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 FTA 따른 업종별 희비 |
한-미 FTA의 증시 효과를 압축하면 해외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수출 대기업에 대한 철저한 수혜다. 한-EU FTA에 이어 한-미 FTA까지, 즉 유럽 한국 미국 시장이 하나로 묶인다. 수출 기업들이 유럽과 미국에서 장사를 하기가 편해진다는 뜻이다. 가장 먼저 관세의 단계적 철폐에 따른 가격인하 효과가 있다. 유럽이나 미국 현지 기업보다 값이 싼 우리 공산품이 이들 시장에서 좀 더 영역을 넓힐 여지가 커진다.
국제 투자자제소제도(ISD)를 원칙적으로 적용하면 우리 기업들이 미국이나 유럽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역차별을 받을 가능성도 줄어든다. 애플과의 소송전에서 드러났듯이 삼성전자나 현대차, LG전자의 글로벌 위상은 해외 경쟁기업과 소송 대결에서 결코 밀리지 않을 정도의 힘을 갖고 있다.
다음 수혜는 앞으로 글로벌시장에 진출할 기업들인데, 역시 자동차나 정보통신기기를 중심으로 한 관련 제조업 부품회사들이다.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한 다른 유통이나 서비스 기업 가운데 규모의 경제와 높은 시장진입 비용 등을 감안할 때 유럽이나 미국에서 경쟁력을 가질 만한 곳은 별로 없다.
유통이나 서비스 기업의 경우 진출 가능한 해외시장은 중국 등 아시아다. 한-중 FTA가 체결된다면 이들 기업의 수혜 가능성도 점칠 수 있다. 다만 신세계와 롯데쇼핑이 중국 대형할인점 사업에서 고배를 마시고 있는 것처럼, 내수에서 큰 기업이 해외진출을 할 때는 상당한 시행착오와 기회비용 지불이 필요하다는 점은 감안해야 할 요소다.
피해 분야로는 일단 글로벌 기업의 국내 진출에 따른 시장점유율 위축 기업들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이미 잘 알려진 농수축산물 등 1차 산업부문이다. 이미 미국산 소고기 수입 이후 시장 판도변화에서 나타나듯이 1차 산업은 규모의 경제를 갖춘 초대형 다국적 기업들에게 국내 기업들이 적수가 되기 힘들다.
ISD 조항을 감안할 때 정부의 지원이 있더라도 ‘최소한의 생존’ 수준이지, 결코 제대로 경쟁을 벌일 만하지는 못하다. 다만 국내 시장이 꽤 크다는 전제는 필요하다. 쌀, 소고기 및 돼지고기, 닭고기 시장 등이 대표적이다. 유통분야는 국내 대형할인점이 글로벌 할인점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아마존 구글 등 인터넷 관련 유통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을 무기로 국내에서 강력한 입지를 구축할 수 있다.
제약분야도 대표적인 피해 업종으로 꼽힌다. 국내 제약사의 경우 제네릭(Generic, 복제약)이 대부분인데, 미국의 다국적 제약사들이 원천기술을 가진 경우가 많다. 원천기술 관련 특허 만료 이전에 제네릭 생산을 금지한다면 국내 제약사의 타격이 클 수 있다. 제네릭 생산 제한은 곧 약가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 이는 가계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바이오 신약을 개발하는 업체들의 경우에도 대부분 규모가 영세해 미국이나 유럽에 직접 진출할 만한 여력은 적다. 따라서 기술 자체를 파는 라이선스 아웃(License Out)을 통해 해외 판권은 넘길 수 있는데, 이 경우에는 국내 제약사의 해외진출에 장벽이 될 수 있다. 해외에서의 원천기술은 미국 유럽 등 다국적 제약사가 갖게 되면 국내 제약사의 수출에 제동을 걸 수 있기 때문이다. 제약업계의 피해 가능성으로 미뤄볼 때, 그동안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도적 장치가 약했던 문화, 출판 등 지적재산권 분야에서도 적잖은 파장이 예고된다.
내수경제단위인 인구 1억 명이 안 되는 상황에서 국내 시장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분야라면 여전히 국내 기업 중심의 경쟁이 이어질 수 있다. 국내에서만 생산 가능한 농수산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농산품의 특성상 소비자 기호에 맞지 않으면 안 되는데, 국내 시장만을 겨냥해서 대규모 생산에 나설 경우 다국적 기업들의 비용이 되레 더 높아질 수 있다.
이처럼 수혜와 피해 부문이 뚜렷이 나뉘는 것 같지만, 사실 피해와 수혜가 교차하는 종목들도 적지 않다. 주로 자동차와 사치품 등이다. 가장 쉬운 예는 자동차다. 최근 국산차 가격은 높아지고 수입차 가격은 낮아지는 추세다. 특히 중대형 부문에서 독일산 자동차의 약진이 눈에 띈다. 그런데 국산차의 경우 해외 판매가격보다 국내 판매가격이 높다는 게 정설이다.
따라서 관세장벽이 없어질 경우 독일차를 중심으로 한 수입차의 국내 진출이 활발해질 수 있고, 이는 국산차의 가격상승 속도에 제동을 걸 수 있다. 국산차 제조사의 경우 국내에서의 수익비중이 높은데 국내 시장에서 수입차와 가격경쟁에 돌입할 경우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다. 최근 인기가 떨어진 일본차도 미국 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국내로 수입하면 가격경쟁력을 높일 여지가 있다. 유럽차는 중대형 등 고가제품 시장에서, 일본차는 중형급 이하 시장에서 국산차 시장을 잠식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결국 완성차 업체는 FTA로 수출에서 득이 있지만, 내수시장에서 실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부품사의 경우는 좀 다르다. 수입차들도 FTA로 인해 국산 부품을 사용하는 경우가 늘어날 수 있다.
한 증시 전문가는 “투자전략에 있어서도 변화가 필요한데 대상의 폭을 넓혀야 한다. 경쟁이 되는 시장의 무대가 통합됐다는 점에서 승자와 패자 간 부침도 극단적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잘되면, 애플이 안되고, 현대차가 잘되면 도요타가 안되는 식이다. 또 이마트나 롯데쇼핑이 잘 안 되면 코스트코나 월마트가 잘되는 조합이다.
심지어 내수경기가 좋은데 국내 내수업체는 안 좋고, 글로벌 유통업체만 내수시장의 활황을 독식하는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다. 결국 실제 경기상황과 주식시장, 즉 코스피의 움직임이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 같은 위험을 관리하려면 포트폴리오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의 전문가는 “EU-한국-미국을 잇는 거대한 FTA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기업만을 골라 포트폴리오에 담는다면 시장을 초과하는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