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팡 김범석 대표는 “젊은이여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창업하라”고 외치는 벤처홀릭이다.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
지난 11월 23일 인터뷰를 위해 자리를 마주했을 때 <일요신문> 표지에 실린 ‘안철수 대권 시나리오 최초공개’를 본 김범석 쿠팡(포워드벤처스엘엘씨) 대표(33)가 제일 먼저 던진 말이다. “한국 벤처에 많은 도움을 주실 수 있는 분인데 앞으로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그의 말에 짙은 아쉬움이 배어있었다. 사랑하는 선생님을 전근 보내는 마음이랄까. “젊은이들이여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창업하라”고 외치는 ‘벤처홀릭’. 연 거래액(매출) 3000억 원을 바라보는 국내 대표 소셜커머스(공동구매를 통한 할인 서비스) 쿠팡. 하버드대에서 시작되는 김범석 대표의 ‘벤처 어드벤처’에 빠져 보자.
“하버드는 전공보다 동아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요. 동아리는 하나의 사업입니다. 미디어에 관심이 많은 저는 기존 동아리에 들어가지 않고 친구들을 모아 <커런트>(Current)라는 월간지를 만들었습니다. 연예와 정치, 모던한 콘텐츠를 담아서 고리타분한 신문에 싫증난 대학생들에게 어필했죠. 대학생 마케팅을 하고자 하는 기업에 영업하고. 10만 부가 나가자 뉴스위크(Newsweek)에서 인수해갔습니다. 돈은 얼마 안됐지만 뭘 만들어 꽃을 피웠다는 것만으로 기뻤습니다.”
대학 시절 처음 비즈니스의 ‘참맛’을 본 김범석 대표는 지난 2000년 대학 졸업 후 1년여 한국에 들어와 서울대에 다녔다. 1978년 태어나 취학 직전 미얀마를 거쳐 미국으로 가는 바람에 한국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부모의 배려였다. 그리고 다시 미국행,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근무하던 그는 2004년 <빈티지미디어>(Vintage Media)라는 월간지를 창간, 운영하다 매각하고 2009년 하버드비즈니스스쿨에 입학한다.
“미디어사업이 매력이 있기는 한데 스케일 큰 회사와는 경쟁이 안 되더라구요. 매각 후에도 남아 일을 계속하다가 학교로 돌아갔죠. 비즈니스스쿨에 다니던 중 그루폰이 온라인을 통해 모두가 노리는 로컬(지역) 시장을 장악하더군요. 처음엔 의심했어요. 한데 보스턴 업주들을 인터뷰해보니 그루폰 서비스를 좋아하는 거예요. 이거 뭔가 있다, 성공하는 윈윈 구조라는 거죠.”
늘 한국 시장을 염두에 두고 있던 김 대표는 그루폰 모델을 한국 시장에 대입해 봤다.
“한국은 자영업자 비율이 상당히 높죠. 근데 70% 가까이 5년 안에 폐업한다고 해요. 자영업 참 힘들잖아요. 그루폰 같은 마케팅 툴이 있으면 파격적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다시 창업을 결심한 그는 <빈티지미디어> 창업자금을 댔던 투자자들에게 달려갔다. 한국 시장을 잘 몰라 주저하는 그들을 설득해 20억 원을 확보한 김 대표는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때가 지난해 6월. 그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소매를 걷어붙이고 사무실부터 찾아 나섰고 곧 동료들이 합류하며 6월 말 쿠팡의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첫 서비스 개시는 8월 10일. 오픈 상품은 ‘DJ DOC 워커힐 풀사이드 파티’였다. 직원 6명이 일주일 전부터 입소문을 낸 덕에 준비한 100장이 모두 팔렸다. 그러나 사업이 곧바로 본궤도에 오른 것은 아니다.
“모두가 그렇지만 온 힘 쏟아 부어서 의지로만 만드는 게 벤처죠. 지난해 가을까지는 정말 힘들었어요. 쿠팡은 업계 두 번째도 아니고 열 번째도 아니고 서른 몇 번째로 시장에 진입했습니다. 여기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말 길게 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남들이 단기적 효과에만 집중할 때 그걸 안하는 건 쉽지 않죠. 블랙 컨슈머 때문에 망할 수도 있다는 걱정 속에서도 환불정책도 밀어붙였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원칙을 지키며 자리를 잡자 폭발적 성장세가 이어졌다. 올 1월 100만 회원 돌파, 3월 200만, 4월 300만, 7월 500만을 넘어섰다. 9월 말 기준 회원은 710만. 2011년 매출은 3000억 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성장에 과도한 마케팅 비용 등 소셜커머스의 수익모델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상장 때까지는 사람들이 여러 생각을 하겠지만 아주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림(모델)을 고집하지 않아요. 한국 시장은 흐름이 아주 강한 강입니다. 그 강에서 반대 방향으로 수영하면 죽을 수 있어요. 흐름을 파악해서 그 방향으로 수영하는 게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이죠.”
그렇다면 그 강의 흐름을 따라 쿠팡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소비할 때 가장 강력한 게 친구 추천이죠. ‘여기 먹어보니 퀄리티(맛) 괜찮아. 가서 내 이름 대면 서비스, 할인도 해줘.’ 이런 식입니다. 로컬 서비스를 넘어서 여행 배송상품 문화 공연 티켓 이런 것들까지도 제공하는, 접근 쉽고 믿을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 파트너가 되는 거죠. 나아가 소비자들이 와서 아이디어도 얻고 발견을 하는, 쉽고 재미있는 디스커버리(발견) 쇼핑이 되고자 합니다.”
소셜커머스 시장은 매출 1조 원대로 급성장했지만 최근 ‘짝퉁’ 판매 등 불신이라는 성장통을 앓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자신만만했다.
“업계 최초로 환불정책을 시행했고 CS(고객만족)에 대한 투자를 계속했습니다. 콜센터 직원을 포함해 300여 명을 이 분야에 배치하고 있어요. 고객 입장에서 무슨 문제든 전화가 안 되면 일단 짜증나죠. 우리 전화 응답률은 99%에 달합니다. 장기적으로 최고의 신뢰를 받는 소비자 브랜드가 되고 싶어요.”
2013년 미국 증시(나스닥) 상장을 목표로 하는 쿠팡. 하버드에서 시작된 벤처 성공신화가 신뢰를 무기로 다시 미국을 거쳐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
자신의 ‘모델’만 고집하면 안돼
벤처에는 쉽게 빠질 수 있는 함정이 있습니다. 벤처를 할 때 자신감이 필요하지만 과도한 자신감에 자기가 똑똑하게 그림 그려서, 자기가 정답을 찾아서 잘 풀어야 성공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는 거죠. 그러나 창업은 아이디어가 아니고 사람들과 승부를 보는 겁니다. 좋은 사람들 모아놓고 얼마나 귀를 기울이느냐가 중요합니다. 성공요인에 있어서 창업자의 아이디어는 10%에 불과합니다. 구현이 90%입니다. 좋은 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걸, 다른 사람들이 성공하는 걸 즐겨야 잘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