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가족부는 청소년 인터넷 게임 중독을 막기 위해 셧다운제를 시행했다. 사진은 중학생으로 보이는 한 소년이 PC방에서 게임을 하는 모습.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지난 20일 오후 11시 30분경, 농구를 소재로 한 스포츠게임 ‘프리스타일’을 즐기던 방 아무개 군(13)의 모니터에 뜬 안내문이다. 방 군은 매주 토요일마다 늦은 시간까지 게임을 즐겨왔지만 앞으로는 그럴 수 없게 됐다. 이날 자정부터 시행되는 ‘셧다운제’ 때문이다. 셧다운제는 형평성과 실효성을 두고 시행 전부터 말이 많았다. 우여곡절 끝에 법은 시행됐지만 여전히 셧다운제를 둘러싼 논란은 진행형이다. 게다가 어른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법의 허점을 교묘하게 파고드는 청소년들의 ‘뛰어난 창의력’도 날로 발전하고 있다.
셧다운제는 최근 사회문제로 손꼽히는 청소년 인터넷게임 중독을 예방하고 건강한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지나치게 늦은 시간까지 게임에 몰두하는 청소년들에게 제재를 가해 수면권과 학습권을 보장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겠다는 것. 정식 명칭은 ‘청소년 보호법 개정안’으로 기존 청소년 보호법에 ‘16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인터넷게임을 제공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조항이 신설됐다.
하지만 시행 첫날부터 각종 게임 사이트 게시판과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청소년들의 ‘꼼수’ 교환으로 도배가 되면서 셧다운제의 취지의 빛이 바랬다. 자정이 넘은 시간까지 게임 플레이하는 모습을 캡처해 인증하는 청소년부터 성인 주민등록번호를 공유하는 아이들까지 있었다. 그 중 부모의 주민번호를 도용해 새로운 아이디를 만드는 것이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꼽혔다. 셧다운제가 실시되기 전부터 부모의 주민번호를 외우는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박 아무개 군(14)은 “게임 사이트뿐만 아니라 포털 사이트 등에서도 14세가 넘지 않으면 부모님의 동의를 구하는 곳이 많다”면서 “가입할 때마다 물어보는 게 귀찮아서 전에 슬쩍 아빠의 주민번호를 보고 외워버렸고 이후로는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않고 원하는 곳에 가입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친구들도 다 그렇게 한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주민번호를 두고 부모와 아이들 사이 숨바꼭질을 벌이고 있는 집도 생겨났다.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둔 김 아무개 씨(44)는 “셧다운제에 대한 뉴스를 접하자마자 아들이 내 주민번호를 도용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을 염려해 지갑 속에 주민등록증을 숨겨두고 있었는데 아들은 서랍 속에 보관하고 있는, 사용하지 않는 의료보험증을 찾아냈다. 아이들의 놀라운 창의력은 어른들의 굳은 머리로는 따라갈 수 없다”며 씁쓸해 했다.
더 큰 문제는 아이들의 이러한 행동이 범죄행위라는 것이다. 아무리 가족이라 하더라도 타인의 주민번호를 도용하는 것은 엄연한 범법행위로 처벌을 받게 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런 사실을 모르는 아이들이 많은데 어른들이 이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성급하게 제도를 시행하는 바람에 어린 아이들을 범법자로 만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셧다운제는 해외에 서버를 둔 게임에는 제재를 가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이 점을 노리는 방법도 등장했다. 국내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게임의 경우 한국에서도 다른 나라의 서버에 접속하는 것이 가능하다. 비록 옛날 버전이기는 하지만 게임을 전혀 못하는 것보단 낫기 때문에 해외 서버를 찾아 나서는 청소년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인근 PC방에서 만난 강 아무개 군(12)은 “해외 서버를 통하면 제대로 된 게임을 하기 어렵다. 업그레이드되기 전 버전이라 재미가 떨어지기도 하고 사람들도 별로 없기 때문”이라며 “일부 컴퓨터를 잘 다루는 친구들은 승인되지 않은 해외 서버를 통해 게임을 하기도 한다. 그 쪽을 통하면 12시가 넘어도 서버에서 튕기지 않는다. 솔직히 게임을 하기로 마음만 먹으면 방법은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게임업계도 셧다운제의 유효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전하면서도 전반적으로는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셧다운제는 실시됐기 때문에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며 “우리가 어떤 입장을 밝히긴 곤란한 상황이나 셧다운제는 제도적으로 허점이 많아 정부가 원하는 효과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 게임이 청소년 문제의 주된 원인으로 비치는 것도 국내 게임 산업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까 염려된다”고 말했다.
이러한 논란에 대해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업계에서 셧다운제의 취지는 인정하면서 일부 문제점만 크게 부풀리고 있다. 실효성이 없다고만 말할 것이 아니라 실효성을 갖추도록 문제점을 개선하면 된다”고 항변했다. 그는 또 “셧다운제는 전체이용자도 아닌 16세 미만의 청소년들만 심야시간 잠깐 게임을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게임 산업이 타격을 받는다면 셧다운제가 없었어도 언젠가 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게임 산업보다 청소년의 건강이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정부가 민증 도용 앞장?
지난 11월 22일 여성가족부는 “셧다운제의 조기정착과 운영현황을 파악해 제도의 실효성과 형평성 등에 대한 보완대책을 수립하기 위해 인터넷 게임을 제공하는 게임포털 및 게임물에 대한 실태점검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점검 방법에 있어서 구체적인 계획이 전달되지 않았을뿐더러 직원 자녀 주민번호를 이용하겠다는 소식이 전해져 논란이 일었다. 여성가족부 관계자가 “16세 미만 청소년의 주민번호로 회원가입을 하고 플레이를 해볼 것이다. 이를 위해 주민번호를 빌릴 수 있는 직원 자녀를 찾아볼 것”고 말한 것이 논란의 시작이었다.
이 같은 사실이 보도되자 문화연대 관계자는 “정부부처가 나서서 주민번호 도용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면서 “직원 자녀의 주민번호로 이행 점검을 한다는 건 정상적인 공무 집행 방법이 아니다. 만 16세 미만 모니터링 요원을 모집하거나 게임사와 협력을 통해 자발적인 신고를 하는 방법을 활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경찰도 미성년자 성매매 단속 등을 위해서는 아이들의 주민번호를 쓴다. 직접 해보고 부딪쳐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해결방법이기 때문”이라면서 “우리도 막무가내로 직원 자녀들의 주민번호를 쓰겠다는 것은 아니다. 청소년 활동 단체 등의 도움을 받아 서면으로 동의를 구하고 적법한 절차를 밟아 사용할 예정이기 때문에 문제될 것은 없다”고 반박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