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8년 전남 신안군에 건설된 추적식 태양광발전소. 이명박 정부 초기 각광받던 태양광 사업이 사업 수익성 하락이 가속화되며 위기를 맞고 있다. 연합뉴스 |
2010년 5월, 이건희 삼성 회장은 그룹의 5대 신수종사업을 정하고 2020년까지 23조 3000억 원을 투자해 미래 먹을거리를 완성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 중 하나가 태양광이었다. 삼성전자와 삼성SDI를 주력으로 태양광 분야에 6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각오였다.
이때만 해도 태양광 사업은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기업이라면 대부분 군침을 흘리는 분야였다. 또 신성솔라에너지, 미리넷솔라, 넥솔론 등 중소기업들의 힘과 인지도가 막강했다. 대기업 중에서는 한화 정도가 일찍부터 태양광 사업에 ‘올인’하다시피 하며 그룹의 핵심으로 삼았다.
이건희 회장이 신수종사업 계획을 발표한 지 1년 후. 태양광 사업은 찬밥 신세가 돼버렸다. 태양광 사업에 투자하려던 대기업들은 주춤거리고 있고 이 분야에서 강세를 띠는 중소기업들은 부진에 허덕이고 있다. 고작 1년 사이의 변화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태양광 분야 실적은 처참해졌다.
삼성은 태양광에서 삼성전자의 손을 떼게 하고 삼성SDI와 제일모직에 사업을 넘겼다. 지난 5월 삼성전자에서 태양전지 사업을 인수한 삼성SDI의 지난 3분기 실적을 보면, 태양광 사업에서 큰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에서는 4분기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삼성이 태양광 사업에 대한 출구전략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삼성SDI 내부에서 ‘왜 태양광 사업을 떠안았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는 얘기가 들릴 정도다.
태양광 사업이 삼성전자에서 삼성SDI로 넘어가던 지난 5월, ‘삼성이 태양광 사업을 접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 바 있다. 삼성 측은 수차례에 걸쳐 “사실무근”이라며 “신수종사업으로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전망이 불투명한 실정이다.
태양광 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현대중공업의 최근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조선 분야에 집중돼 있는 사업영역에서 탈피해 사업구조를 다각화하려는 현대중공업은 일찍부터 태양광을 신성장동력으로 점찍고 폴리실리콘, 태양전지, 모듈, 발전시스템 등 태양광 분야의 수직 계열화를 갖추었다.
그러나 지난 10월 미국 애리조나주에 세계 최대 규모로 예정됐던 태양광발전소 건설 사업이 무산되면서 태양전지 모듈을 생산하는 충북 음성공장 증설 계획도 백지화했다. 이에 그치지 않는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 역시 태양광 사업을 재검토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하지만 이미 태양광 분야의 수직계열화를 갖춘 상태에서 전면 재검토도 난감하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시장이 정체돼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룹의 미래성장동력 중 하나이기에 전면 재검토는 없다”며 “시장 상황을 봐가면서 투자 수위와 계획을 조절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앞으로 박막형 태양전지 사업은 수익성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태양전지는 크게 결정형과 박막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지금까지는 대부분 결정형을 쓰고 있다. 박막형은 디자인과 활용도 면에서 훨씬 다양하게 쓸 수 있지만 효율이 떨어지는 게 가장 큰 단점이다. 하지만 기술개발이 거듭된다면 박막형으로 대세가 기울 것이라는 게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적잖은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SK그룹 계열 SK케미칼은 그동안 공들였던 폴리실리콘 생산 사업에서 철수하기로 했다. 폴리실리콘 가격이 계속 하락하는 상황에서 사업을 계속 진행하기가 부담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상업화 직전이었던 데다 SK솔믹스, SKC 등과 함께 태양광 사업의 수직계열화를 계획했다는 점에서 철수 결정에 대해 의혹이 제기되기도 한다. 철수가 아니라 실패 아니냐는 것.
이밖에 LG화학 역시 지난 2일 폴리실리콘 분야에 대한 신규 투자를 잠정 보류할 것을 공시했다. 태양광 사업에 애를 썼던 웅진그룹 등도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 한화케미칼 태양광. 한화는 최근 태양광 사업 분야의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장교동 사옥을 대한생명에 매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태양광 사업에 주력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상황은 더 나쁘다. 신성솔라에너지, 넥솔론, 오성엘에스티, 에스에너지, 주성엔지니어링 등 태양광 사업 분야의 대표 중소기업들의 실적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경동솔라를 비롯해 태양광 관련 계열사를 매각하려는 기업도 속출하고 있다. 이들 기업의 매출액은 물론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이 대부분 반 토막 났거나 적자 전환했다.
태양광업체로 분류되는 기업들의 주가는 더욱 처참하다. 주식시장에서 한때 ‘7공주’로 불리며 현대차 등 대형주와 함께 고공행진을 하던 OCI(옛 동양제철화학)의 주가는 반 토막 이상이 난 상태다. 60만 원대를 기록하던 주가가 10만 원대까지 추락한 바 있다.
자문사들의 러브콜을 받으며 ‘100만 원까지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현재로서는 요원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OCI 주가 추락의 결정타는 태양전지 핵심 원료인 폴리실리콘 가격의 끝없는 하락이다. OCI는 국내에서는 물론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폴리실리콘 생산업체다.
이른바 ‘대장주’가 부진하면 ‘관련주’들의 주가는 더 참혹한 법. 앞서 언급한 중소업체들의 주가 중엔 세 토막이 난 것도 있다. 대표 태양광 기업이었던 미리넷의 경우 주가가 100원대까지 추락했다. 최근 상장한 넥솔론, 에스에프씨는 상장하자마자 연일 하락하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테마 바람에 휘둘린 영향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며 “태양광 관련주들이 치솟을 때 증권업계에서는 여러 차례 경고한 바 있다”고 말했다.
태양광 사업이 불과 1년여 만에 장밋빛에서 흙빛으로 변한 까닭은 여러 가지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다음 세 가지로 간추려볼 수 있다. △핵심재료인 폴리실리콘 가격의 하락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 △유럽을 비롯해 선진국들의 보조금 중단 등이다.
일각에서는 여기에다 태양광 사업의 진입장벽이 높지 않다는 점을 꼽기도 한다. 진입장벽이 낮다는 것은 그만큼 여러 업체가 쉽게 달려들 수 있다는 얘기다. 국내 태양광 관련 유망 중소기업들이 대부분 반도체 장비 회사였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재계 관계자는 “반도체와 태양광은 유사한 점이 굉장히 많다”며 “핵심 원료인 폴리실리콘이 반도체의 핵심이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업체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공급 과잉을 초래할 우려가 크다. 어찌 보면 현재 태양광 사업이 침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이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태양광 사업에 대한 회의론이 무섭게 확산되고 있다. 물론 지금은 구조조정 시기며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업황이 개선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전문가도 있다. 하지만 향후 몇 년간은 회복하기 힘들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지난 11월 30일 LG경제연구원은 태양광시장의 공급 과잉을 지적하며 “단기간 내에 해소 되기 어려울 전망”이라고 우려했다. 이광우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풍력·태양광 산업 혹독한 구조조정 가운데 중국의 입지 강화’라는 보고서에서 “공급 과잉 속에 전개될 것으로 보이는 구조조정 흐름에 우리 기업도 향후 수년 동안 경쟁 격화를 각오해야 하며, 중국 기업에 대한 차별성 확보가 어려운 분야는 혹독한 경쟁에 내몰릴 우려가 높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신재생산업이 성장 초기 단계에 있는 만큼 도약의 기회는 중장기적으로 열려 있다”고 보탰다.
장기적으로 내다보면 에너지산업이 결국 태양광을 비롯한 신재생에너지 쪽으로 옮겨갈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당장 내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총 발전량 중 일정 비율 이상을 신재생에너지 전력으로 공급토록 의무화’한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제도(RPS)를 시행한다. 특히 태양광의 경우 산업 육성 측면에서 할당 물량을 집중 배분할 예정이다. 태양광업체들도 이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 발전량 중 고작 2%를 두고 국내 업체들이 경쟁하기도 벅찬 노릇이다. 그나마 태양광 발전 물량은 2%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런 부분들을 시작으로 점차 시장이 확대해나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글로벌 태양광시장의 80%를 차지하는 유럽이 보조금을 중단한 것이 시장 침체의 결정타이니만큼 유럽의 재정위기가 해결되면 태양광시장도 다시 꽃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