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역 출신 25년차 배우 최근 연거푸 최우수 수상…‘자폐 연기 민폐 끼칠라’ 고사, PD·작가 설득 끝 ‘인생캐’ 창조
#왜 고사했을까
스카이TV가 운영하는 ENA 채널을 통해 방송되고 있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1회 시청률은 0.9%(닐슨코리아 전국유료가구 기준). 하지만 “재미있다”는 입소문이 돌면서 4회 시청률은 5.2%까지 치솟았다. 웬만한 지상파, 케이블채널, 종합편성채널에 편성된 드라마의 시청률을 훌쩍 뛰어넘는 성적표다.
이를 두고 “박은빈이 있어서 가능했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극 중 자폐 스펙트럼을 앓는 변호사 우영우 역을 맡은 박은빈은 눈빛과 손짓, 말투 하나까지 섬세하게 표현하며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는 마성의 드라마를 배출했다.
하지만 당초 그는 이 드라마 출연을 고사했다. 지난해 참여했던 드라마 ‘연모’에 출연하기 전부터 섭외 제안을 받았으나 손사래를 쳤다. 이미 잡힌 스케줄과 더불어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인물을 연기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다.
지금껏 자폐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 속에서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빼어난 연기를 선보였다. “초원이 다리는 백만 불짜리 다리”라는 대사로 유명한 영화 ‘말아톤’의 조승우를 비롯해 류승룡은 ‘7번방의 선물’로 10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고, 서번트 증후군을 보이는 의사를 주인공으로 다룬 드라마 ‘굿 닥터’에서는 주원의 연기력이 돋보였다. 이외에도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의 박정민, ‘증인’의 김향기 등이 자폐 연기를 물 흐르듯 소화하며 호평 받았다.
이에 대해 박은빈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제작발표회에서 “여러 미디어 매체를 통해 구현된 연기를 모방하고 싶지 않았다”면서 “실존 인물이나 캐릭터를 은연중에 기억하고 잘못된 접근을 하게 될까, 내가 연기하면서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게 될까봐 신중을 기했다. 모두가 불편함이 없도록 치열하게 심사숙고한 대본을 최대한 구체화하려고 노력했다. 자폐 스펙트럼 전문가인 자문 교수도 대본을 본 뒤 (조언을 얻어) 적정선을 찾아서 합의하며 연기했다”고 말했다.
박은빈을 설득시킨 건 연출자인 유인식 PD와 대본의 집필을 맡은 문지원 작가였다. “처음 테스트 촬영본을 봤을 때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입니다’를 외치는 순간 ‘옳다구나’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유 PD는 박은빈을 우영우를 기용하기 위해 무려 1년을 기다렸다. 문 작가는 앞서 영화 ‘증인’에도 참여했던 만큼 자폐 스펙트럼에 대해 누구보다 많은 지식을 축적하고 따뜻한 시선을 보낸 인물이다.
박은빈은 “유인식 감독과 문지원 작가에 대한 신뢰가 두터웠다. 그래서 겁나는 부분이 있었지만 용기 내 참여하게 됐다”면서 “배우는 텍스트로 된 대본을 통해 역할을 본다. 처음에는 글로 접하며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섣불리 선입견을 갖고 소화할 수 있는 대본도 아니었다. 그래서 조심스러운 마음이 컸다”고 덧붙였다. 이런 박은빈의 진심이 전해졌기에 재미와 의미가 황금 비율로 섞인 우영우라는 캐릭터가 탄생할 수 있었다.
#어디서 나타났나
박은빈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발판 삼아 요즘 가장 주가가 높은 여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그를 “오래 전부터 지켜봐왔다”는 이들도 있고 “이 드라마를 통해 새롭게 발견했다”는 이들도 있다. 그들의 공통된 반응은 “연기를 참 잘한다”는 평이다.
박은빈은 무려 25년 차 배우다. 1992년생인 그는 5세 때 드라마 ‘사랑의 이별’로 데뷔했다. 이후 ‘백야 3.98’, ‘명성황후’, ‘서울 1945’, ‘강남엄마 따라잡기’ 등 굵직한 작품 속 아역 배우로 활약했다. 2002년에는 KBS 2TV ‘개그 콘서트’의 인기 코너인 ‘수다맨’에서 수다맨을 무대 위로 부르는 소녀 역을 맡아 3개월 동안 고정 출연하기도 했다.
이런 박은빈이 성인 배우로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2016년 방송된 JTBC ‘청춘시대’ 때다. 당시 음주가무와 음담패설에 능한 송지원 역을 맡아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받았다. “실제 내 모습과는 백팔십도 다르다”는 캐릭터를 연기력으로 소화해냈다. 이후 ‘스토브리그’에서는 국내 유일이자 최연소 여성 프로야구단 운영팀장 이세영 역을 맡아 강단 있는 인물을 능수능란하게 다뤘다. 단장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포수에게 “선은 니가 넘었어!”라고 외치는 장면은 ‘스토브리그’의 백미로 꼽힌다. 이후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거친 그는 2021년 ‘연모’를 통해 사극 연기도 가능하다고 웅변하며 그 해 연말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최우수상도 거머쥐었다.
그리고 그는 최근 개봉된 영화 ‘마녀 파트2. 디 아더 원’에서 이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통해 전성기를 열었다. 하루아침에 일군 깜짝 인기가 아니라, 오랜 세월 갈고 닦은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쌓아올린 성이라 당분간 박은빈의 전성시대는 계속될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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