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1월 한국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그 사이로 한덕수 주미대사의 모습도 보인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이는 통상교섭본부장이라는 자리가 단순 외무공무원과 달리 통상이라는 전문적인 일을 맡은 데다 업무강도가 높아 적임자를 찾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 본부장이 이런 통상교섭본부장의 최적임자로 꼽히는 것은 한-미 FTA 협상 초기에 한국 측 수석대표를 맡았을 정도로 통상업무에 강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후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승진해 한-미 FTA를 마무리 지었고, 또한 미국 측 이의제기 당시 재협상을 이끌어낸 장본인이다. 한-미 FTA의 전체 맥락을 꿰뚫고 있어 미국은 물론 국내 반대 세력에 대해서도 이론적으로 맞설 수 있는 대표적인 정부 측 인사다. 한-미 FTA가 투자자 국가소송제도(ISD)를 둘러싼 논란으로 휘청거릴 때도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한 해명을 도맡았다.
한-미 FTA 비준동의안 처리로 김 본부장은 한-미, 한-유럽연합(EU) FTA를 동시에 체결시키면서 뜻한 바를 이루고 자리에서 물러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하지만 반대세력으로부터는 한-미 FTA 5적으로 불리고 있어 이후 한-미 FTA를 둘러싼 정쟁에서 핵심 표적이 되는 부담도 안게 됐다. 반대세력의 지적대로 향후 FTA의 부작용이 심각한 것으로 판명되면 가장 큰 책임을 질 수도 있는 셈이다.
김 본부장 옆에서 궂은일을 도맡아온 최석용 FTA 교섭대표도 이번 한-미 FTA 통과로 통상관료로서 큰 가산점을 받게 됐다. 최 대표는 매주 수요일마다 있는 통상교섭본부 언론브리핑에서 언론의 송곳질문을 정연한 논리와 예를 들며 답해왔다. 김 본부장과 함께 한-미 FTA 정당성 홍보에도 앞장서왔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한-미 FTA 반대 세력에게서는 김 본부장에 버금가는 타깃이 되고 있다. 조만간 퇴진이 예상되는 김 본부장과 달리 추후 통상교섭본부를 이끌어야 하는 최 대표로서는 내년 정치권력의 흐름에 따라 부침이 예상된다.
김 본부장과 최 대표가 전면에 섰다면 측면에서 이들을 도왔던 이는 경제수장인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박 장관은 한-미 FTA 후속대책 마련은 물론 각종 회의에서 한-미 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위한 정부부처 차원의 노력을 수차례 당부했다. 또 국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통과를 강하게 요청하기도 했다.
박 장관의 이러한 노력을 보여주듯 재정부는 자기 부처의 일이 아님에도 ISD 해명 팸플릿을 직접 제작해 배포하는가 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분석해 세계무역과 고용 간의 함수라는 보고서를 만들기도 했다. 아직 박 장관의 손익을 거론하기는 이르다. 박 장관의 성적표는 앞으로 한-미 FTA의 성과를 얼마나 거둬내느냐, 또 농축산업 등 피해가 예상되는 국내 업체들의 손해를 얼마나 줄이느냐가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눈에 띄지 않았지만 한-미 FTA 통과를 위해 움직였던 또 다른 주요 인사는 한덕수 주미 대사다. 다만 한 대사는 한국보다는 미국 의회 통과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한 대사는 초대 통상교섭본부장과 한-미 FTA체결지원위원장을 지냈던 인물. 그는 초기 한-미 FTA에 대한 반대가 만만치 않던 미국 내 여론을 움직이는 데 주력했다. 이를 위해 그는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한-미 FTA 여론을 조성했다. 이러한 노력 덕에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 전에 미 의회 통과라는 성과를 거뒀다.
미 의회에 대한 설득으로 정부 내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국내 의회, 특히 민주당에 대한 설득에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 눈총을 받고 있다. 한 대사가 노무현 정부 시절 경제부총리와 국무총리를 지내며 한-미 FTA 추진을 지지해왔으면서 과거 함께했던 민주당 인사들에 대한 설득에는 소극적이었던 탓이다.
김서찬 언론인
교수 출신 ‘보스’ 따라 학구적으로~
‘디폴트의 세계사’, ‘중동의 봄과 뉴욕의 가을’, ‘베이징을 바라보는 세계의 눈’…. 언뜻 서점 세계 경제 코너에 비치된 책 제목처럼 보이지만 이것들은 최근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보도자료 제목들이다. 보도자료는 공무원들이 만드는 탓에 이처럼 문학적인(?) 제목을 다는 일은 없다.
그런데 교수 출신인 박재완 장관이 취임한 뒤부터 재정부 보도자료가 일부 파격적으로 변화했다. 지난 8월 12일 ‘그리스, 포르투갈, 아일랜드의 재정위기 원인 및 주요경과’, 8월 18일 ‘스페인, 이탈리아의 최근 재정현황’이라는 보도자료가 나왔는데 이 자료들은 유럽 재정위기 중심 5개국이 겪고 있는 재정위기의 원인을 과거부터 되짚어보는 자료였다. 재정부가 다른 나라의 재정위기 원인을 분석한 자료를 내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이러한 경향은 이후 더욱 강해졌다. 9월 29일 ‘베이징을 바라보는 세계의 눈’이라는 자료를 통해 세계 경제침체 속에 성장을 거듭하는 중국을 다각도로 살펴보더니, 10월 10일에는 ‘중동의 봄과 뉴욕의 가을’이라는 제목으로 중동에 부는 민주화 운동과 미국 내 반 월가 시위를 분석했다. 11월 10일에는 ‘디폴트의 세계사’를 통해 고대 그리스와 로마시대 국가부도 원인부터 러시아 모라토리움 선언까지 다뤘다. 또 11월 16일과 17일에는 ‘21세기 세계경제영토 확대전략, 세계무역과 고용간의 함수’라는 제목으로 한-미 FTA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보도자료를 내놓았다. 이어 29일에는 ‘위기사례 전후로 분석한 중남미의 어제와 오늘’을 통해 재정건전성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재정부 관계자는 “최근 들어 일부 부서에서 유럽 재정위기나 중동과 미국 민주화시위 등을 분석한 내용을 보도자료로 내놓고 있다”라면서 “아무래도 박 장관이 교수 출신이다보니 보도자료의 내용이 변화한 것 아닌가 싶다. 기자들이 교과서나 논문 같다는 이야기도 하는데 실제 일부 자료는 부서에서 유명한 책을 참고로 삼기도 했다”고 말했다. [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