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는 크게 1차관과 2차관 산하로 나뉜다. 1차관 산하에는 조세와 거시경제 정책, 국제 및 대외 경제가 있고, 2차관 산하에는 예산과 국유재산, 공공기관 등 국가 곳간에 쌓인 재산을 관리하거나 사용하는 부서가 몰려있다. 그런데 예산 시즌을 맞아 2차관 산하 국·실별로 분위기가 엇갈리고 있다.
매년 12월 예산 시즌이 돌아오면 가장 바빠지는 곳은 바로 2차관 산하 예산실이다. 정부가 마련한 예산안을 국회에서 최대한 원안 그대로 통과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권의 증액 요구를 어느 정도 들어주면서 예산액을 돌려막는 재주가 필요하다. 때문에 예산실은 정신없이 바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예산은 법적으로 매년 12월 2일에 통과돼야 해 준비도 이러한 일정에 맞춰야 한다. 헌법 제54조에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예산을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돼있다. 그러나 대부분 그 전에 통과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예산실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열리는 때부터 예산이 통과되는 날까지 전쟁터가 된다.
올해는 지난 11월 23일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이 국회에서 처리된 이후 예결특위 계수조정소위가 파행을 겪으면서 사실상 업무가 중단된 상태다. 내년도 예산안 심사가 무기한 연기되면서 예산실은 할 일이 없어진 셈이다. 현재 예산 심사 시작을 대비해 준비는 하고 있지만 국회 예결특위가 열릴 때와 업무강도는 천양지차다.
물론 예산실의 이러한 개점휴업 상태가 오래가지는 않을 전망이다. 계수조정소위원장인 한나라당 정갑윤 의원과 한나라당 소속 계수조정소위 위원들은 민주당 소속 위원들이 불참을 무릅쓰고 12월 1일부터 예산 심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민주당 반발을 우려해 여야 간 이견이 없는 예산부터 심사하겠다고 밝힌 만큼 예산실의 업무는 민주당이 예결특위에 복귀한 때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재정부 관계자는 “국가사업은 통상 예산배정에 7일, 사업공고와 계약 등 사전 준비에 15일, 자금 집행에 7일 등 한 달가량이 소요된다. 예산안을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에 처리하도록 한 것은 다 이런 이유 때문”이라면서 “예산안 처리가 늦어지면 예산실 직원들도 고생하게 된다. 2010년에는 예산안이 연말인 12월 31일에 처리되면서 직원들이 큰 고생을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예산실이 국회 파행으로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간 데 반해 같은 2차관 산하인 국고국과 재정정책국은 정치권 민원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정부는 국유재산 관리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지금까지 각 부처가 개별적으로 추진해오던 공용재산 취득사업을 내년부터 국고국 산하에 신설되는 국유재산관리기금에서 전담토록 했다. 각 부처가 앞으로 관사나 기숙사 등을 신축하기 위해서는 국유재산관리기금으로부터 돈을 받도록 룰을 바꾼 것이다.
이로 인해 벌써부터 여야 정치권으로부터 압력이 쏟아지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 내 경기부양 효과를 위해 선관위 경찰서 교육청 등을 새로 지어달라는 민원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지역구 내 신규 청사 건립을 위한 예산을 받으려면 관련 상임위원회와 예결특위를 거치더라도 마지막으로 국유재산관리기금 심의를 통과해야 한다. 이미 예결위에 각 여야 정치인들이 국유재산관리기금으로 청사 신축 등을 요청한 민원성 사업이 총 35건(9000억 원)이나 되면서 국고국 직원들이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정부 재정적자 관리 등 재정계획을 책임지고 있는 재정정책국은 여야 정치권을 가리지 않고 내년 복지예산을 늘리겠다고 하면서 속앓이 중이다. 정부가 중기재정계획에서 밝힌 ‘2013년 균형재정’도 재정정책국 소관 업무다. 하지만 무상복지를 주장하는 민주당뿐 아니라 한나라당에서도 복지예산 3조 원 증액을 추진키로 결정했다. 또 한나라당과 고용노동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9만 7000명을 정규직으로 돌리기로 했다. 재정정책국이 세워놓은 균형재정 계획달성이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김서찬 언론인
▲ 비유를 즐기는 박재완 장관의 화법이 때론 “장관답지 않다”는 비난을 자초한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지나친 비유에 의원들 ‘욱’
“10월 고용동향 보고를 받기 전에는 좋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취업자수 증가가) 50만 명이 넘을 것이라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회의 10분 전에 수치를 보고받고 흥분해서 대박이라는 표현을 했는데 오해를 산 것 같습니다.”
지난 11월 9일 ‘고용 대박’이라고 말했다가 고용 사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 받은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26일 이렇게 해명했다. 그는 “과거에도 고용이 늘면 서프라이즈, 빅 서프라이즈라는 표현을 사용한 적이 있는데 그때는 별 비판이 없었다”며 억울함을 내비치기도 했다.
박 장관은 비유를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취임 초기 재정부의 업무를 ‘포수론’으로 설명하는 등 야구에 비유한 설명을 많이 해 호평을 받았다. 외교 관계에서도 적절한 비유로 분위기를 띄웠다. 9월 22일 티머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과 가진 양자회담에서 “(최근 위기에는) 리베라(뉴욕 양키스 마무리) 같은 구원투수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9월 28일 한·중 경제회담에서는 만찬사로 “삼국지의 백미인 유비·관우·장비 삼형제의 도원결의는 세계경제를 구하려는 국제공조의 정신을 강조한 모범사례”라고 말해 중국 참가자들을 흐뭇하게 했다.
그러나 이처럼 적절한 비유로 대박을 친 경우도 있지만 ‘고용 대박’처럼 현실과 맞지 않거나 장관답지 못한 언어를 사용해 비난을 받는 일도 적지 않다. 박 장관이 지난 7월 6일 외신기자클럽 초청 오찬간담회에서 정치권을 ‘포크배럴’로 비유해 비난을 산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포크배럴은 과거 미국에서 돼지고기를 담던 통인데, 정치인들이 지역구 선심사업을 위해 예산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모습이 마치 노예들이 돼지고기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달려드는 것과 같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외교 관계에서도 어설픈 비유로 구설수에 올랐다. 지난 8월 26일 박 장관은 싱가포르 독립을 축하하는 국경절 행사에서 인어공주를 각색한 자작동화를 소개했다. 난파를 당해 무인도에 표류한 두 싱가포르 청년이 인어공주와 만나 사랑에 빠졌는데 공주가 누가 자신과 결혼할 것인지를 묻자 청년들이 ‘정부의 결정에 따르기로 하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 답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싱가포르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지나치게 작위적인 데다 남의 나라 국경일 행사에 쓰기에는 너무 가볍다는 비난을 자초했다. [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