겁니다.”
이처럼 전열을 재정비한 뉴프렉스는 2015년 매출 5000억 원까지 내달린다는 목표를 잡았다. 임 대표는 중국과 일본에 낀 한국을 의미하는 ‘샌드위치론’을 뒤집으며 뉴프렉스의 미래를 낙관한다.
“현재 일본의 휴대폰 관련 기술은 우리나라에 비해 떨어져 있습니다. 특히 회로기술은 우리가 우위에 있어 일본에 수출 많이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회로 산업의 특징은 공정이 길고 인력이 많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임금이 높은 일본은 사람 많이 들어가니 못하고, 저가 공격을 해오던 중국 대만은 공정이 길어 제품 품질 생산성에서 못 따라옵니다. 우리가 중간에서 양쪽을 다 보완하면서 다른 산업에 비해 호황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
전공에만 파묻히지 말라
① 진로를 정할 때 너무 전공에 파묻히지 말라. 대학에서 배운 게 대단한 전문 기술은 아니다. 전공자들이 모인 집단은 경쟁이 심하니 오히려 반대쪽으로 도전하다 보면 희소성이 있을 수 있다.
② 현장에서 뛰어라. 공대 졸업하고 나면 흰옷 입는 연구소 좋아하는데 그건 아니다. 실무를 먼저 익히고 연구소에 가라.
③ 현장에 있어도 어학에 매진하라. 언어교육은 젊을 때 안하면 안 된다. 세계의 기술 특허 모든 게 실시간으로 전달된다. 영어를 모르면 아무것도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